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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May 24. 2020

새로운 일상

스페인 이동제한 완화 1단계



이번 주 월요일, 드디어  말라가 바와 카페 테라스가 다시 열렸다! (아직 실내 식사는 불가)  월요일 수업 끝자마자 말라가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추로스 집 Casa Aranda로 달려갔다. 개인적으로는 마드리드의 유명한 추로스 집 San Jines보다 여기 추로스가 더 입에 맞다. 


마드리드 친구 말을 빌리자면  San Jines는 한 번 먹으면 6개월은 안 와도 될 정도로 핫초코 농도가 엄청나게 진한데, Casa Aranda는  핫초코 농도가 딱 적당하다. 가마솥에 튀긴 추로스를 찍어 먹어도 추로스를 다 먹은 다음 그냥 떠먹어도 딱 좋다. 


구글맵에 테라스를 오픈했다는 정보까지는 안 나와 있지만 테이크아웃이 된다고 해서  영업시간에 맞춰 왔더니 문이 닫혀 있다. 힝. 추로스만 생각하면서 며칠을 버텼는데. 아쉬운 마음에 5분 거리에 있는 말라가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Cafe Central로 갔다. 늘 만석이라서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는데 운 좋게 딱 한자리가 비었다. 


테라스 간 간격이 평소보다 멀기는 하지만 애매하다. 오는 길에 본 온 테라스도 만석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종식된 게 아니라서 아직은 사람들이 조심할 줄 알았는데 완벽하게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분위기다. 어덯게 보면 대단하다. 말라가가 원래 생기 있는 도시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쉽게 생기를 되찾다니. 


만석인 어느 바의 테라스


두 달 동안 친구도 못 만나고 갇혀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지 완전히 이해하고 그래서 나도 이렇게 뛰쳐나왔지만, 마스크 안 낀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 거리두기가 힘들 정도로 붐비는 시내를 보며 심히 걱정이 됐다. 


*며칠 뒤 거리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됐다. 안 끼면 벌금 600유로를 내야 한다.




카페 안에 있는 소독젤로 손을 닦고 핫초코와 추로스 두 개를 시켰다. 엄청 기대했는데 핫초코는 한 입 먹으니 혀가 얼얼할 정도로 진하고 추로스는 너무 기름지다. 이 집 추로스가 맛이 없는 건지 아니면 너무 오랜만에 이런 기름진 음식을 먹어서 맛이 더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한 개도 다 못 먹고 남겼다.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추로스 먹기 미션을 클리어했으니 이제 두 번째 미션을 수행하러 꽃집에 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직업 특성상 꽃 선물을 자주 받았다. 학기가 끝날 때면 고맙게도 반 학생들이 선생님께 꽃다발을 주는 경우가 많아서 몇 달 단위로 집에 꽃이 채워졌다. 하지만 정작 내 돈 주고 내 꽃을 사 본 적은 별로 없었다.  




튤립이 고와서 가격을 물어보니 한 단에 8유로란다.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두 달 동안 갇혀 있었던 나한테 하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꽃다발로 만들어 내게 안겨 주었다. 집에 돌아와 꽃병의 조화는 빼버리고 생화를 꽂아 보았다. 튤립이 이렇게 예쁜 꽃인지 미처 몰랐다. 




다음날 활짝 피더니 사 일 만에 시들어 꽃잎이 다 떨어졌다. 튤립은 금방 만개하기 때문에 봉오리인 상태로 사야 한다는 상식도 몰랐다.아무래도 비싸게 산 기분이 들어서 한국의 친구한테 이야기를 했다니 독일에서 튤립 한 단에 3유로 정도라는 얘기를 해준다. 여기는 독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어쩐지 바가지 쓴 기분이 들어 찝찝...




지금 단계에서 10명 이하의 모임이 허용되어 두 달 만에 사람을 만났다. Astrid이라고 비건 옵션이 되는 식당에 갔다. 지나가며  메뉴에 '비건 김치'와 '갈비'가 있는 걸 보고 궁금했던 곳이었다. 집밥만 먹으며 살았으니 외식스러운 음식을 먹고 싶어서 비건 버거를 주문했다. 여름 시즌 메뉴인 가스파초도 시켜 보았다. 


토마토, 오이, 피망, 올리브오일, 식초 등을 갈아서 시원하게 마시는 여름 수프인 가스파초는 안달루시아의 대표적인 요리이다. 타파스바에서 한 번 먹어보고 슈퍼마켓 제품도 먹어봤지만 그리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시큼한 토마토 주스같은 느낌? 


별 기대 없이 한 입 넣은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뭐지, 이 신선하고 상큼하고 달고 크리미한 맛은? 학생들이 가스파초나 살모레호는 슈퍼마켓 거 먹는 거 아니라며 직접 만든 걸 먹어봐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더니 그게 사실이었다.가스파초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요즘 토마토가 유난히 맛있더라니.제철 식대료가 맛에 상당히 영향을 주었을 지도. 




하지만 비건 버거는 기대 이하였다. 패티가 죽처럼 물컹물컹해. 한국에서도 스페인 와서도 맛있는 비건 버거 못 먹어봤다. 코스타리카에서 자주 먹던 뽀르또벨로 버섯으로 패티를 넣은 비건 버거가 그립다. 





학기 막바지가 다가오며 오는 이 주간 일이 왕창 몰려 있다. 어제 집에서 일하다가 딴짓하다가 영 집중하지 못하고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저녁 6시, 또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동안 쇼핑 못 한 한을 풀듯 요즘 야금야금 뭔가를 사고 있는 중인데  Natura에서 비건 요리책을 샀다. 엄청 쉬운 비건 요리라는 제목에 맞게 최대 6개를 넘지 않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비건 요리가 나와 있다. 



코스타리카 살 때는 김치, 깍두기, 동치미도 담가 먹고, 한국에서는 두유로 만들어 먹던 내가 요즘은 정말 영혼도 열의도 없이 요리한다. 냉장고에 있는 걸 털어 대충 뚝딱 만들어 먹는다. 식욕이 살아나야 삶의 의욕도 살아날 것 같아서 책을 보며 하나씩 따라해 보기로 했다.



책을 사고 조금 더 걸어 말라게따 해변으로 갔다. 토요일이라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적했다. 

잔잔한 파도를 보니까 속이 뻥 뚫린다. 

현실은 어찌  돌아가든 바다는  잔잔하고 넓고 푸르고 여전하다.


어떤 계획도 세우기 힘든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는 촘촘하고 구체적인 계획보다 큰 방향과 유연한 태도를 가지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훨씬 더 어렵다는 것도 알지만. 


여행도 못 가고 이제 테라스에나 갈 수 있는 수준이지만 걸으면 바다에 올 수 있는 곳에 있어, 그거 하나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에서 발 타고 순찰하는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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