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말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영어를 말하는 느낌이 좋다. 머릿속으로 문법과 단어를 맞춰보기 전에 입으로 먼저 내뱉어버리는 그 시원함. 생각할 틈도 없이 상대방의 귀에 가서 부딪히는 나의 외국어. 혀 위에 이국의 말을 올려놓고 굴릴 때 즐거움을 느낀다. 방법도 영문도 모르지만 나는 영어를 말할 수 있다. 신기한 일이다.
독립이 일러 집안이 적적하던 시절에 미국 드라마 <프렌즈>를 미친 듯이 돌려 봤다. 시즌 1부터 시즌 10까지 달달 외우도록 보다가, 지루해졌을 때 즈음에 인생의 배경음처럼 샤워할 때도 틀어놓고 잘 때도 틀고 잤던 나날이 3년이었다. 중학교에 가기 전에 한 육 개월 필리핀에 있다 오면서 이미 말문이 트였던 것 같다. 나는 영어에 두려움이 없었다. 내 발음은 누가 봐도 그럴듯했고,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세계가 넓어지는 짜릿한 일이었다.
가끔 가는 여행을 빼고는 영어를 쓸 일이 없다가 이태원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에서야 써먹게 되었다. 그때 내가 미국 드라마에서 나왔던 단어와 문장, 제스처와 표정까지 고스란히 따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외국인들이 보기에 재미있는 광경이었을 것이다. 10년 된 미국 시트콤의 억양과 유머를 흉내내는 동양인 여자애.
나를 귀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학문적으로 배운 것들이 아니라서 대화하다가 말문이 막히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영어로 말하는 순간부터 바뀌는 목소리 톤이 나 자신도 신기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늘 제대로 된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도 아니라서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았다. 나는 영어를 할 수 있었고, 한국에서는 그 정도면 먹고살 수 있었다. 사실 한국에 왔으면 한국어로 말하라는 게 나의 지론이라 외국인이면 너 한국어 할 수 있어? 먼저 물어보고 시작하기도 했다. 네가 한국어를 못하니까 내가 영어로 해주는 거야. 아주 친절하게.
호주에 있을 때는 입장이 바뀌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면 나는 쓸모없고 흔해빠진 외국인 노동자였다. 한참 부족한 실력을 알고 있던 나는 출국 때부터 긴장을 짤짤 하고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레스토랑 일은 바텐더 보다 손님과 대화할 일이 적었고, 서빙한 음식에 대한 감상을 물어보며 분위기를 풀어주는 너스레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무뚝뚝한 호주인 보스는 한국인 와이프에게 소식을 전달받아 가게 내부 일 소통에도 문제가 없었다. 굵고 낮은 소리에 목구멍 안쪽으로 먹혀들어가는 뉴사우스웨일즈 시골 농부들의 발음은 곤혹스러웠지만 두 어 번 더 물어보면 아예 못 알아들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호주에서도 그럭저럭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지지부진한 영어실력으로, 이력서에 적을 만한 점수는 하나 없는 채로 멀쩡히 돈을 받고 일을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프렌즈>에 나오는 제스처로 사랑받지 않기가 더 어려웠다. 모두들 나를 좋아했고 내가 일 할 때 레스토랑의 매출이 급등하다가 내가 일하지 않는 주에 똑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늘 운이 좋았다. 애매한 행운이 열쇠고리처럼 따라붙었다.
한국에 있었던 일 년 동안은 혀가 굳을까 영어라는 언어가 영영 나에게서 멀어지는 게 아닐까 마음을 졸였다. 시국으로 밖에 나가지도 못하니 영어를 쓰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아예 불가능했다. 시험 삼아 동생과 몇 마디 나눠보는 회화에 쉬운 문장에도 말문이 막힐 때마다 머릿속이 새까매졌다. 놓치기엔 아까운 것들이었다. 소 뒷걸음칠 치듯이 겨우 이만큼 만들어 놨는데. 유창하지는 못해도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들어봤는데, 이런 내 소중한 재산에 녹이 슬다니. 뇌 한구석에 쌓아 뒀던 알파벳에 먼지가 쌓이는 게 느껴졌다. 심한 무기력으로 먼지를 털어낼 의욕도 없던 시간이었다. 한국에서의 위태롭고 불안했던 일 년.
