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보다는 좌절이 압도적인 세상에
미래가 확실히 보장되어 있을 때는 누구나 원칙에 충실할 수 있다. 그러나 내일 당장 자신의 생명조차 보장할 수 없을 때, 낙관보다는 좌절이 압도적인 상황에서까지 원칙을 지키고 동지애를 지킨다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 역사와 개인을 일치시키는 철저한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세계역사상 유일무이할 만큼 처참하고 탁월한 빨치산의 투쟁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고, 훗날 그 수많은 좌익수들이 언제 감옥에서 나간다는 기약도 없이, 또 이 나라의 역사가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변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이 수십 년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아침에 일어나는 문제에서부터 모든 생활을 철저하게 조직하고 투쟁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역사발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지아, <빨치산의 딸 1>
*
동지라는 말을 귀로 듣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나도 어디 어디의 조합에 소속되어서 김해인 동지,라고 불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지, 김해인 동지.
나는 지금 거제에 와있다. 12월 30일, 퇴근하고 회사에서 곧장 거제로 달려 어젯밤 11시에 도착했다. 두 시간 전까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노동자들과 노조법 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다가 호텔에 들어왔다. 코끼리 같은 분들이 지탱하고 있는 금속노조에게 연대를 하러 오다니. 얼떨떨하다.
금속노조 조끼를 처음 본건 탄핵이 가결되던 날의 국회 앞에서였다. 시위나 집회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햇병아리, 인파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던 나에게 남색 조끼를 입고 빨간 띠를 두른 아빠뻘의 운동가분들이 왜 그렇게나 든든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인이 박혔다고 해야 하나, 콘크리트에 피부를 바른 것처럼 우직하고 단단한 철근 같은 사람들.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어쩐지 으쓱하고 안심이 됐다. 그분들은 오늘도 같은 조끼를 입었다. 금속노조 강인석 부지회장은 오늘로 단식 43일 째다. 새해 떡국도 드시지 못하고 해가 지났다. 이제 사람이 고공농성을 해도 식음을 전폐해도 신경도 쓰지 않는 세상이 왔다.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대도 절대로 노동법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을 세상. 사람의 심장은 더 뜨거워졌는데 사람 말고는 모두 차갑다. 때로 어떤 사람은 심장도 돈으로만 뛴다.
집회 토론 막바지에 자유발언을 하고 싶었는데, 숫기가 없어 말하지 못해 글로 적는다.
전태일 열사와 전봉준 장군의 동상이 있는 지역에, 노동자를 위해 싸우는 노조가 있는 회사에서, 노동조합을 가입할 수 없는 계약서를 작성한 채로 근무 중인 직장인입니다.
입사 전에는 야근 수당과 주휴 수당이 따로 없는 업계에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8년을 일했습니다.
노동에 대한 문제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자주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저는 나이 서른을 먹고도 보수적인 회사에서 목소리 하나 내지 못하는 못난 회사원이지만, 탄핵이 가결되던 날 국회 앞에 와주셨던 금속노조원 분들의 연대에 몹시 감사했습니다.
거칠고 험할 수 있는 길을 꿋꿋이 지켜오신 분들의 존재가 그렇게나 든든할 줄 몰랐습니다.
동짓날 동트기 전 새벽 남태령에서 시민을 연행하려는 경찰과 대치했을 때 느꼈던 두려움을 기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노동자들과 연대합니다. 다시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분들이 혼자서 외로운 싸움을 하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연대합니다. 함께하는 데에 서울에서 거제로 오는 것쯤이야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퇴근 후에 몇 번이라도 달려올 수 있습니다. 멀리서 여러분을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저처럼 달려오고 싶었던 사람들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이 자리에는 없어도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사원이면서도 노동법에 소홀한 애송이지만, 지금도 경찰들을 마주하면 조금 두려운 겁쟁이지만 진심만은 가득한 마음으로 연대합니다.
1월에 있을 상경투쟁에서도 함께하겠습니다. 투쟁하는 분들이 부디 건강하고 덜 아프셨으면 좋겠습니다. 동지들 한 분 한 분이 소중합니다. 국회와 광화문과 남태령과 한강진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거제통영고성하청노동자분들의 농성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를.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노동자와 국민은 승리합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