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고담이라는 거울, 배트맨이라는 소모품
"Un diavolo scaccia l'altro." 이탈리아의 이 격언처럼, 〈다크 나이트〉는 악마를 쫓기 위해 또 다른 악마가 되어야만 하는 자들의 처절한 기록이다. 전작 〈비긴즈〉에 비해 브루스 웨인의 개인적인 서사가 줄어든 점은 아쉽지만, 배트맨과 조커, 하비 덴트와 고든이 각자의 정의관을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파열음은 그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특히 내 마음을 흔든 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존재, 조커였다. 그는 고담을 자신의 놀이터처럼 휘저으며 혼돈을 퍼뜨린다. 반면 웨인은 그 혼돈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방어선을 구축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웨인은 그저 방어에 급급할 뿐이다. 조커라는 무질서를 '규칙과 계획'이라는 낡은 도구로 통제하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웨인 역시 한 명의 인간이기에, 선택의 기로에서 너무 오래 서 있었고 결국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말았다.
조커를 보며 느낀 것은 연민이 아닌 미스터리함이다. 그는 무언가를 상실해서 슬픈 게 아니라, 그 상실조차 망각한 채 파괴를 즐긴다. 고담이 약해질수록 배트맨과 웨인 사이의 가면은 옅어지고, 선과 악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부패한 이들에게 배트맨은 무법자이자 공포의 대상이며, 선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조커 역시 같은 각도의 공포다.
결국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인간을 어떻게 정의 내릴 것인가. 정의와 공평이 고작 '운'에 의해 결정되는 동전 던지기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그 무너져가는 방어선 뒤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다크 나이트 한줄평]
"역설적 미소는 규칙을 버리지 않고서는 붕괴시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