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6월의 어느 날 동료 파트리의 부모님 집에 초대받았다. 그날은 산후안의 날이라고 일 년 중 해가 가장 긴 하지를 기념하는 날. 원래라면 전국적을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는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인해 모두 취소됐다. 매년 산후안의 날이면 가족들끼리 모여서 식사를 한단다.
저녁 여덟 시 반쯤 만나 아홉 시쯤 해변 근처의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분명 파트리와 파트리의 남자친구, 나 이렇게만 간다고 해서 소규모 모임을 상상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맞은편에서 삼촌에 숙모, 남동생과 그의 부인, 할머니까지 나타났따.
잠시 혼란스러워 여기 내가 와도 되는 자리 맞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 아 맞다, 이 친구가 예전에 자기 남자친구의 엄마랑 가는 공연에도 나를 불렀던 걸 떠올리니 이 상황이 금세 수긍되었다.
부모님네 댁은 아파트인데도 꼭 단독주택처럼 멀리 바다가 보이는 근사한 테라스와 커다란 파티오가 있었다. 어렸을 때 파트리가 쓰던 방은 현재 어머니의 작업실로 쓰이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옷을 만드신다고 하더니 빈티지한 재봉틀과 다양한 디자인의 골무 컬렉션이 가득한 게 꼭 디자이너의 방 같았다.
집안 곳곳에 직접 그린 그림이 걸려 있고 화장실 소품 하나까지 섬세하고 우아한, 딱 스페인 중산층의 집이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꾸안꾸 스타일로 자연스럽게 잘 차려입고 계셨는데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우리네 할머니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젊은 날과 우리 할머니들의 젊은 날의 양상이 어떻게 달랐을지 생각하니 좀 이분이 이상해졌다.
식사는 거의 밤 열 시가 되어야 시작되었다. 상차림은 당장 코스요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나온 음식은 스페인 감자 오믈렛인 또르띠야와 안달루시아 지역의 차가운 토마토 수프 가스파초, 그리고 누군가 사 온 엠빠나다가 메인 메뉴로 꽤 단출했다.
여기서 난 두 번째로 당황을 하고 마는데, 내가 채식하는 걸 아는 파트리가 며칠 전부터 뭐까지 먹지 않느냐고 몇 번씩 확인을 하더니 정작 부모님은 비건이 뭔지도 모르시고, 계란까지 먹지 않는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가스파초뿐이었기 때문이다. 파뜨리가 후무스딥과 아보카도 샐러드를 만들어와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조금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뻔했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오기 전에 부모님한테 어떤 선물을 가져가야 하나 한참 고심했는데 정작 준비해야 했던 것 선물이 아니라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코스타리카와 한국의 대접 받는 초대 문화에 익숙해져 있어 좀 더 가볍고 부담 없는 이 나라의 초대 문화를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거다.
사실 식사 시간이 한참 늦어질 거라는 걸 알고 간단히 뭘 먹고 온 터라 저걸로도 충분히 배가 찼지만 부모님의 내가 먹을 게 없다는 사실을 계속 신경 쓰셨다. 나는 나대로 알아서 내 음식을 챙겨오지 못하고 신경 쓰기게 만든 게 죄송스럽고.
식사 후 할머니께서 파티오에 피어 있는 재스민 봉오리를 한 움큼 따다 건네주셨다. 그러자 가족들이 어디서 이쑤시개처럼 뾰족한 가지가 동그랗게 나 있는 나뭇가지를 하나 주어오더니 비스나가를 만들어 보라고 한다. 비스타가(biznaga)에 대해서는 예전에 말라가 워킹 투어할 때 가이드한테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보통 저런 가지에 재스민 꽃봉오리를 꽃아 동그란 모양으로 만드는 걸 일컫는데 모양이 예쁜 건 둘째치고 향이 매우 강해서 여름밤에 모기를 쫓는 데 적격이라고. 길에서 종종 비스나가를 파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너무 금방 지니까 웬만하면 사지 말라는 말도.
파트리가 한국에서 몇 개월 산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이미 한국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있고 몇 가지 한국어 단어도 알고 있었는데, 다들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단어가 하필 '꽐라'여서 한참 웃었다.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썰어서 빵또아같은 빵 사이에 끼워 먹는 걸 다 같이 나눠 먹고서는 열두 시 반쯤 식사가 끝났다.
파트리의 어머니께서는 남은 음식을 잘 싸서 손님들에게 골고루 분배해 주셨다. 가스파초가 맛있다고 몇 번이나 감탄한 낵게는 남은 가스파초를 몽땅 다 주셨다. 만드는 방법이 정말 쉬우니 다음에는 조금 일찍 와서 같이 만들어 보자고 하셨다.
외국인이라고 특별히 주목의 대상이 되지도 않고, 특별한 대접 받지도 않고, 가족의 일원인 듯, 무심해서 유심했던 그런 저녁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