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7월, 나는 비가 새는 부러진 우산으로 일주일째 장마철을 나고 있었다. 현관에서 나설 때마다 오늘은 꼭 우산을 사야지 다짐했지만, 지난주에는 우산을 사지 않고 커피 원두를 샀고, 그저께는 우산을 사지 않고 티베트 여성들이 만든 헤어밴드를 샀으며, 어제는 우산을 사지 않고 채소 탈수기를 주문했다.
이상하게도 우산을 사는 데는 부지런해지지 않는다. 집은 비바람을 막아주니까 우산은 비 오는 날 집 밖의 집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텐데, 우산에 쓰는 돈은 왜 이렇게 아까울까. 매번 결정적인 순간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더이상 미룰 수 없을 때가 되어야 겨우 사고는 했다.
싼 것을 사면 꼭 한 번은 고장 나고, 돈을 좀 주고 고장 안 날 튼튼한 것을 사면 어디선가 잃어버린다. 살면서 지금까지 부러진 우산이 7개, 잃어버린 우산이 12개쯤 될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의도치 않게 우산을 버리게 되는 건 마찬가지. 어차피 잃어버리거나 고장 날 우산을 위해 굳이 돈도 에너지도 쓰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진짜 우산을 사고야 만다.’ 하며 비장하게 나가면 왜 이럴 때일수록 날씨 요정이 힘을 발휘하는지. 밖에 나가면 반짝 비가 그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비가 쏟아지니, ‘그냥 내일 사지 뭐.’를 무한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안 쓰는 우산 하나 나 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그날도 우산을 사지 않고 복숭아를 사러 집에서 5분 거리의 과일 가게에 가는 중이었다. 하늘은 장마철답게 꾸릿꾸릿했지만 10분 만에 비가 오지는 않을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며 지갑과 장바구니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낮은 빌라들이 촘촘하게 들어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걷던 중 툭 하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쓰기 무섭게 빗방울이 후드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뭐야. 집에 돌아가야 하나? 100미터만 더 가면 되는데. 그냥 얼른 뛰어갔다 올까?’하고 고민하던 찰나 반대편에서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가 우산을 쓰고 나타났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더니 세상 큰일 났다는 표정으로 급히 손짓을 하셨다.
“어머! 아가씨, 우산 없어요? 일로 와 봐. 여기 우리집인데 내가 하나 줄게.’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아주머니는 바로 옆 빌라로 사라지셨다. 얼른 아주머니를 쫓아 그 건물로 들어갔다. 5층짜리 빌라의 반 층을 내려가니 창고로 보이는 문이 있고, 그 앞에는 종이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여러 색깔의 우산이 네다섯 개쯤 꽂혀 있었다. 아주머니는 우산 더미를 이리저리 헤집더니 하나를 쑥 꺼내 내게 건네셨다.
“어디 보자, 으응, 아가씨한테는 이게 딱이겠다.”
까만 물방울무늬가 그려진, 손잡이와 꼭지도 까만 비닐우산이었다. 누가 안 쓰는 우산 하나 주면 좋겠다고 말한 게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다니.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얼떨떨했다. 이 아주머니를 만나려고 내가 지금까지 우산을 안 사고 있었던 건가?
“아... 정말 너무너무 감...”
“그럼 들어가요~.”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위층으로 경쾌하게 사라지셨다. 등장만큼이나 LTE급으로 빠른 퇴장이었다. 점점 멀어지는 아주머니의 등을 향해 ‘감사합니다’를 크게 외쳤다. 다시 반 층 올라가 현관 앞에서 물방울 우산을 활짝 펴 보았다. 우산살도 멀쩡하고 짱짱했다. 이 우산은 비도 새지 않을 것이다. 우산을 쓰고서 그사이 더 거세진 빗줄기를 유유히 뚫고 복숭아 1kg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머니께서 주신 물방울 우산과 함께 유난히 눅눅하던 그해 장마철을 지났다. 평소처럼 부러지지도 잃어버리지도 않았다. 몇 개월 뒤 우산 테두리 부분이 찢어졌을 때는 실로 잘 꿰매 주었다. 제일 아껴서 사용한 공짜 우산이었다.
석 달 전 이사 온 집의 양철통에는 우산 세 개가 꽃혀 있었다. 전 주인이 남기고 간 것들이다. 이곳 남부 스페인은 비가 자주 오지 않아 지난 1년 9개월간 우산을 편 적이 10번도 채 안 되고, 나는 여전히 우산을 잘 사지 않는다. 얼마 전 오랜만에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우산을 챙기고 문을 잠그려다 말고 양철통에 꽂힌 우산 하나를 더 챙겼다. 출근길, 학생들이 많이 드나드는 학교 문 옆에 슬쩍 하나를 놓아두고 강의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