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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un 03. 2022

이 순간부터 비문이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순간이여!




문장의 시선은 결국 거리를 좁히려는 나의 의지와

당겨지지 않으려는 풍경 사이의 긴장감이 만드는 것 아닐까요.


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중



*



나는 오늘 목표한 바를 전부 이뤘다.

뭐 하나씩 빼먹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는데 오늘 아침은 기상부터 몸단장까지 일사천리로 끝냈다. 뾰루지가 올라올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피부도 화장이 필요 없었을 정도였다. 첫 출장 강의는 (키트 구성품 중 일부가 누락되어 법석이 나긴 했지만) 비교적 좋은 분위기에서 잘 마무리되었고, 강의가 끝나자마자 차 안에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성심당에 맛있다는 빵은 다 하나씩 집어왔다. 빵 바구니를 들고 나와 지도를 찍어보니 먹고 싶었던 초밥집이 성심당 본점에서 3분 거리다. 선선하고 해도 적당해 날씨도 좋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어 값이 폭등해 만 육천 원이었던 연어초밥이 이만 삼천 원이 된 것은 눈물이 찔끔 났으나 밥의 네 배는 되는 연어가 덮어져 나왔으니 딱히 불만도 없다. 간장까지 싹싹 긁어먹고 배를 두드리며 대전 시가지를 걸었다. 드라이브하기 딱 좋은 날이다. 선글라스 없이도 시야가 뻥 뚫리는 날. 나는 독립운동가의 생가를 찾아갔다.


새삼 가는 길에 나무가 많아서 한 계절 내내 볼 초록을 오늘 다 본 것 같다. 서울의 초록은 어딘가 듬성듬성하고 여위어 보여서 숱 많은 머리채를 부슬부슬 부대끼는 대전의 산길에 감탄하며 달렸다. 꼬부랑길이 많은 아스팔트 도로가 쓰레기도 동물 시체도 없이 멀끔하다. 반대쪽에서 오는 차도 없다. 차를 몰기에 완벽한 날이다. 30분, 대전 시내에서 30분을 달렸다.


동네 한가운데 같으면서도 겹겹이 산과 나무가 우거진 터에 신채호 선생의 생가가 있다. 주차장에 내리면 바로 단재 홍보관이 있고, 돌길을 따라 오르면 낮은 돌담 안에 소담하게 자리 잡은 한옥이 보인다. 오늘은 마른 상태였지만 들어가는 길목에 물이 지나는 수로도 있다. 속으로 예쁜 곳에서 태어나셨네요, 하고 읊었다. 구름이 드리웠던 하늘에서 해가 들었다. 새파랗게 병풍처럼 굽어진 풍경 곳곳으로 금살이 쬐인다. 절경이구나 하고 카메라를 들었더니 어째 우중충한 숲 무더기만 화면에 들어있었다. 탄식이 나온다. 이 모든 것을 느낀 그대로 전할 수 있다면, 지금 내 시야를 붙잡아 둘 수 있다면. 이렇게 쓰고 있는 와중에도 슬프도록 느껴진다. 내가 눈앞에 두고 아름다워 감탄했던 세상의 절반만큼도, 반푼만큼도, 약간의 향기조차도 묘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낮 두시 이십 사분에 내가 보았던 것은 내 머릿속에만 들어있고(이것이 온전한 기억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제 아무리 비슷하게 표현을 하려고 해 봐야 우스운 수식어만 늘어놓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미 한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복원된 그 집을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돌았다. 여러 군데가 메워진 아궁이의 수를 세보고 단재 신채호 선생의 어릴 적 일화를 눈으로 읽었다. 한 식구 사는 집이 이리 좁으니 외부에 광 하나가 더 필요하긴 하겠구나 하고 집 주변 구석구석을 기웃거렸다. 온갖 군데에 청량한 녹음이 졌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화단, 초여름의 잔디,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정원수. 초록이 말을 할 수 있게 바람이 분다. 바스스스.

