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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Sep 22. 2021

코로나 시대의 한국행

격리 면제받아 한국 다녀왔습니다





인천공항에 쓰인 ‘도착’이라는 한글을 보는 순간 한국에 왔다는 게 실감 났다. 방역 요원들이 시키는 대로 준비해온 자가격리 면제 서류를 제출하고 방역앱을 깔고 이것저것 쓰고 대답하고 나니 금세 짐 찾는 곳까지 나와 있었다. 이 모든 게 신속하고 체계적인데 친절하기까지 하다니. 이렇게 일하는 나라의 사람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저녁 8시의 공항철도 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혼자든 둘이든 사람들의 눈은 한 손으로 쥐고 있는 휴대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얗고 말끔하고 단정했다. 마스크 효과인지 다들 예쁘고 잘생겨 보였다. 2년 만에 맡는 서울의 공기에서 무균실 냄새가 났다.      


 11시가  되어 동대구역에 마중 나오신 부모님을 만났다. 아빠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흰머리가 늘었고 정수리가  벗겨져 있었다.   전만 해도 어디를 가나 10년은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들으셨는데 이제는 어떻게 봐도 60대처럼 보였다. 내가 나이를 먹는 것보다 늙어가는 부모의 얼굴을 보는  훨씬 서글펐다.


매일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설거지를 못 하게 하는 엄마와 실랑이하며, 아직 운전면허가 없는 과년한 딸을 태우고 여기저기 다니는 부모님께 죄송해하며 일주일을 보내고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에 갔다.


서울에서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후배이기도  친구 초의 집에서 머물렀다. 최근에 이사한 초의 동네는 서울 남쪽 끝자락에 있어 조금만  가면 성남이 나왔고, 디자인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결을 이루고 있는 이층주택들이 모여 있어 차분했다. 층수 제한 때문에 아파트 단지가 높지 않아 흉하지 않았고 산책하기 좋은 하천이 있었다.


초의 집은  사이에 있는 신축 오피스텔이었다. 국어 교사답게  벽면이 책으로 빽빽했다. 이런 곳은 얼마 하는지 궁금했는데 전세가를 듣고 놀라  소리를 여러  내뱉었다. 무섭게 치솟은 서울의 집값을 고려하면 그것도  편이라는 말에    놀랐다.     


밤에는 초의 퀸사이즈 침대에서 함께 잤다. 불을 끄고  자라고 말한 다음에도  시간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었다. 아침 7시면 집안 여기저기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알람 소리, 음악 소리, 뉴스 소리와 번쩍거리는 형광등 불빛에 잠이 깼다. 초가 아침에 시끄러울 거라고 미리 일러주기는 했는데 준비하는 행동이 부산스럽다는 말인  알았지 소리로 시끄러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초가 나가고 번호키 잠기는 소리와 함께 집이 일순간 조용해지면 잠시 침대에 앉아서 고요함을 즐기다가 하루에  타임은 있는 약속을 소화하러 나섰다.


2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마스크를 쓴 채로 껴안고 반가워하다가 음료나 음식이 나와서 마스크를 벗는 순간이면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러다가도 눈앞에서 친구를 직접 보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 친구의 눈썹이며 이마, 입꼬리와 목소리까지 하나하나 눈으로 캡처했다. 그것도 부족하다 생각될 때면 나중에 보려고 대화하는 모습을 타임랩스로 찍었다.      


대화 주제의 팔 할은 서울의 집값과 주식 이야기였고, 모두의 주 고민은 회사원, 프리랜서, 교육공무원, 자영업자 등 직종과 연차에 상관없이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였다. 마무리는 언제나 진로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는 말과 작은 한숨이었다.     


서울에서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결국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진주회관의 콩국수도 못 먹고, 8월 말에 문 닫는 서울 극장에도 못 가고, 한강에서 달리기도 못 하고, 가려고 했던 몇몇 책방에도 못 갔다. 사람을 만난 것 말고는 한 것도 없는데 그마저도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다 만나지 못했다. 20대를 온전히 보내고 30대를 형성한 곳을 향한 뭉친 그리움을 풀어내기에 일주일은 너무 짧았다.      


대구로 가는 KTX 안에서 눈으로 캡처해 놓은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둘 떠올리고 대화를 복기하며 그때 우리가 나눈 대화들이 서로가 곁에 없는 시간을 잘 어루만져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보자고 한 약속이 빈말로 남지 않기를 바랐다.


스페인에 돌아온 지 20일이 지났고 한국과 나 사이에는 또다시 7시간의 시차가 생겼다. 한국에서는 가을의 시작에 있었는데 다시 여름의 중앙으로 돌아왔다. 다시 홈그라운드에서 러닝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얻어온 에너지가 떨어지거나 친구와의 대화가 그리워질 때면 찍어온 타임랩스를 꺼내 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마스크 없이 만나서 껴안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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