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을 극복하는 힘 by 엘리자베스 스탠리
군 복무 시절, 우리 부서장은 늘 금요일 퇴근시간이 되면 우리들을 불러 일장 연설을 하곤 했다. 라떼 이야기부터 주변 사건사고, 부대 분위기와 지휘관의 심기 등을 언급하며 늘 이런 말을 하곤 했죠.
"긴장해라. 지금은 긴장할 때다."
그러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계속 긴장하고 있으면 죽을 텐데?'
물론 상황에 따라 긴장을 해야만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도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늘 긴장하며 살면 제가 속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금방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악을 극복하는 힘"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탠리는 어릴 적 수많은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고, 장교 임관하여 군 생활을 하면서도 장기 파병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부조리 등을 겪고 전역을 했는데요. 그리고 그러한 유년기와 군 생활에서의 트라우마, PTSD에 기인한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신경과학을 연구하고, 그 연구의 정수를 그녀의 책 "최악을 극복하는 힘"에 쏟아 넣었습니다.
"수십 년 무시하고 억누르는 내 능력을 바람직하게 여겼다.
이것이 강인함, 자기 규율, 결단력의 표시라고 믿었던 것이다.
- P.23
한국 사회에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생을 정말 치열하게 살라고 하는 책과 방송이 많았습니다.
"고통을 즐겨라"라는 책도 생각이 나네요.
책에서는 이렇게 나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아야 직업적 성공,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말을 하는데요, 이러한 노력 뒤에 느껴지는 고통 통증은 이러한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반란"이라고 규정할 정도로 이러한 고통을 애써 무시합니다.
엘리자베스 스탠리 작가 역시 군에서의 격무를 통해 직업적으로 꽤나 인정을 받았으나 내면의 고통(반란)을 잠재우지 못해 결국 시력을 잃고 배우자와 결별하게 되는 신체적 정서적 한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체와 뇌의 구조는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의 생존을 위해 살았던 시대에 설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포식자로부터 위험을 감지하고 생존을 위해 노력하던 생각의 구조가 우리 현대인의 뇌에도 디폴트 값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죠.
지금 21세기 인간은 과거의 우리 조상들처럼 맹수나 가혹한 환경에 위협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많은 정보(정보 과잉), 그만큼 더 많이 요구되는 직업적 퍼포먼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각종 약물들(니코틴, 카페인, 알코올 등)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또 다른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환경은 과거의 인간과 달라졌을지 몰라도 우리 인간은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계속 받고
있는 것이지요.
작가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우리 뇌가 받아들일 때 생존 뇌와 사고 뇌라는 개념을 언급합니다.
의학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생존 뇌 : 암묵적 학습 / 편도체 * ex) 본능적으로 위협을 인지하는 능력
○ 사고 뇌 : 의식적 학습 / 해마 *ex) 맥락과 합리적 생각을 하는 능력
- P. 155 "스트레스를 겪는 동안의 사고 뇌"
그리고 이러한 생존 뇌와 사고 뇌가 협력적으로 나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어떤 구역 내에 위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구역이 바로 "인내의 창"입니다.
인내의 창이란 우리가 스트레스를 인지했을 때 사고 뇌와 생존 뇌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내면적 지혜(직관력)에 접근하도록 하여 스트레스 상황에 기민하고 적극적인 결정을 내리게 하는 영역이라고 합니다.
좀 상스럽게 말한다면 '넘어가면 멘붕이 오는 구역' 정도로 말할 수 있겠네요.
결국 이러한 인내의 창이 넓으면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현명하게 해소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인내의 창이 작은 사람들은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심한 경우 멈춰버릴 수(동결)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책에서 이러한 인내의 창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대해 꾸준히 언급을 합니다.
몇 년 전에 그릿이라는 책도 나왔었는데 한참 열풍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저도 읽어봤었죠.
GRIT 이란 것이 결국 "열심히 일하고 추진력 있고 역경이 있어도 참고 견디며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
이라고 정의되는데요, 쉽게 말해서 힘들게 살라는 것입니다.
작가가 살고 있는 미국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직장인들에게, 우리 모두에게 GRIT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높은 사회적 지위, 직업적 성공 등을 준다고 하죠.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가에 대해서는 우리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빡세게 사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만큼의 회복 없이 살게 되면 결국 해리, 불륜, 자해, 폭력 아드레날린 추구 등의 무척 위험한 행동으로 표현이 되게 됩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단순히 이러한 스트레스에 기인한 신체적, 정서적인 부작용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은 우리 신경 시스템에도 영향을 주는데요, 쉽게 말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사고 뇌는 극복해야 할 상황으로 인지 합니다. 그러나 생존 뇌는 "위험"으로 인지를 하는데 이러한 회복 없는 스트레스의 반복은 우리 생존 뇌를 계속 위협이라고 느끼는 상황에 놓게 되고 결국 이전보다 약한 스트레스에도 동일한 방법으로 대응을 하게 됩니다.(작은 충격에도 위협으로 느낌). 결국 우리 뇌의 사고 시스템에 커다란 협곡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로 뇌의 신경가소성이라는 특징입니다.
이러한 신경가소성에 의해 뇌의 영역은 재구조됩니다. 이게 깊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될수록 그 깊이가 깊어집니다. 마치 미국의 그랜드캐니언 대협곡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한번 파이기 시작하면 새로운 자극이 기존의 자극 대응 구조를 따라가게 되고, 그 골은 더 거대해지게 되며, 결국 그 흐름을 바꾸기 어렵게 됩니다.
생존이라는 인간의 숙명에 있어 우리의 뇌가 어떤 알고리즘으로 움직이는지(인내의 창) 그 알고리즘에서 우리의 사고는 어떻게 구조화되는지(그랜드 캐니언),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말 거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 담고 있습니다. 이 짧은 서평 안에 그 거대한 서사를 다 담을 수는 없겠지요.
처음 이 책을 읽기 전에 이해했던 "인내의 창"이라는 개념은, 그냥 참고 견디며 희망적인 생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보통은 그렇게 살기에 별 의미 없는 꼰대의 잔소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3주간 이 책을 읽으며 그 인내의 창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내 고통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내면의 대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서 내 머리와 몸이 진짜 하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인내의 창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