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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Mar 18. 2020

스페인에서 격리 중입니다




스페인 자가 격리 5일째.


매일 상황이 휙휙 바뀐다.

하루는 휴교령, 하루는 국가비상사태 선포, 다음날은 외출 금지령. 그다음은 국경 봉쇄, 이제 EU 국가 외국인 입국 금지까지. 내일은 또 뭘까. 


지금 스페인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외출을 할 수 없다. 나라에서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 '권고'한 게 아니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휴교령 내린 다음날도 분위기 하나 안 바뀌고 식당이며 카페며 공원이며 사람들로 북적거리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바로 외출 금지령이 떨어졌다. 어길 시에는 벌금을 물어야 하고 길에는 경찰들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이동을 감시한다.


지난 금요일 슈퍼마켓에서 사재기의 전조가 보였다면 월요일에 마트에 갔더니 진짜 사재기가 시작됐다. 파스타와 쌀은 코너는 텅텅 비어있었다. 그래도 쟁여두지 못하는 과일과 야채는 풍성하더라


몇 안 되는 '합법적'으로 외출할 수 있는 시간인 장 보러 가는 길. 일부러 집 근처 마트가 아닌, 걸어서 15분 거리의 비건 식료품점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확실히 며칠 전과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동네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고 길은 사람이 없이 휑하다.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장바구니를 들고 마스크를 끼고 있다. 마스크 구하기 힘들던데 다들 어디서 난 걸까. 



장 보고 오는 길, 텅 빈 거리


동네 마트는 북적북적한데 여기는 손님이 한 명도 없다. 사장님만 마스크를 쓰고 열심히 일하는 중. 일반 마트에서는 벌써 동난 파스타도 종류별로 있다. 다만 값이 세 배 정도 비쌀 뿐. 지난주부터 팔기 시작한 비건 메밀 빵이 너무 맛있어서 또 사러 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하고. 살짝 구워 올리브유에 찍어 먹어도 맛있고, 한 솥 끓여 놓은 미네스트로네에 찍어 먹어도 잘 어울린다. 사람 없는 길을 다시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하루 30분 걷기를 겨우 채웠다.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이나 소파에서 보낸다. 뷰는 남의 집이지만, 종일 기분 좋은 새소리가 들려오는 창문을 활짝 열고 가만히 앉아 있다, 문득 마드리드에서 묵었던 에어비앤비 지하 집이 떠올랐다.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그 집에서 호스트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지. 백화점 앞에 늘 앉아 있던 노숙자도 떠올랐다. 모두 집에 있으라는데, 집이 없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 걸까.


집에만 있어도 하루는 금방 간다. 원래 잘 싸돌아다니는 만큼 집에도 잘 있고. 그래도 자진해서 안 나가는 것과 '못'나가는 건 엄연히 달라, 이 정도 초강수까지 둬야 말이 먹히는 지금 상황에 뿔따구가 난다. 내 나라에서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이동 통제를, 선진국이라 자처하는 유럽에서 경험하다니. 

어제 스페인 현지 신문에는 한국의 앞서 나간 코로나 대처 방식에 대한 기사가 떴다. 인구수, 평균 나이, 평균 수명이 비슷한 두 나라에서 코로나에 대처하는 방식이 얼마나 달랐는지. 스페인에서 감염자 수가 1000명에 달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한국이 얼마나 투명하고 신속한 대처를 했는지. 


똑같이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국에 있는 친구나 나나 장 볼 때를 제외하고 집에 있는 상황은 거의 같다. 휴교 중이라 온라인으로 수업을 이어나가는 것도. 하지만 친구는 급한 자료가 필요할 때 책을 가지러 학교에 갈 수 있다. 들어가기 전 열 감지하고, 손 소독을 한 후에. 나는 책을 가지러 학교에 못 간다. 스페인 정부가 제시한 불가항력 사유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학교까지 가는 도중 몇 번씩 경찰과 군인들을 만나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고 까딱하다 벌금을 낼 수도 있다.


이게 바로 확진자의 동선 공개가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하는 민주 시민 국가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도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건, 외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황에 '개를 산책시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지금의 한국에서 국가비상사태 때 반려동물까지 챙길 가능성은 희박했을 거다. 뭐,  너무 욕만 했으니 하나는 칭찬해 준다.



이 시국에 읽어야 할 책,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의 한 구절. 지난주 여기 상황을 보는 것 같다.


어쨌거나 증가율이 호소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증가율도 아직은 충분히 강력하지는 않았는데, 우리 시민들은 불안의 한 복판에서도 힘든 상황임에는 틀림없지만, 어쨌거나 끝날 사건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했고, 카페의 테라스에 나앉아 있었다. 대체로 그들은 겁쟁이가 아니었고, 하소연하기보다는 오히려 농담을 주고받았으며, 일시적임에 분명한 불편들에 대해서 마음을 편안히 하고 받아들이자는 눈치였다.


이정도 초강수를 뒀으니 조금씩은 나아지길.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오래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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