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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un 02. 2022

나는 바빴다

행복들 사이에서!


대전 성심당의 명물 투표빵

​​



그럼에도 그 당시에 나는 만족스러웠다. 나는 자유로웠고, 방값은 한 달 치를 선불로 냈으며, 나는 계속 생존해 있었다. 거의 누구도 나와 함께 누릴 수 없는 삼중의 행복이었다.​


안나 제거스, <통과비자> 중

​​


*

오랜만, 오랜만이다.

계기가 없으면 글을 쓰지 않는 인간이라 벌써 두 달째 글 하나를 안 썼다. 아주 글러먹었다.

학교에 과제가 많았다. 과제도 있는데 중간고사도 있다. 정말 스무 살 새내기였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9년 전의 나는 결석을 밥 먹듯 하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교수와 대거리를 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애송이 미술학도였다. 그때는 펼쳐질 미래가 어떻든 젊음을 휘두르면 되리라고 생각했지, 대학의 등록금이 내 부모가 얼마나 힘들게 만든 돈인지 알지 못했다. 같은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 군상도 다양하다. 꾸벅꾸벅 조는 친구, 교수님의 물음에 대답하는 모범생 친구, 매 출석 때마다 세 번씩 이름을 불러도 얼굴 한번 보이지 않는 친구. 나는 어쩌다 보니 매시간마다 비판 조의 의견을 내는 바람에 꼭 교수님이 한 번씩 지목하고 지나가는 학생이 되었다. 뭐가 되었든지 간에, 지금 이 나이를 먹은 나는 못하고 싶지 않다. 성적 장학금으로 먹고 살 정도는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데 까지는 해보고 싶다. 출석일수를 채우고, 시간 맞춰 캠퍼스를 뛰어다니고, 기한에 넉넉하게 과제를 제출한다. 그런데 변수가 있었다. 학교에 너무 오랜만에 돌아온 나머지 조별과제의 무서움을 알지 못했다. 지난 토요일, 조원의 실수로 제출일이 한참 지났음에도 과제 발송이 안되었다는 걸 발표 당일에 알게 되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더 뭐라 다그칠 수도 없다. 이렇게 관할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속수무책이다. 그런 일상을 보냈다. 시간표에 맞춰 학교를 가고, 학사 일정에 끼어 과제와 시험을 보는. 철없이 바쁜 일상.

오월은 분주한 달이었다. 본격적으로 칵테일 강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글방도 활기를 띄었다. 몸이 피곤하니 집안일에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야채값이 비싸다고 옥상에 심어둔 대파도, 환경연합에 보낼 생각으로 심어둔 도토리 세 알도 며칠 째 잎 끝 하나 보지 못했다. 뿌리내린 식물들에게는 불행한 소식이지만, 돈 없던 인간에게는 행복한 분주함이다. 하는 족족 좋은 후기가 들어와 대기업 대상 온라인 강의가 들어왔다. 무려 5회 연강이다. 이틀에 한번 꼴로 강의를 하다가 저번 주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일정이 끝났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출장의 일원으로 대전에 와있는 상태다. 처음 있는 대면 강의가 집에서 세 시간 거리인 곳에서 출장비까지 받으며 진행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여행 느낌이 가득하니 좋은 건 좋은 것이다. 오전부터 시작되는 일정이라 부러 강의장소 인근으로 숙소를 잡았는데, 성심당과 유명 떡볶이집이 도보 10분 거리에 있다. 호텔에 짐을 풀고 건물 위치나 볼 겸 설렁설렁 걸어가다가 골목에 구석 라이브 카페에서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을 꽤 멋지게 부르는 밴드를 보았다. 성심당에서 빵 구경도 실컷 하고 유명 분식집의 라볶이에 계란을 추가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통이 넓은 소매 사이로 남실바람이 숭숭 부는 밤 산책이었다. 행복하다.


강의가 개설된 건 2월이었지만, 워낙 이름 없고 낯선 분야다 보니 신청이 뜸했다. 3월 말에 한 번, 4월에 한 번. 시간이 넘쳐나니 일을 벌였다. 옆동네 청년센터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에 글 쓰고 책을 읽는 모임을 하겠다고 신청했다가 덥석 붙었다. 글방을 운영한 지 벌써 5주 차다. 마구잡이로 올린 공고 글에 보살 같고 천사 같은 분들만 들어와 글방이 있는 날은 감격에 겨워 잠이 든다. 내가 이렇게 멋진 분들을 만나다니. 이런 분들과 같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글에 대한 합평을 받고, 나 역시 이 분들의 글을 합평하다니! 나 자신에게 상이라도 주고 싶다. 작은 모임에서 이만큼의 만족감을 느낄 줄 몰랐으니까.


초반에 있던 강의는 중간고사 기간과 딱 겹쳤다. 안 그래도 긴장을 많이 하는데 머릿속에 경제학자와 클래식 칵테일이 뒤엉켜 어지러웠다. 정신없는 상태에서 강의를 끝내고 나니 5회 차 연강이 들어왔다. 행복하지만, 너무 행복하지만 죽을 것 같다!

