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1. 아나톨리아 횡단

by 꿈꾸는 라만차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


"나는 다시 길을 떠났고, 조금 가다가 멈춰서 휴식을 취했다.

눈을 들어보니, 거북이 한 마리가 비탈길 위쪽에서

둥그런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친구여. 미리 말해두지만, 난 너와 경주하지는 않을 거야."




사람들은 누구나 멋진 여행을 떠나기를 원한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이유로 여행을 떠난다.


이 책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수십 년간의 기자생활을 마치고, 은퇴 후 보장된 안정적인 삶을 뒤로한 채

실크로드라는 멀고도 위험한 길을 따라 여행을 떠난다. 그것도 온전히 "걸어서".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책은 그의 여정 중 터키 일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나톨리아 횡단


그는 수백 년 전 순례자들, 그리고 많은 대상(大廂)들의 흔적을 찾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찾아 그는 옛 실크로드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걸어서 터키를 가로질러 이란까지 걸어간다는 유약한 노년의 외국인 도보여행자는 터키의 운전수들에게는 방해의 대상임과 동시에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의 여행이 계속될수록 그의 미친 여정은 운전수들의 입소문을 통해 영웅담 아닌 영웅담이 퍼졌고, 방문하는 마을마다 그는 마치 유명한 아이돌이라도 된 듯 마을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고 궁금해했었다.


물론 그의 여행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터키의 유명한 맹견 캉갈에게 물려 죽을뻔하거나, 쿠르드족의 정보원으로 오인받아 체포될 뻔하기도 하였으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이질에 걸려 저승사자 하이파이브 직전까지 가기도 했었다.(결과적으로 이질 때문에 터키에서 여정을 멈춰야만 했다)


이런 목숨을 건 여행을 그는 왜 하는 것일까?

이렇게 위험한 여정 일지 몰라서였을까?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사람들 앞에서 유명인이 된 느낌을 받고 싶어서 일까? 수십 년간 연론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터키의 상황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터키 마을에서 유명인 행세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도 높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 왜?


글쎄.. 작가는 책에서 왜 떠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되어 있지 않다. 그의 여행에는 그저 목적지와 계획, 그리고 사람과 우정만이 있었다.

그의 여행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의 시안까지 가는 것이었고, 터키에서는 이란으로 넘어가기 위한 몇 개의 도시들을 목적지로 삼았다. 그 도시들을 온전히 그의 두 발을 이용해서 천천히 걸어갔고,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게 된 경우엔, 차를 탔던 처음 위치로 다시 가서 그의 도보여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러한 여정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했다.

단 하루의 만남에도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농부, 걸어가는 노인에게 차를 태워주겠다는(완곡히 거절했지만) 많은 운전수들, 자기가 마시는 차, 먹는 밥을 나눠 먹자는 목동, 그리고 부족한 삶에도 손님을 최고로 대접하는 것이 자신의 명예라는 친절한 대부분의 터키 사람들.


결국 이 이야기는 책 뒤편에 써져있는 서평의 내용처럼 단순히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다.


그 사람이라 함은 그가 만났던 터키 농부, 목동, 운전수뿐만 아니라 작가 그 자신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졸업 선물의 저자 신영준 박사는 그의 책에서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 아닌 내가 있던 곳(돌아갈 곳)을 새롭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어쩌면 기나긴 여정의 목적은 내가 있던 곳에서의 끝난 사람(은퇴한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찾기 위해 그렇게 위험하고도 먼 길을 서두리지 않고 천천히, 때로는 그렇게나 고집스럽게 걸어갔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도 60세가 되어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면, 터키 같은 위험한 곳이 아니더라도 베르나르와 같이 도보로 어딘가를 떠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혼자 걷는 동안 나는 내가 있던 곳을 새롭게 느끼고,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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