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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Sep 28. 2021

대모라니요, 제가요?



몇 주 전 학생 대표에게서 이런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선생님, 다음 주에 있을 졸업식에서 대모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대모? 갓마더? 그거 아기 세례받을 때 정하는 거 아닌가? 그걸 왜 졸업식에서? 그리고 나한테? 어리둥절했다. 현지인 동료 선생님께 이게 무슨 뜻일까 물어보니 스페인 대학에서는 졸업식 때 선생님 중에서 대모와 대부를 선정해 축사를 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졸업식 축사를 해 달라는 말인 것이다. 이번 졸업생들은 2년 전 스페인에 와서 처음으로 가르친 데다 마스크 없이 온전한 대면 수업을 했던 학생들이라 더 마음이 가는데, 이들이 졸업하는 자리에서 축사를 하게 되다니, 내게도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축사를 듣는 사람에서 어느새 하는 사람의 짬이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학생 때 들었던 축사를 떠올려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축사란 나랑 크게 상관없는 윗사람들이 전형적인 문장들로 적당히 시간 때우는 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무슨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에게 가 닿을까 생각하며 나의 졸업 즈음을 떠올려 보았다.      


내 20대를 내내 장악한 감정은 ‘불안’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생각은 없으니 취업을 해야 하는데, 졸업하고 바로 취업은 할 수 있을지 원하는 직종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늘 불안했다. 불안함을 덜어내려고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고 집착했다. 뭐든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어서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고, 돈도 벌고 글 쓰는 일도 하려면 카피라이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경쟁률이 상당했던 연합광고 동아리에 무려 재수해서 들어갔다.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스터디하고 분기별로 경쟁 PT를 하고 광고 전시회를 하고 기업과 협업을 하다 보니 이력서에 쓸 내용이 한 줄 한 줄 길어졌다.      


이 계획은 22살 때 휴학을 하고 떠난 유럽 여행 중 파리행 비행기에서 한 프랑스 남자를 만나며 완전히 틀어졌다. 비행기가 뜨기 전 그는 내게 유창한 한국어로 휴대폰을 빌려줄 수 있냐 물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 지금처럼 외국인이 많이 살 때가 아니어서 외국인이 이렇게 유창하게 한국어를 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기꺼이 휴대폰을 빌려주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서 그 사람과 긴 비행 동안 긴 대화를 나누었다. 남자의 이름은 토마, 나이는 21살, 한국에서 2년 살고 귀국하는 길이라 했다. 한국이 좋아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한국에 왔고,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프랑스어 과외를 하며 지냈다고 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토마의 수준급 어휘력과 문장 구사력에 감탄했다.      


토마를 만나고 난 후, 신기하게도 그전까지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토마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가지 계기가 더해져 4학년 마지막 학기 진로를 바꾸어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석사에 진학하기로 했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직업을 갖게 되었고 10년째 카피라이터가 아닌 한국어 선생님으로 살고 있다.      


한국어 교육 일을 시작하고 언젠가 해외에서도 일하겠다는 계획은 있었지만 그게 코스타리카와 스페인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고, 언젠가 꼭 책은 쓰겠다고 생각했지만, 첫 책이 독립출판이 될 줄도 몰랐다. 계획을 세우고, 어떤 건 지켜지고, 어떤 건 수정하고, 변수가 생기고, 못 지키고, 또 수정하고, 이러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다 나쁜 것도 아니었고 계획대로 됐다고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점점 계획에 집착하는 성향이 옅어졌고 계획보다는 방향성을 잘 갖고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터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더욱.      


올해 초 달리기를 시작할 때 러닝 앱의 가상 트레이너가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달리기할 때 시선은 전방 30m 정도에 두는 게 제일 좋다는 것이다. 너무 멀리 혹은 가까이 시선을 두면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00세 인생에서 전방 30m는 어디쯤일까. 6개월 후? 1년 후? 여전히 나의 진로 고민은 끝나지 않았고, 5년 뒤의 나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전혀 모르겠다.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내가 학생들에게 덕담 비슷한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걸까. 아니, 똑같이 흔들리고 있으니까 더 와닿을지도 모르지. 결국, 이런 내 마음을 솔직하게 나눠보기로 했다.      


졸업생 중에서는 전공을 살리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4년 동안 공부했던 한국어와 한국학과 전혀 관계없는 일이나 공부를 하게 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이 오면 4년 동안 뭘 공부했나 싶은 순간에 자괴감이 들지도 모르지. 하지만 유럽을 중심에 놓은 지도 동쪽 끝에 있는 세계에 대해 탐구하고, 유럽어와 전혀 다른 구조의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 다르게 사고하려고 애쓴 시간은, 그들이 어떤 공부와 일을 하든 유연하게 사고하고 넓게 볼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축사 원고를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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