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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Jul 30. 2021

콜미바이마이네임

내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길



여름이면 찾게 되는 영화가 있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기쿠지로의 여름>과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미 바이 유어 네임>. 두 영화 모두 한여름이 배경인데도 화면에 가득 찬 반짝이는 물을 보며 차가운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청량해진다.


종일 <기쿠지로의 여름> 배경음악인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 연주곡을 듣다가 밤이 되어 <콜미바이유어네임>을 다시 보았다. 이탈리아 북부의 초록색 호수에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욕구를 느끼며 엘리오와 올리버 사이의 긴장감을 숨을 죽이며 따라갔다. 영화가 시작한 지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곧 떠날 올리버에게 엘리오가 우리는 너무 많은 날들을 낭비했다며 말하는 장면에서 나도 저것과 똑같은 말을 누군가에게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는 나의 나라도 그의 나라도 아닌 곳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 그가 살던 셰어하우스에서 갔던 날이 생생하다. 그의 방은 좁은 복도에 일렬로 늘어선 세 개의 방 중 가운데에 있었다. ‘Museum for Stranger’이라고 쓰인 간판이 걸려 있는 방문을 열자 대안 전시공간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층고가 높은 방에는 벽면 가득 각기 다른 크기의 캔버스가 촘촘하게 걸려 있었다. 쨍하면서 부드러운 색감의 그림을 눈으로 좇다 구석에 놓인 낮은 매트리스와 기타를 보고서야 여기가 갤러리가 아니라 그가 사는 방이라는 걸 실감했다.


가난한 학생이었던 우리는 주로 돈이 들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공원을 걷고 배가 고파지면 2달러짜리 커피를 주문하면 도넛을 공짜로 주는 카페에서 산 커피와 도넛을 공립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먹었다. 저녁이면 잡초가 정글처럼 무성하던 그의 셰어하우스 뒤뜰에서 티백 두 개를 풀어 진하게 우린 밀크티를 마시며 음악을 들었다. 그는 슈퍼마켓에서 파는 50센트짜리 쿠키와 하얀 양초 하나만 가지고도 일상을 아름답게 꾸밀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있는 자리에는 늘 장소와 분위기에 딱 맞는 음악이 있었고 종이 한 장과 펜 하나로 놀 거리를 수십 가지는 만들어낼 줄 알았다.


매일같이 붙어 다녔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확인한 건 그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한 달 전이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기에 우리 앞에는 서른 밤만 남아 있었다. 이 시작이 시한부 연애가 될지장거리 연애가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하지도 않았다.


한 달 후 그가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내가 한국으로 귀국하며 스탑오버로 그의 나라에 들르고, 그후 그가 내가 사는 곳에 오고 또 내가 가고를 2년 가까이 반복한 어느날 그가 짐을 싸들고 한국으로 왔다.


그가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두 번의 작은 전시회를 여는 동안 나는 학부를 졸업하고 한국어교육 석사 과정을 시작하고 논문을 쓰고 대학에서 한국어강사 일을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서 약간의 예술적 터치가 일상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주는지 배웠고, 그는 내게 계획해서 차근차근 삶을 일궈나가는 걸 배웠다고 했다. 그가 나와 함께 있기 위해서 그의 인생의 일부를 쪼개서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자기를 재정의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소속이 바뀌고 신분이 바뀌었다. 그는 이걸 견디기 힘들어했고 나는 힘들어하는 그를 달래는 데 지치기 시작했다. 2년을 후, 그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똑같이 사랑하고 똑같이 이별하는데 왜 그리움은 시간의 격차를 두고 찾아오는 걸까. 그는 우리가 함께 만든 모든 것들을 두고 떠났고, 나는 그 모든 흔적과 함께 남았다. 툭하면 그 흔적과 마주치고 무너졌다. 흔적은 힘을 주어 지우거나, 다른 것들로 덮어버렸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던 것들은 시간에 마모되어 점점 흐릿해졌다. 그가 뒤를 돌아보기 시작한 것은 내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후였다.      


언젠가 생일이 언제냐 묻자 그는 '고무'라고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며 어리둥절해 하니 ‘고가쯔 무이까’ 그러니까 자기 나라말로 5월 6일을 줄여서 '고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거 아냐며, 콘돔도 고무라고 부른다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그 후로 고무라는 단어만 들으면 그의 생일과 콘돔이 동시에 떠오르고는 했다.


한동안 내 모든 아이디와 비밀번호 끝에는 56이 달려 있었다. 내 생일보다 그가 태어난 날이 훨씬 중요하던 시절,  떨어져 있던 날이 함께 있던 날보다 많던 시간에 만든 것이다. 엘리오와 올리오가 서로의 이름을 바꿔서 부르듯, 내 아이디, 내 아이덴티티에 그의 별명과 생일을 넣는 것으로 그가 내 일부가 되었으면 했다.     


그와 헤어지고도 오랫동안 하루에 몇 번씩 인터넷 아이디 칸에 그의 애칭과 생일을 입력했다. 서서히 56은 평범한 두 개의 숫자가 되었다. 일 년에 한 번, 5월 6일이 되면 내가 의미 없이 치고 있는 이 숫자가, 이 알파벳이 뭐를 의미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번에는 꼭 아이디, 비밀번호를 바꿔야지 하다가도 어김없이 귀찮아져 ‘6개월 뒤 변경’을 설정하는 걸 반복하며 몇 년이 흘렀다.


삼 년 전 5월 6일, 드디어 모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바꿨다. 아이디에 쓴 그의 애칭을 지워내고 56을 떼어냈다. 애인의 애칭과 생일이 아닌, 내게 영감을 주는 단어와 내 생일의 숫자를 조합해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들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고무'라는 글감을 받고  . '어렸을 ' 시작하는 글과 연애에 대한 글은  읽게 되는데(막상 읽으면 재미있고 감동적인 것도 많지만)  소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이것 . 아무래도 처음이자 마지막 연애 이야기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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