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놈에 빨갱이가 대체 뭔데

당신은 빨갱이입니까?

by 해인


역사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영혼들의 후손이다



그놈의 빨갱이가 대체 뭐죠?


그 단어를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는 누가 서있나요?


할머니의 고향에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는 걸 알았을 때, 제주도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몇 년에 걸쳐 잔혹하게 진압당한 역사를 알았을 때 저는 그들이 모두 무고한 양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마을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였다고요.

그런데 그 일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그들 중 누군가는 분명한 좌익이었고 당당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사회가 빨갱이라고 부르는 세력들이 가담한 게 틀림이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희생자가 모두 양민이었을 거라고 철썩같이 믿은 이유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어쩐지 죽어 마땅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적극적으로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숙이 그런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시절 해마다 통일 포스터를 그리면서도 영화 <실미도>에 나오는 간첩과 북한은 무서워했습니다. 저는 제가 빨갱이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사실 그놈의 빨갱이가 대체 무엇인지도 모르겠었습니다. 이승복 어린이의 공산당이 싫어요 한마디에 어린아이의 몸이 벌집이 되도록 총을 난사했다던 뻘건 피부의 도깨비 같은 존재가 되기 싫었습니다. 악마가 되기 싫었습니다.

제가 스스로가 빨갱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건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그 세상에서는 저라고 총살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꽤 그럴듯한 명분까지 더해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시체로 있었을 80년 전의 저를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더라고요. 이런 게 빨갱이였구나. 저 사람들이 죽이고 싶었던 목소리가 바로 빨갱이였구나.


그놈의 빨갱이가 대체 뭔데?


저를 이지경까지 생각하게 한 그 단어의 정체를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지금의 사회주의자들이라면 도서관에 가도 사서에게 요청해야 받을 수 있는 낡디 낡은 책 속의 사람들을 그들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현존하는 사회주의자들은 빨갱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습니다. 빨갱이균이 옮을까 그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내켜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자들조차 그것을 마치 없는 것인 양 대했습니다. 그들이 기억하기엔 너무 아픈 것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이미 어긋난 첫 단추를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일까요? 저는 아직도 빨갱이의 정체를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빨갱이입니까? 이 질문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저도 빨갱이입니까?


저는 지금도 저를 빨갱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저까지 저를 빨갱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로 나라가 와서 저를 잡아넣고 고문하고 연좌제를 걸어 얼굴도 본 적 없는 후손에게 저주를 걸어도 할 말이 없어질 것 같아서요.

6.25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어났죠. 국가가 자행한 좌익 절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진실들을 지금 스스로가 빨갱이라고 말하는 광장의 동지들에게 낱낱이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직접 당해보지도 않았지만 기록과 증언을 보는 것만으로 손이 벌벌 떨립니다. 왜 그것은 두루뭉술하고 안개에 가려진 채로 사회주의자들에게조차 외면당해야 합니까?

스스로 빨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빨갱이입니까?


저는 시간과 품을 들여 중국과 러시아와 북한의 실패한 사회주의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것은 사회주의조차 아니었다는 것을 내란까지 겪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도 그러할까요? 우리는 북한과 달라, 우리는 진짜 사회주의자야 라고 한들 그들에게 우리는 다 죽어 마땅한 공산당 빨갱이가 아닌가요? 빨갱이라는 단어가 세대를 뛰어넘어 80년의 세월 동안 국가적 척결 대상이 되는 토양에서 사회주의정당은 설립이 된다 한들 지속가능할까요? 공산당 사회주의자 좌익으로 죽임 당해 묻힌 사람들의 이름을 아직까지 말하지 못하는 시대에서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정당 건설이 정말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느냐 말입니다.


죽은 빨갱이가 모욕당하는 나라에서 살아있는 빨갱이는 얼마나 당당할 수 있습니까?


빨갱이를 만천하에 드러내어야 합니다. 죽어버린 빨갱이와 정의로운 빨갱이와 극악무도한 빨갱이와 어중간한 빨갱이와 살아남은 빨갱이를 모조리 끄집어내서 대중과 다시 소통해야 합니다. 빨갱이라는 단어에 묻어있는 오명을 씻지 않으면 이 나라에서 사회주의는 영원 (다시 나올 독재자의) 척결 대상이 될 뿐입니다. 그들이 북한의 독재정권에서 어떻게 좌절하고 이승만과 싸웠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회주의자의 뿌리는 독립운동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이 땅과 민중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 시대의 한계와 벽 앞에서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빨갱이라 부르는 동지들을 보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저처럼 나약한 사람을 더 설득할 수 있도록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해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자랑스러울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정부에 의해 불태워져 터만 남은 그들의 생가에, 시체도 못 찾아 봉분만 덜렁 남은 단소에 계절마다 사람들이 찾아오게 해야 합니다. 정치는 민중의 사랑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빨갱이를 사랑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을 다시 이 세상에 불러내어야 합니다. 당신들이 용맹하게 싸워 우리가 영광스럽게 서있노라고 무덤 없는 영웅들한테 이야기해야 합니다.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에 개죽음이 왜 있어야 합니까? 사회주의는 친일파면 죽여도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죽여도 되는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죽여도 되는 빨갱이는 없습니다. 아니, 빨갱이라는 단어 자체가 허상입니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같은 종족을 갈라놓고 혐오하도록 세상에 풀어놓은 오염물질 같은 단어입니다. 빨갱이라는 단어에 꽃이 필 날은 언제 올까요? 세상에 개죽음이 사라질 날은 도대체 언제쯤 찾아온 단 말입니까.


당신은 빨갱이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아직 노동해방이 도래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당신의 죽음은 개죽음이 될 수도 있겠군요.

크나큰 유감입니다.





“성재 아버지, 개죽음 당했어.”


최재학, <통곡>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썩은 하늘을 뒤바꾸어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