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이야기
싱가포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물은 도마뱀과 바퀴벌레다.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벽이나 천장을 기어 다니는 도마뱀. 하루에도 세 번씩 보지만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아 마주치면 마주치는 대로 내버려 둔다. 하지만 바퀴벌레 쪽은 얘기가 다르다. 강북에 있던 동생의 집에서 가히 용맹스런 침입을 몇 번 당했더니 도무지 곱게 보이지가 않는다. 바퀴벌레는 다행히도 대로변이나 쓰레기통 근처에서 약을 먹어 비실비실한 꼴로 마주친다. 죽어가는 병사에게 확인 사살을 하는 꼴이지만 그런 놈들을 보면 꼭 한 번씩 꼭 밟아보게 된다. 엄지손가락만 한 것들이 날개며 여섯 다리 더듬이까지 건재하니 잠깐 기절했다가 다시 발발발발 움직이는 건 아닐까 신경이 쓰여서 그렇다. 보통 이곳 시간으로 밤 11시 12시 정도의 퇴근길에 등장하는 불청객이다. 상가에서 하나같이 독한 약을 친 건지 눈에 띄는 녀석들은 다 힘도 쓰지 못하고 빌빌거리거나 이미 죽어있는 채다. 슬쩍 눌러 밟아도 약간의 버석거림만 느껴지는 정도. 비척비척 도망가는 놈들까지 꽁무니를 따라가 마구 밟고 다녔다. 그러다 삼일 즘 전 퇴근길에서 딱 한 마리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놈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잽싸게 보도블록 그늘 속으로 숨은 그 시꺼먼 녀석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한 놈을 놓친 후부터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밟는 대로 죽어주는 착한 바퀴벌레들과, 무자비하게 그것들을 추격해 기어코 짓뭉개 버리는 나. 한 마리를 놓쳤다. 백발백중의 확률이었는데 그 한 녀석 때문에 흠이 생겼다.
그 후로도 열심히 퇴근길의 확인 사살을 하고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핸드폰을 보며 가로등 아래를 걷다가 사사삭 기어가는 기척이 느껴져 발부터 뻗었다. ‘바퀴벌레다. 밟아 죽여야지. 이 해충 같으니.’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상당히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라 내 몸짓 같지 않게 재빨랐다. 1초, 2초는 되었을까. 꿍, 찧기만 하면 되었던 발을 멈췄다. 아래에 지나간 것은 바퀴벌레가 아니라 도마뱀이었다. 멍청하게 발 한 짝을 허공에 든 채 풀숲으로 사라지는 도마뱀을 보고 있었다. 생각 없이 내질렀으면 분명히 짓뭉개고도 남았을 것이다. 다 터져 깔창 아래 묻어있는 피를 보고 내가 죽인 게 바퀴가 아니라 도마뱀이었다는 걸 알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아주 유쾌하지 못한 밤을 보냈겠지. 내가 죽인 게 바퀴가 아니라 도마뱀이었기 때문에. 더 익숙하고, 더 친근하고 뼈와 내장이 있는 생물이라서. 살아있는 것을 죽이려던 몸짓을 멈춘 순간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네들보다 거대한 몸집으로 그 작은 것들이 살고 죽는 것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있었다. 바퀴를 죽일 때 ‘아, 그래도 지구에 바퀴가 어제보다 한 마리는 줄었어.’하면서 신 흉내를 내고 있던 멍청한 나. 괜히 바퀴에게 미안해진다. 하지만 내일도 나는 바퀴를 마주치면 죽일 것이다.
이것은 어제의 일이다.
출근길은 어제 죽은 바퀴가 발견되는 시간이다. 햇빛 아래 그슬린 흑설탕 같은 등을 보이고 엎드려있는 바퀴들을 사뿐사뿐 밟으며 일터로 향하는 길. 붉은 벽돌 위에 유독 덩치가 큰 바퀴가 수구리고 있었다. 역시나 사지 멀쩡한 모양이라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구분되지 않았다. 단단한 날갯죽지가 범상치 않다. 몸통의 때깔도 좋은 것이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번지르르했다.
‘이미 죽었으면 그냥 으깨지는 거고, 안 죽었으면 제대로 죽여야지.’ 나는 또 발을 뻗었다.
와스슥, 뿌욱, 찌이익.
그것은 죽은 바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밟아온 녀석들과는 달랐다. 부피감이 있었다. 아마 구워서 먹으면 고기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덩치여서 그랬을 것이다. 날개 밑 배딱지 안에 꽉 차도록 들어차 있던 무언가가 내가 밟음으로써 터져 나왔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알이라도 품고 있었던 걸까. 얇은 밑창 바닥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생경했다. 그것은 마치 도마뱀을 밟아 죽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죽은 바퀴를 밟아서 내 밑창에는 바퀴의 허옇고 누런 진액이 붙었다. 찌이익, 바퀴의 몸에서부터 딸려 나온 생물의 흔적. 나는 분명히 지난밤까지 살아 움직이던 무언가를 밟은 것이다. 생생하게 역동했던, 어떤 지구의 구성물 중 하나를. 그것은 도마뱀을 죽일 뻔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묘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일도 바퀴를 마주치면 발을 뻗을 것이다. 햄버거에 한 겹으로 싸인 종이 포장지처럼 얇은 외피를 한 번에 짓뭉개고 또 바퀴의 내장이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들 것이다. 원래 몸속에 있어야 하는 것을 전부 끄집어내고 나서야 죽은 게 확실하다며 안심하고 내 갈 길을 갈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하루하루 바퀴를 죽여나가는 이야기. 죽이고 나서도 마음이 불편한 이야기. 그래도 멈추지 않을 이야기.
죽은 지 얼마 안 된 바퀴를 밟은 날에 나는 생각했다. 지난 인생에 바퀴로 태어나 천만번의 죽임을 당하고 이제야 인간으로 태어난 건 아닐까. 한 번도 바퀴였던 적 없는 것처럼 바퀴를 죽이고 다음 생에 다시 바퀴로 태어나 천만번의 죽임을 다시 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개미여도, 거미여도, 날파리나 모기 같은 것이었어도 똑같이 반복될 이야기다. 끊임없이 사냥당했고 천만번의 죽음 끝에 인간이 되었다. 모질고 추악한 인간이 되었다.
만약에 벌레가 된다면 날개가 크고 멋진, 단단한 배에 길고 예쁜 더듬이의 벌레가 좋을 것이다. 빛을 받으면 색이 변하는 초콜릿 같은 껍질을 가진 녀석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바퀴벌레였다. 너는 멋진 벌레구나. 날개가 크고 멋있는 벌레야.
그래도 나는 바퀴를 죽일 것이다. 이 멋진 벌레를 죽일 것이다. 다시 태어나게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