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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May 28. 2020

인터뷰 이게 뭐라고




어제부터 이어진 온라인 인터뷰 시험에 탈진 직전이다. 내일은 첫 온라인 기말시험도 있어 잔뜩 긴장 중.

어제는 열다섯, 오늘은 열 명 연속 인터뷰했더니 진이 다 빠져 결국  엄마가 두고 간 공진단을 꺼내 먹었다.


인터넷 연결이나 마이크, 스피커에 문제가 있는 학생이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인터넷이 살짝 불안정했던 학생 둘, 늦게 들어온 학생 하나를 제외하고는 무사히 끝났다. 인터뷰 때면 늘 심하게 긴장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냥 편하게 한국 사람이랑 한국어로 이야기한다 생각하라 하지만  평가받는 입장에선 그게 말처럼 쉬울까.


한국어교육 1년 차 때 활발하고 사교적인 미국 학생이 인터뷰 도중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했는지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표정이 너무나 절망적이라 한동안 괜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사활이 걸린 일도 아닌데 이게 뭐라고 그렇게 부담이 심할까 싶으면서도, 시험의 무게를 떠나 '평가'란 것 자체가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존심과 쉽게 떼어놓기 힘든 거란 생각도 든다.


인터뷰 때마다 그 학생의 표정이 떠올라 아이스브레이킹도 충분히 하고,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하려고 하지만 바들바들 떨다 평소 실력 반도 발휘 못하는 학생들이 꼭 나온다.


반면 정말 이상적인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다. 코스타리카 마지막 학기, 내게는 2년을 가르친 학생들과 마지막 인터뷰였고, 학생들에게도 다음 과정이 없어  마지막 한국어 인터뷰가 될 것이었기 때문에 시험보다는 진짜 대화란 생각으로 해야겠다 생각했다. 이게 학생들한테도 전해진 건지 뭔지 다들 긴장도 안 하고 인터뷰도 훌륭히 수행했고, 무엇보다 정말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끝나고 막 소름이 돋았다.



출처: pixabay



환송회 때 학생들한테 그 이야기를 하니까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사실은 선생님과 마지막 인터뷰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스터디 그룹까지 만들어서 연습했다는 거 아닌가. 일종의 선물이라며.  아, 정말 당신들이 만들 수 있는 감동의 끝은 어디인지.....





마지막 학생 인터뷰 끝나고 그대로 소파로 몸을 날려 좀비처럼 구겨져 있다가 나한테 저녁 사주러 밖으로 나왔다. 집 앞의 커다란 나무가 하카란다 나무였다는 건 봄이 되어서야 알았다. 도로 위를 뒤덮은 보라색 꽃의 향기가 마스크도 뚫고 들어온다. 비말보다 강한 꽃향기여. 


그래도, 늘 허공에 질문하고 내 메아리가 대답해 주는 것 같던 비대면 세상에서, 시험이라도 일대일로 학생들 얼굴 보고 이야기할 수 있어 난 속도 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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