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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un 01. 2022

글방을 열었다

이대로 위스키 파는 책방을 열 수 있기를!



인생의 의미는 뭘까? 이게 다였다. 지극히 단순한 문제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옥죄어온다. 위대한 계시 따위는 결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신 일상의 작은 기적 같은 순간들이 있고, 깨달음이 있고, 어둠 속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어둠을 밝힌 성냥이 있었다. 이것도 그 한 예이다. 이것, 저것, 또 그것.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중 독신 화가 릴리의 독백



*



글방을 열었다!

아주 소수의 인원으로만 진행될 예정이다. 다 같이 책을 읽고 다 같이 글을 쓰고 다 같이 합평한다. 글방 이름은 시골에 있는 아빠네 강아지에게서 따왔다. 목줄 묶인 개가 안전하기를, 자유롭기를, 행복하기를!


청년 사업의 지원을 받아하는 일이니 참여자들에게 책을 제공할 예정이다. 일정도 야심차다. 동물권, 장애인권, 페미니즘, 지구환경, 노동권 등에 대한 도서 7권을 읽고 틈틈이 가벼운 영화도 본다. 1500자 이상 분량의 글을 2주에 한편씩 써내야 한다. 합평을 하는 사람은 다정한 마음으로 이야기할 것을, 합평을 듣는 사람은 자신의 글에 대해 첨언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한다. 모두의 글이 실린 책자도 만들 것이다. 판매목적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읽히고 싶은 책은 너무나 많았고 두 달 내내 커리큘럼을 몇 번이나 갈아엎으며 애를 먹었지만 이제는 그저 글방이 별 탈 없이 끝나기만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5월부터 11월, 짧지 않은 기간이니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목줄 풀린 개처럼!


늘 어딘가의 구성원으로 끼어있다가 뭔가를 진행해보려고 하니 가슴이 떨린다. 동생이 옆자리를 맡아주지 않았다면 시작 전날까지 손톱만 깨물며 기다렸을 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뭘까? 인생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은 언제쯤 사라질까? 이번을 시작으로 글방을 2번이고 3번이고 진행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동생과 나의 글을 찍어내는 독립출판사를 차릴 수 있을까? 위스키를 팔고 책을 전시하며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는 복합 문화공간을 한국 한구석에 차릴 수 있을까? 칵테일 강의를 하는 일에도 자신감이 생길까? 

오래전에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서는 까마득하고 막막한 인생을 하늘이 내리는 위대한 계시 대신 일상에 작은 기적 같은 순간으로 버텨낸다고 적는다. 예기치 못한 깨달음과, 성냥처럼 은은한 누군가의 온정으로 삶은 견딜 만 해지고 따스해진다. 새로운 글방을 여는 것,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를 만나는 것. 글을 쓰는 것. 교류하는 것. 이것, 저것, 또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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