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매뉴얼이 있다면?

공부를 하게 해야 하는 부모의 고민

by 꿈꾸는 라만차

사무실에서 한참 집중하고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야. 너네 큰 금쪽이는 공부에는 소질이 없어. 그냥 얼굴 예쁘니까 연예인 시켜라."


응?


부서에 여성 근무자가 두 분이 계시는데, 두 분 다 아이 엄마다. 무척 친한(?) 관계에서 오가는 엄마의 육아에 관한 이야기에 공교롭게도 내가 끼어버린 모양새다.


"아니. 어렸을 때부터 공부 습관을 들이려면 엄마가 학습에 직접적으로 관여해야 돼요. 엄마가 꽉 잡고 끌고 가야 한다니깐요~"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 부모는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할까?


그분의 육아관은 이렇다.

어린 시절의 자기 주도 학습은 불필요하다.
초등 고학년까지는 부모가 학습에 깊이 관여해야 한다.
많은 것을 시키고 하게 하고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엄하게 끌고 가야만 공부를 할 수 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나와의 생각 차이가 너무 크고, 그런 생각을 또 다른 엄마에게 "강요"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답답해서 조금의 언쟁이 오고 갔다.


"너무 그렇게 아이를 옭아매는 건 오히려 공부에 흥미를 떨어뜨리고 반감만 생기게 하지 않을까요?

아이마다 생각도 다르고 성향도 다 다른데. 이제 여덟 살인데 그렇게까지 강하게 하는 건.."


그러자 그분이 답한다.

"ㅋㅋ 세상을 너무 낭만적으로 보시는 거 같아요. 그렇게 내 벼려두고 방치하면 애 교육 절대 못해요~"


아.. 네.. 뭐 각자의 삶이 있는 거니까.




문득 나는 어떤 교육관을 가지고 아이에게 공부를 하게 해야 할지 말은 쉽게 "이렇게 하겠다"라고 했지만 정리를 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공부라는 것이 단순히 학업(학교 성적, 수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교육 12년을 아주 잘 마치고,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여 그곳에서도 또 공부하고 그리고 사회에 나서게 되면.. 거기서부터 또다시 새로운 공부가 시작된다.


수능이라는 튜토리얼에서는 12년의 초중고 교육을 통해 매뉴얼을 습득하는 것도 공부지만,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데의 매뉴얼을 찾는 것 역시 무척 중요한 공부일 것이다. 결국 어떤 학업을 시키는가 만큼 중요한 것이 인생의 매뉴얼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학업은 부모가 깊이 관여하지 않아도 학교 교육과 부모의 관심 그리고 가이드 정도면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충분의 차이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러나 업이 아닌 인생의 매뉴얼을 찾기 위한 공부는 어릴 적 가정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 찾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러한 매뉴얼을 찾게 하기 위해서 나는 아이에게 세 가지의 교육을 시키고 싶다.



22.jpg 리우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 선수의 한마디 외침. "나는 할 수 있다"

첫째.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생각을 심어주고 싶다. 흔히 공부를 하는 머리와 사람은 따로 있다고 이야기 들을 한다. 서울대 가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적어도 그게 나는 아닐 거라는 단정적인 생각은 그야말로 생각일 뿐,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후생유전학적으로 바라봤을 때 인간의 뇌는 노화하여 죽을 때까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갈고닦으면 육체의 근육과 달리 더 효율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어른들의 일반화시킨 "공부머리의 주인은 따로 있다" 따위의 편견에 아이를 가둬 두고 싶지는 않다. 물론 노력만으로 누구나가 다 아인슈타인이나 모차르트 같은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노력을 통해 범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줄 필요가 있다.



11.jpg 때로는 부모의 강요된 공부가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둘째. 공부에 대한 자율성을 주고 싶다. 모든 공부는 동기 부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선택권을 가지고 의사결정하는 것이 내재적으로 동기화되어 있기 때문에 시켜서 하는 강제가 되는 교육은(물론 임계점 돌파를 위한 어느 정도의 강제는 필요하지만) 자율성을 빼앗겼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러한 상실감은 공부에 대한 동기를 사라지게 하게 된다. EBS 다큐멘터리 <공부 못하는 아이>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80개의 문제에 대해 자율성을 없앤 그룹과 자율성을 가진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을 했다. 자율성이 없는 그룹은 일정 시간이 지나자 집중도를 잃고 주어진 문제에 대한 난이도를 높게 평가 한 반면, 자율성을 가진 그룹은 훨씬 더 높은 집중력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을 했다. 자율성이 공부에 대한 흥미까지 높이게 한 것이다. 때로는 아이를 위한다는 부모의 착각이 욕심이 되고, 아이의 성장과 성취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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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만들어 주고 싶다. 사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내용(긍정적 생각, 자율성)이 다소 추상적인 요구사항이라면 세 번째는 매우 구체적인 사항이다. 학창 시절 학습도 그렇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의 매뉴얼은 바로 책이다. 교과서와 참고서라는 "책"에 수능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방법이 아주 구체적으로 쓰여 있다. 인생을 살아가며 먼저 많은 경험을 한 훌륭한 사람들이 좋은 책이라는 인생의 매뉴얼도

잘 써져 있다. 아니 이렇게 인생이라는 거룩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집에 가전제품을 하나 사더라도 그 안에 잘 쓰라고 매뉴얼이 첨부되어 있다. 문제는 이것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글자 단어는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긴 글을 읽기 위한 읽기 근력이 부족한 세상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긴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독서를 하지 않아 지식과 통찰력을 가지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실질적 문맹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릴 적부터 독서와 글쓰기가 생활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는 부모가 책을 읽고 가까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부모근 앉아서 TV 보고 넷플릭스만 보며 시간을 때우는데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독서의 세계에 빠진다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요즘 우리 아이는 유튜브 콘텐츠에 푹 빠져 있다. 한동안은 시청만 하더니 요즘은 유튜버가 되어 영상을 찍(는척하)고 있다. 고장난 태블릿 PC에서 자기 얼굴이 나오는 것만 봐도 꺄르르 웃는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행복해 하는 것이 너무 귀엽고 기특하기도 하다. 공부도 이렇게 해 주기를 바라는 부모로서의 욕심도 조금은 생긴다. 나는 부모님께 받지 못했던 사랑과 관심을 이 아이에게는 다 주고 싶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레이스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오늘도 나는 등대같은 아빠가 되려 책 한권을 손에 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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