지금 나는 싱가포르에 있다. 근무를 시작하며 한국어보다 영어를 곱절은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내 알파벳은 이제 먼지를 털어낸 정도가 아니라 번쩍번쩍 광이 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돌아가는 언어 회로가 느껴지니 하나라도 더 습득하고 싶어 몸이 닳는다. 자가격리 동안 <프렌즈>를 시즌 1부터 시즌 10까지 전부 돌려봤다. 너무 오래전에 보아서 가물가물하던 문장들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에피소드 하나하나에서 놓쳤던 단어들을 정리하고 처음 일하는 며칠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털어서 썼다. 그 단어들은 이제 내 것이다. 두 번 다시는 잊지 않을 것이다. 단어들을 쥐고 나니 프렌즈도 지겨워졌다. 오랜만에 새 드라마에 도전해 <퀸즈 갬빗>을 끝까지 다 봤다. 내용에 집중하느라 청해의 맥이 원활하지 않았다. 좋아했던 영화들을 영자막으로 틀어놓고 귀를 열었다. 그렇게 <마틸다>를 다시 보고 <캐치 미 이프 유 캔>, <바스타즈:거친 녀석들>, <킹콩>, <오션스 8>도 다시 보았다. 놀랍도록 명료하게 들린다. 한국어를 사용할 때처럼 정돈되고 적절한 단어로 예의를 챙기며 대화할 수는 없겠지만 매일매일 다른 이야기를 하며 바의 흥을 돋운다. 그리고 즐겁다. 더 많은 용어를 가지고 표현하고 문장을 만드니 나의 표정도 캐릭터도 다채로워진다. 손님들이 나를 좋아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몸짓과 영어로 나는 사랑받는다.
쉬는 날이라 하루 종일 성대를 쓰지 않았더니 근질근질했나 보다. 대신 손가락이 수다쟁이가 되었다. 몇 줄로 짧게 쓰려던 게 벌써 이만큼이나 길어졌다. 외국어를 하는 건 즐겁다. 어떻게 해도 한국어처럼 나오지 않고, 내가 사용하고 싶은 어휘와 표현을 70프로도 못쓰고 있지만 반토막짜리 실력으로 과분하게 귀여움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에도 ‘싱글리쉬’라고 싱가포르 특유의 억양이 섞인 영어가 따로 있다. 그런 새로움에 귀가 익는 것도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듣는 사람은 다 안다는 것이다. <프렌즈>만 열심히 보고 이태원에서 일할 때, 손님들은 나에게 아주 오래된 미국 스타일의 영어를 쓴다고 신기해했다. 10년이나 됐을 것 같은 묘하게 향토적인 단어를 사용한다고. 내가 프렌즈를 보고 영어를 배웠다했더니 다들 단번에 납득했다. 호주에서 1년을 보내고 한국에서 친구들을 다시 만난 날, 모두가 날 보고 오지(Aussie) 악센트가 배어 왔다며 낄낄 웃었다. 전혀 모를 노릇이었다. 일하면서도 항상 똑같은 억양을 사용했는데 나는 더 이상 아메리칸 악센트가 아니라 오지 악센트였다. 혹시 영국이나 호주에 있다 왔냐고 물어보는 사람을 지금도 종종 만난다. 인종적이고 차별적인 발언이지만 호주 발음이 그렇게 세련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늘 얼굴이 부루퉁 해진다. 호주 발음에는 영국과는 또 다른 죄수와 노동자의 거칠음이 들어있다. 계층에 따라 발음이 천차만별인 재수 없는 영국 영어 중에서도 바닥 계급인 것이다. 내 영어가 비록 10년 전의 촌스러운 것이라도 미국 발음이라고 으쓱했는데 살다 보니 그것도 어디에 떨어뜨리고 와 버렸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호주는 황량하고, 드넓고 원시적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습관처럼 하던 말이 두 마디가 있다. 하나는 Bless you. 누군가 재채기를 하면 멀리서도 블레스 유!라는 소리가 들린다. 영국에서 넘어온 말버릇인데 흑사병이 돌던 시절 기침하는 사람이 하도 죽어나가니까 인사치레로 신의 은총을 빌어 주었던 것이 유래란다. 그게 여적까지 남아 여기저기 은총을 뿌리고 다니고 있다. 사람 많은 거리에서 코를 벌름거리다 재채기를 하면 곳곳에서 은총이 쏟아져 내린다. 유쾌하고 귀여운 첫 번째 말버릇.
두 번째는 No worries다. 고맙다는 말을 듣거나 요청이나 부탁을 받을 때 Welcome 혹은 My pleasure 대신 쓰는 말. 직역하면 ‘걱정 없어’ 정도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호주 사람들의 전반적인 마음가짐이라고도 생각한다. 흔쾌히, 무겁지 않게 거뜬히 너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 저 말을 들으면 괜히 기운이 난다. 걱정 없어. 문제없지. 걱정 같은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저 말을 먼저 하는 나라는 호주 말고 본 적이 없다. 저 두 단어야 말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듬뿍 담고 있는 것 같다. 되새기고 보니 나는 호주를 꽤나 좋아했나 보다. 노 워리즈, 노 워리즈. 골백번 말해왔는데 단 한 번도 글로 적어본 적 없었다. 곧 올 아침에 출근을 앞두고 글을 마치며, 다시 한번.
NO WORRIES AT ALL, GU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