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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Apr 21. 2020

온라인 수업, 산 너머 산



폭풍 같은 일주일이었다. 


부활절 연휴 직전, 학교 시스템에서 하는 온라인 강의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도 했고,  학생들과 어려운 시기를 함께 지나가고 있다는 유대감과 함께 수업에도 리듬이 생긴 것 같아 나름 편안한 마음으로 연휴를 보냈다.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모를 격리 세상을 잘 지나갈 일상을  만들었다고도 생각했다. 아니 자만했다. 


연휴 후 첫 수업은 혼란 그 자체였다. 새 수업이 시작하며 접속한 학생 수가 평소 2배로 늘었는데 그중 2/3가 마이크가 되지 않았다, (이날 수업 주요 과제는 소회의실을 사용한 말하기 과제였다) 인터넷이 너무 느려 자료 화면 넘기는 데 한참이 걸리고, 연결이 몇 번이나 끊어져 방장인 내가 방을 나갔다 들어와야 했다.


수업 직후 있었던 퀴즈도 난리였다.  한 달 전에 치러야 했을 중간시험도 연기되었고, 퀴즈도 몇 단원이나 보지 못한 상태, 학교에서는 우선 퀴즈라도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를 권했다. '스페인어'로 된 학교 시스템을 '영어'로 설명해 놓은 가이드 동영상을 보며 머리를 싸매고 퀴즈 문제를 만들었다. 과연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는데 퀴즈 시작과 동시에 폭주하는 메일... 걸어놓지도 않은 비밀번호 때문에 학생들이 퀴즈 페이지에 못 들어가고 있다는 거다. 어찌어찌 겨우 해결하고 무사히 끝나나 했더니 이번에는 자동 채점된 점수에서 3차 멘붕. 왜 원래 받아야 할 점수보다 다 낮게  나오는 거죠....? 컴퓨터 너 나보다 계산 잘 하는 거 아니었니... 머리를 쥐 뜯다가 몇 시간 만에 원인 파악, 점수 정정.  


나와 두 학기 가까이 수업을 해 온 학생들과는 지금껏 서로 쌓은 신뢰와 유대감이  있어 그나마 상황은 이해해 줬을 거라 믿지만 여전히 미안하고, 이날 처음 수업에 들어온 학생들에게는 민망했다. 


수업을 하다 보면  돌발 상황은 언제든 생기기 마련이고 그럴 때 대처하는 순발력 정도가 그나마 수업으로 쌓인 내공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수업은 나도 채 한 달이 안 되었으니 발휘될 순발력이 없다. 특히 기기 문제는 학교에 있을 때는 언제든 전문 기술자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즉석에서 다른 뭔가를 할 수 있겠지만 지금 같은 경우 장비 문제는 수업 전체의 문제나 마찬가지. 매 수업마다 마이크나 스피커 인터넷이 되지 않는 학생들이 있어서 형평성 문제도 매우 마음에 걸린다. 





Image by ijmaki from Pixabay




징징거리는 건 이쯤에서 그만하고 싶은데 더 있다...


온라인 수업 플랫폼도 그 사이에 몇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Zoom, 다음은 학교 시스템 Big Blue Botton, 지금은 Google Meet. 


첫 수업 때 사용한 zoom은 쉽고 직관적이라 전 세계 대부분의 교육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다. 언어 수업에서 꼭 필요한 소회의실 기능이 있어, 필요할 때 즉석에서 방을 나누고 학생들을 각 방으로 보낼 수 있다.  필기할 수 있는 화이트보드도 있고, 화면 공유 시 공유된 화면 그 위에 바로 필기를 하거나 하이라이트 할 수 있는 등 수업에 편리한 기능이 많다.


하지만 4인 이상 40분 이상 사용하려면 유료 결제를 해야 하고(처음에는 무료 사용 가능), 학교에선 무료 학교 시스템을 사용하기를 권장, 또 휴교 기간이 길어지면서 실시간 온라인 수업 시간도 늘어나서 결국 학교 시스템 사용.


사용해보니 Zoom처럼 즉석으로 방을 나누는 소회의실 기능이 있고, 화면 공유는 안 되지만, 미리 자료를 올려두면 그 위에 필기하면서 수업할 수 있어 나름 괜찮았다. 하지만 최근 마이크가 안 되고 너무 느려져 문제가 많음. 


이제 남은 옵션이 학교와 계약되어 무료 사용이 가능한 Google Meet인데, 개인적으로는 Zoom보다 기능이 적고  더 복잡하다고 느껴진다. 


회의도  구글 캘린더에 미리 수업을 예약한 후 그 링크를 통해 들어가야 하고, 즉석에서 방을 나눌 수 있는 소회의실 기능이 없어


사전에 캘린더를 통해 방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 링크를 학생들에게 보내고, 그걸 클릭해서 각 방에 들어가야 하는 복잡스러운 시스템....화면 공유할 때 그 위에 필기도 되지 않고, 화이트보드 기능도 없다.!   



Zoom과 Google Meet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수업에 제일 좋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게 나한테도 학생들한테도 좋을 것 같았다. 결국 Zoom을 개인적으로 결제해서 쓰기로 하고 학생들한테 안내를 했더니 한 학생이  Zoom 보안에 취약해서 개인 정보를 해킹당하거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문제가 많다는 기사를 봤다며,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안 되겠냐고 한다.


 Zoom 수업 도중 사람들이 난입해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등 난동을 부리고 갔다는 줌폭탄에 대한 단편적인 기사를 본 게 다라 검색을 해 봤는데 생각보다 심각했다. 보안에 구멍이 많고 개인 정보 유출 문제가 심각해 해외 여러 나라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 컴퓨터도 아니고 개인 컴퓨터로 하는데 괜히 문제가 생기면 그것도 큰일이고 그리하여 결국은 구글밋으로.... 아하하하하


그렇게  종일 구글밋 연구를 했지만 여전히 물음표가 가득한 채로 오늘 구글밋 첫 수업 끝낸 후 그대로 뻗었다. 




온라인 수업은 준비는 준비대로, 수업은 수업 대로, 숙제 검사는 숙제 검사대로 모든 과정이 품이 많이 든다. 뭐, 수업만 잘 된다면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만, 시간 들인 만큼 수업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게 문제다. 매 시간 변수가 터진다.


한국처럼 개학 전이었다면 온라인 수업에 대비한 사전 교육이라도 받았을 텐데, 갑자기 내려진 휴교령에 준비 없이 시작된 온라인 수업, 매일이 산이다. 어디서 연수라도 좀 받고 싶다. 정말. 기말시험도 온라인으로 치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하, 진짜 첩첩산중이다.


학생들은 학생들 대로 학교 시설도 이용 못 해, 선생님들마다 온라인 수업 운용 능력치는 천차만별일 것이며, 숙제 폭탄으로 스트레스가 많을 테고.


코로나를 기점으로 교육 판도가 많이 바뀌고, 앞으로 선생님들에게 요구될 능력치도 달라질 것 같다. 두 달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한 생활이 지금은 일상과 미래가 되어버리는 것을 보며, 대체 세상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또 바뀔지 두려운 요즘이다. (얼마 전에는 기대도 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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