그 사이에 논문 비슷한 것을 쓰겠다고 흉내도 내봤다. 일전에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에서 마리안느 허쉬의 포스트 메모리 저서를 번역/발제하는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진행자 분이 대학에서 아시안 액티비즘이라는 주제로 국가 폭력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다기에 생각 없이 지원서를 쓴 것이 또 붙어버린 것이다. 동생과 함께 일주일을 밤낮으로 책과 논문을 뒤지고 영상자료며 신문 기사를 수집하며 죽을 똥을 쌌다. 정말 힘든 일이었다. 머릿속에는 생생한 일을 글로 끄집어내는 것은, 심지어 화도 낼 수 없고 악을 쓸 수도 없는 정보전달용 글을 작성하는 것은 정말 골치 아픈 분야였다. 각주라는 것은 또 얼마나 번거로운지. 유튜브면 유튜브, 인터넷 기사면 기사, 책 출판사와 출판 연도까지. 동생과 나는 우리 둘 다 대학원에 들어가긴 글렀다며 퇴고 잉크로 범벅이 된 에이포 용지 위에서 꺽꺽 울었다. 우리의 발표문과 발표 내용은 포럼 내에서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뒤풀이에 초대되어 짜장면을 먹으며 어쩌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를 한참 얘기하고, 동생이 평소 존경하던 비평가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한 주제는 아빠와 친할머니의 고향, 충청남도 태안에서 1950년 6.25 전쟁 전후로 있었던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가족 구술사적 조명이었다. 트럭에 실린 사람들이 집 앞을 지나가면 해지기 전 산 쪽에서 콩 볶는 소리가 났다던 할머니. 할머니는 그 얘기를 한 날 밤 자는 동생을 깨워 물었다고 한다.


“너, 정말 이걸 써서 책을 내믄, 누가 나를 밤중에 잡아다가 왜 너에게 이런 말들을 했느냐고, 문초당하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냐.”


여전히 이 문제를 읽고 쓰는 와중에도 국가가 국민에게 어느 정도의 짓을 했는지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할머니의 물음에 선뜻 ‘에이, 이제 그런 세상은 다 지났어요. 괜찮아요. 아무 문제없어요.’라고 대답할 수 없다. 누군가 나를 빨갱이 사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상상을 한다. 그래도 나는 국가가 저지른 일에 대한 것을 묵인할 생각이 없다. 동생은 그날 밤 할머니에게 ‘네’라고 대답했고 우리는 계속 태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한적한 바닷가 도시에 사상을 빌미로 죽어간 천오백여 명의 사람들을 추모하는 공원이 생길 때까지, 계속 이야기할 것이다.

국가폭력을 조명하는 것으로 유명한 대학에서 발표문을 읊은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모두 사회학부, 국제문화연구학부 등 쟁쟁한 학생들 사이에서 관광프랜차이즈경영인 내가 들어가 있던 것도 우습다. 아마 올해 학교를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마저도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 참 어찌 될 일 모르는 일이다. 집을 못 구해서 직장을 때려치우니 녹색선이 옆에 있는 방 세 개짜리 집이 뚝 떨어지고, 전 직장의 불만과 바 업계에 대한 불만을 줄줄 써놓았더니 칵테일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 프리랜서 일거리가 안 들어와 탱자탱자 놀던 시간에 글방을 열었더니 마음의 반쪽을 맡겨둔 것 같은 사람들을 무더기로 만났다. 나라가 해결 안 한 짓이 아니꼬워 계란으로 바위 치듯 포럼에 섰더니 전문가중에 최고봉인 교수님께 큰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출장 강의라는 것을 인생에서 처음 해본다!

안나 제거스의 통과 비자는 한정현 작가의 <소녀 연예인 이보나> 단편에서 언급이 되었던 소설이라 읽었던 책이다. 텁텁한 묵색 표지에 두께도 두꺼워 재미는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틀 만에 훌렁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인물들의 감정선과 사건의 얼개가 촘촘한 것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읽었는데 나중에 보니 동명의 영화도 나와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후련했던 문장이다. 당장 발 밑이 흔들리고, 저 멀리에서 집채만 한 파도도 오고 있긴 하지만, 나는 자유롭고 또한 행복하다. 당장 한 달을 거주할 수 있는 월세를 내는 것, 강의가 없던 달에 이 한 달치의 월세만을 벌 수 있기를 얼마나 고대했던지! 퇴사를 앞두고 엄마와의 불화 때문에 가장 죽고 싶었던 어느 순간에 나는 얼마나 세상에 더 살아있기를 원했던지! 그렇다. 이것은 모두 행복이다. 내일 아침에 있을 강의가 무사히 끝나면 성심당에서 온갖 종류의 고로케를 산 다음 골라둔 음식점에서 연어 초밥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독립운동가로 치열하게 살다가 감옥에서 옥사하신 신채호 열사의 생가에 들러 문안을 드리고, 내일 있을 청년 프리랜서 강사 교육을 위해 서울 2호선 옆에 붙어있는 나의 월세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시 이 모든 것을 적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직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행복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모습이 요즘만큼 좋을 수가 없다. 고기를 먹지 않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거라고 해놓고 몸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틀에 한번 꼴로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금방 바쁜 스케줄이 적응이 되면 전처럼 신나게 요리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글을 쓸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내일도 새로운 기록을 남길 수 있기를 기대하며 호텔 방의 불을 끈다.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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