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대초록 Mar 15. 2020

스페인 국가비상사태 속
코로나 시대의 하루



어제부터 스페인은 국가비상사태에 들어갔다. 정부에서 국가 봉쇄령을 내려 식료품 및 생필품 구입, 병원 방문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만 외출이 허용된다. 마드리드는 슈퍼마켓과 약국 등을 제외한 모든 상점이 폐쇄됐고 말라가도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 휴교한 날 이후로 장 볼 때 말고 계속 집에 있기는 했지만, 이제 강제성까지 더해져 꼼짝없는 격리 모드다. 


텅 빈 말라가의 최대 번화가, 라리오스 거리



격리 3일차, 비가 오고 흐리다. 일 년 360일 맑은 말라가에서 보기 드문 비. 이 봄날에 날씨까지 좋았으면 억울했을 텐데. 다음 주도 내내 흐리고 비라니. 나름 집에 있기 딱 좋은(?) 환경이다. 


어젯밤 소파에서 책 읽다 꾸벅꾸벅 졸던 중 난데없는 우렁찬 박수와 함성 소리에 잠이 깼다. 박수 소리는 꽤 높은 데시벨로 오랫동안 이어졌다. 축구 경기라도 있나? 에이, 이 시국에?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다 박수 소리의 정체를 알았다.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의료진에게 감사와 마음을 담아 전국민이 밤 열 시 발코니에서 박수를 치는 이벤트를 벌인 거란다. 이탈리아에서는  코로나에 지친 사람들이 발코니에 나와서 서로 노래를 부르던데, 이 시국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https://youtu.be/nZ70-M4eQ6c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바로 요가 매트 위로 올라갔다. 짧게 명상을 한 후 10분 동안 유튜브 모닝 요가 영상을 보며 따라 했다. 조금 에너지가 돌아서 수리야 나마스카라 A 5세트, 머리서기까지 한 후 사바아사나를 했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구운 빵에 올리브유를 뿌려 아침을 차렸다.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한국과 스페인의 뉴스를 확인했다. 스페인어 신문 기사 제목과 부제목을 쭉 읽고 중요한 표현과 단어를 공책에 정리했다. 정확히 언제까지가 될지 모를 이 지난한 격리 기간을, 스페인어 집중 시간으로 삼아 보기로 했다. 다음 주부터 온라인으로 대체되기는 하지만, 스페인어 그룹 수업도 시작한 참이다. 


며칠 전 한 온라인 외국어 학습 사이트에서  스페인어 수업을 신청해 들었다. 선생님은 아프리카와 더 가까운 스페인인,  카나리아 제도에 살고 있었다. 음식 관련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선생님이 열아홉 살 때부터 비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비건 지향 채식을 하고 있다 말하니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했다. 지금까지 한국 학생을 꽤 많이 가르쳤는데 채식하는 사람은 본다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국과 스페인의 비건 요리로 흘러갔다. 


선생님은 한국 음식을 먹어 보고 싶었지만 고기가 많이 들어간다고 들어 시도해보지 못했단다. 나는 사실  전통 한국 음식은 채소만 활용한 게 굉장히 많다며, 요즘 플렉시베지테리언 생활을 하고 있는 요리 유튜버 국가비의 비건 한국 음식 영상을 보내주었다, (국가비는 현재 영국에 살고 있고 비디오도 영어임) 그리고 선생님은 내게 온갖 요리를 비건화한다는 영국  블로거의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수업 직전 공부한 코로나 바이러스 표현을 사용해보고 싶어서 슬며시 주제를 그쪽으로 돌렸다. (휴교는 했지만 국가비상사태  선포 전) 선생님은 코로나의 심각성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아직 카나리아 섬에는 확진자가 몇 명 없는데  마드리드의 생각 없는 학생들이 휴교 기간, 카나리아에 여행 오려 한다며 분개했다. 마드리드 봉쇄령을 외치며. (결국 국가 봉쇄령이 내렸으니 이제 안심하고 계시려나) 그룹 수업 때도 코로나에 대해 할 말이 많았는데 어휘가 부족해 어버버하다 온 한을 이 수업에서 다 풀었다. 


선생님과 죽이 잘 맞아  즐겁게 수업하고, 5회 패키지를 끊어 다음 주 월, 수, 금 수업도 예약했다. 화.목은 그룹 수업이 있으니 이 정도면 스페인어 집중이라 할 수 있겠지?



또 다른 계획은 책 읽기와 글쓰기. 


책은 매일 읽고, 이틀에 한 권 완독하기. 

글은 이틀에 한 번씩 쓰기. 

이렇게 쓰는 근육도 키워보려 한다.


내향적인데 활동적인 사람이라, 집에서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만큼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해, 이 격리 시간이 쉽지는 않겠지만, 규칙성을 유지하며 최대한 잘 보내보려 합니다.




덧1, 한국은 좀 수그러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덧2, 그러고 보니, 나 코스타리카에서도 국가비상사태를 겪은 적이 있었네?  태풍 때문에 휴교령 내려 5일 동안 집에 갇혀 있었다. 어쩐지, 이 상황 익숙하다 했어.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인의 코로나, 너무 늦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