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이타적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타인의 친절, 마이클 맥컬러프

by 꿈꾸는 라만차

인간은 이기적입니다.. 온 우주라는 것은 오직 내가 존재할 때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죠. 아무리 세상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없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또한 이러한 이기주의 적인 생각은 개인에만 국한되는 것일까요? 냉전시대 핵개발을 추진하던 프랑스를 미국이 막습니다. 프랑스의 안보를 미국의 핵우산으로 지켜줄 테니 더 이상의 핵무기는 프랑스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로 말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핵개발을 강행합니다.

미국은 파리를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인간의 이기주의(또는 본인 중심적인) 본성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개인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재산과 목숨까지 내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직업적 특성상 일반적으로 희생을 할 수밖에 없는 군인이나 소방관, 성직자 같은 직업들도 있지요.


분명 인간은 이기적인 것이 맞는데 어떻게 저렇게 타인을 위해 희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요? 또한 왜 우리는 저런 거대한 희생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취약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도우기 위해 기부를 하는 것일까요?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 교수인 마이클 맥컬리프는 그의 저서 "타인의 친절"에서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서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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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 우리의 조상들은 타인에 대해 결코 지금처럼 관대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타인은 전혀 정보가 없는 어떤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존재들이었고, 굳이 같이 지낼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환영하는 두 팔이 아닌 화살과 돌팔매로 그들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원시.jpg 외부의 접촉 없이 석기시대의 삶을 살고 있는 센티넬 섬의 원주민들은 외부인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러한 우리 선사시대 조상이 조금 더 먼 혈연관계인 친척으로부터 주변인까지 받아들이게 된 것은 농업혁명 이후부터입니다. 노동력이 생산성의 가장 큰 요소로서 "사람"이 대두된 것이다. 한 지역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게 된다는 것은 나의 노동력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이고, 다른 누군가의 노동력이 내게 필요한 것이므로 타인에 대한 친절함을 가지게 된다. 타인에게 친절해야만 나 역시 그러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농경시대로 접어들며 인류의 생활 모습도 크게 바뀌게 됩니다. 가족, 혈연 단위 부락에서 국가라는 큰 조직으로의 변화가 생기게 되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계급, 신분의 차이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부의 불평등이 생기게 됩니다. 국가의 지도자는 많은 사람과 넓은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사람들의 충성심이 필요했을 것이고요. 이러한 충성심은 개인의 우상화 작업을 통해 생겨나게 할 수 있으며, 그러한 하나의 방법으로 국가의 약한 사람을 지원해 주는 방법, 즉 신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이 미망인이나 고아를 챙기고, 이들의 수호자로 자처하면서 자기 백성에게 충성심과 감사한 마음을 심어주는 것일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원시 시대 인간도 자기 동료들의 칭찬과 비난에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분명 같은 부족의 구성원들은 부족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여겨지는 행동에 대해서는 칭찬을 해주었을 것이고, 해가 된다고 믿기는 행동에 대해서는 비난을 퍼부었을 것이다.


농경시대가 시작되고 수천 년이 지난 뒤 이른바 '축의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타인과 약자를 돕는 것에 대해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이유, 즉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이 생기게 됩니다. 이는 연민에 대한 일종의 경험법칙으로, 아주 감동적이면서 동시에 실용적인 법칙입니다. 이러한 황금률은 바로 호혜주의에 기인하는데요, 즉 이타적으로 남을 도와주면 남들 역시 나를 도와준다는 것인데, 특히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알렉산더는 그 호혜주의를 '간접 호혜주의'라고 불렀습니다.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으면, 그러한 도움을 '보는' 제삼자가 있고, 이러한 도움의 목격이 또 다른 도움을 만들어 내는 선순환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호혜주의는 타인에게 직접 도움을 받거나, 내 혈육이 이익을 얻게 되거나, 도움 제공자를 잠재적 보답 상호작용자로 판단해서 개인들에 의한 호혜주의 상호작용에 참여하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축의 시대 이후 약자에 대한 "연민"은 보다 더 실용적인 것으로 변했습니다. 16세기 이론가들의 가난 구제는 당시 가장 큰 문제들이었던 질병과 범죄,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시민의 소요 행위 등을 막는 하나의 방편이었습니다. 그 이후 18세기부터는 인간의 평등, 존엄성, 자연권에 대한 확신을 가진 계몽주의 지식인에 의해 자국민의 행복뿐만 아니라 인도주의적 위기로 고통받는 타국의 국민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생겼습니다. 리스본 대지진처럼 과거에는 불가피한 비극 또는 필요악이라고 여겨졌던 일들이 이 시기부터는 인륜에 어긋나는 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근대로 접어들며 이러한 계몽주의가 현대 복지국가의 가치가 되었고, 두 번의 큰 전쟁을 거치며 세계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불운한 사람들의 운명을 개선하려는 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인류의 입장에서 나에게 전혀 이익이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생면부지의 남을 돕는다는 것은 "내가 도움을 준만큼 언젠가 어디선가 받을 것이다"라는 기대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남들은 돕는데 들어가는 한계비용이 줄어들게 되고, 그에 따라 남을 돕는다는 행위 자체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타인의 친절"에서는 이기적인 인류가 어떻게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게 되었는지를 유전학적, 역사적 배경을 통해 잘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나와 우리 가족 역시 매월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국내, 외 어린아이들을 위해 일정 금액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기부의 마음은 역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위험하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서인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신박사님과 고 작가님 팟캐스트 방송하시던 시절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기심을 공동체를 위해 써야 합니다. 우리가 이타적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마도 체인지 그라운드에서 만드는 수많은 콘텐츠와 씽큐베이션과 같은 활동이 이기적인 측면, 즉 이익을 내는 행위 자체로 봤을 때는 별로 효과적이지는 못하겠지만, 이타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공동체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헌신과 희생, 배려도 너무 지나치면 독이 됩니다. 즉 공동체의 발전(이타적)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수익성 있는 사업(이기적)을 통해 현실화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 효과적인 방법이고, 이러한 모델이 바로 이타적 이기주의자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번 책 "타인의 친절"을 통해 인간이 왜 약자에게 연민을 가지고 도와주는지에 대한 유전적, 사회적, 역사적인 배경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 어떻게 이타적 이기주의자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를 받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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