내가 그나마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생가 근처의 공중화장실 길목이 타일 공사 중이었고, 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고 계신 분들과 눈이 마주쳤고, 갑자기 뱃속이 요동을 쳐서 급하게 큰 일을 보았다는 것 정도다. 화장실 칸 안에 화장지가 없어 외부에 비치된 공용 화장지를 붕대처럼 두르고 들어갔다는 이야기. 아까 먹은 연어가 어제 먹은 라볶이를 눌렀는지 끊기지도 않고 시원하게 대변을 보았다는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개운하게 차에 올라탔다는 이야기. 그리고 물기가 덜 마른 손으로 핸들을 잡으며 ‘아, 오늘 내가 본 이 기가 막힌 풍경을 동생에게 자랑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이야기 같은 것.


오늘 목표한 바를 전부 이뤘다는 말은 이 순간부터 비문이다.

나는 의열단 고문으로 있었던 항일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 생가의 단아함을, 고적함을, 그 집을 둘러싼 하늘과 구름과 바위산의 위엄을 쓰고 싶었다. 오늘 출장의 막바지에 길이 밀릴걸 알면서도 무리해서 방문했던 것이 한치 후회도 없을 만큼, 그 모든 것을 대변할 만큼 세상천지가 아름다웠다고.

나는 내가 본 것의 발톱 부스러기만큼도 묘사하지 못했고, 그것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오만이라는 걸 깨닫는다.

몇 개월 전 읽었던 김정선 작가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작법서, 교정서 같으면서도 기묘하게 사건과 인물의 대화에서 빠져드는 요소가 있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읽으면서 어딘가 찔리는 느낌에 명치도 만지작 거리고 주변도 살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쓴 글의 못난 면을 직시하는 것은 늘 외면하고 싶은 일이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두 번 다시 쓰지 못하게 될까 봐 무서워진다.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역시 역동하는 절경을 목도하고 여윈 초록이 힘겹게 싸우고 있는 서울에 돌아온 밤에는 이 문장인 것이다. 끝끝내 나에게 당겨지지 않았던 그 무거운 초록과 청명한 대기. 어떻게든 몇 시간 전의 그 순간을 자판 안에서나마 되돌려보고 싶었던 나와 그깟 재주로는 어림도 없다는 절경의 버팅김.


문장의 시선은 결국 거리를 좁히려는 글 쓰는 이의 의지와 그에 당겨지지 않으려는 풍경 사이의 긴장감이 만드는 것 아닐까 한다던 작가의 말이, 오늘 나의 패배를 장렬히 인정하게 한다. 감히 담고 싶어서 겁도 없이 시도는 해보았다고 말하며 물러나야겠다. 목표한 바를 전부 이루지는 못했지만, 불시에 완벽하게 아름다운 순간을 나 같은 인간에게 목격당한 자연과 생가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그만큼 뽐을 내었으면 그에 맞는 뭔가에게 자랑하고 싶었겠지. 세상일은 참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비단 인간만사뿐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그래도 나는 오늘을 기억한다.


이승만의 미국위임통치 옹호에 대로하여 돌아섰던 독립운동가, 만주에서 투쟁하며 의열단의 고문으로 민중에게 호소하는 글을 집필하고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옥중에 있는 상황에도 붓을 놓지 않았던 문인. 병보석을 허가받았으나 보증인 친척이 친일파였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끝끝내 옥에서 돌아가신 위인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를 다녀왔다. 이불 같은 녹음이 초가 위에 깔린 날, 바람이 딱 기분 좋게 부는 날, 아직 꽃봉오리가 맺히지 않아 녹색 말고 다른 색이 섞이지 않은 날.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생가에 원하는 만큼 생각하고 떠올리고 회상했다. 나는 오늘을 기억한다. 글 재간이 없다는 반증이겠지만, 고스란히 적어둘 수 없었기에 기억으로 남겨둘 부분이 더 많아졌다. 그것 역시 그거대로 좋다. 내가 적어놓은 것을 그 밖의 공기와 향기와 온도를 가만히 기억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가만히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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