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세미 락다운 11째.
글 쓰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생체활동을 유지하고 뇌를 돌리고 생각을 정렬하고 기어코 손가락을 놀릴 수 있을 만큼의 힘. 하다못해 ‘무언가 해야겠다’라는 정도의 마음가짐도, 몸과 마음에 힘이 없으면 나오지 않는다. 지난 삼일 나는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최소한의 생리현상만 유지하며 눅진한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하루를 보냈다. 누워있다는 것은 기분이 나른해지고 고요해지는 일이다. 낡은 몸뚱이에서 쉴 새 없이 굴러가는 것은 달랑 뇌 하나 뿐이었는데 그 정도의 에너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먹는 것 싸는 것 움직이는 것에 쓸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누워있었다. 계속, 계속 누워있었다.
시간이 가도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구르륵 하는 내장의 소리가 간간이 들려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 맨 배때지에 올려놓고 가만히 천장을 보았다. 이만큼 좌절해 본 적이 얼마 만이었더라. 이렇게 힘들어 본 적이 대체 얼마 만인지. 누워있는 것은 좋았다. 이대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에 한 번 화장실을 들를 때마다 내 몸은 이층 침대에서 내려오며 삐걱거렸다. 종아리가 파들파들 떨리고 여간 없던 어지럼증이 찾아든다. 핑 도는 감각에 벽을 짚고 잠시간 몸을 추슬러야 하는 정도다. 누워있을 때는 삼일 밤낮 무언가를 씹지 않아도 인간이 참 잘 살아있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발바닥이 땅을 짚을 때마다 길지도 않은 몸이 종잇장마냥 휘청거린다. 땅도 하늘도 보지 못하고 뱅뱅 돌다가 힘이 풀려 엎어졌다. 삼일. 삼 일간의 와식생활이 이 정도인데 더 오래 누워있었던 인간이라면 재활이 어지간히 힘든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의 직립보행은 몸의 구석구석이 달라붙어 이루어지는 것이구나. 머리의 높이가 달라지는 것은 피가 흐르는 방향도 쓰던 근육도 달라지는 것이었구나. 오래 누워있었다. 그 대가처럼 한걸음 한 걸음에서 몸이 징징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악착같이 붙어있던 아랫배의 살점이 드디어 졸아들었다. 세상에. 내 허리가 이렇게 잘록할 수 있다니. 인간은 삼일을 안 먹어도 살 수 있지만 대신에 뱃가죽에 오래 머물렀던 무언가를 대신 가져가 나보다. 지금은 다시 볼록해졌다. 내가 살고 싶어서 음식을 먹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내 몸도 나도 종잡을 수 없게 간특한 놈이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오랜만에 마리나 베이를 달렸던 24일의 밤이었다. 나는 마리나 베이를 달릴 힘은 있어도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요 며칠 나는 상념과 긴장감에 짓눌려있었고 글을 쓴 다는 것은 그 생각들을 곱씹고 정돈하고 글자로 만들어 눈앞에 늘어놓아야 하는데 나는 그 짓이 하기 싫었다. 실없고 가벼운 것들이면 모를까. 몸을 움직이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되고 벌어진 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가는 시점에서도 나는 글을 쓰기 싫었다. 차라리 지금껏 못 움직인 몸을 한껏 움직이고 달음질쳐서 땀을 흠뻑 내는 것이 나에게 더 좋은 일일 것 같았다. 내가 운이 좋아서, 편하게 살아서 요 일 년간 그나마 글을 쓸 기력이 남아있었나보지. 원래는 하루에 몇 줄 일기나 찌그리는 게 다였으니까 이 정도면 오래 버틴거지. 나 답지 않게 끈질겼지. 그래도 글 쓰는 게 참 재밌는 일이라는 건 알게 됐네.
글을 쓰지 않는 것에 죄책감은 없었다. 모든 것은 힘이 남아돌아야 할 수 있는 거니까. 걷는 것, 먹는 것, 소리 지르고 우는 것, 숨 쉬는 것, 화를 내는 것. 심장만 뛰는 데도 기운이 쪽쪽 빨려나가고 있는데 그까짓 글이 대수인가. 세상에 멍청한 짓은 혼자 한 것처럼 침대에 누워있다가 마리나 베이를 조깅할 기력이 나서야, 그리고 다리가 하나 잘린 싱가포르 랜드마크의 꼴을 보고 나서야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내가 달리며 하고 있는 생각을, 싱가포르에 처음 오고 이곳을 달렸을 때의 기억을 나는 쓰고 싶다고. 끔찍하고 악몽 같지만 지난 삼 일간 내가 겪었던 구질구질한 일도 언젠가는 차분하게 묘사할 한 편의 소재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내가 쓰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쓴다. 계속 쓴다.
오늘 밤에도 나는 다리 잘린 마리나 베이를 뛰러 갈 것이다.
싱가포르 세미 락다운 11일째, 출국 9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