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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Jul 29. 2020

스페인 사람들이랑 놀려면
텐션이 높아야 돼




요가 리트릿에서 만난 에스빠뇰라 에바가 해변 앞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가자고 했다.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픽업하러 온 차 안에는 에바 외에 처음 보는 세 사람이 더 있었다. 셋과의 관계도 참 다양해다. 한 명은 그의 친구의 남자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직장 동료, 또 다른 한 명은 어떤 모임에서 알게 된 사이.


차는 달려서 말라가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Playa Virgiana라는 해변에 도착했다. 공연장은 해변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작은 야외공연장이었다. 시작까지 한 시간이 남아 있는데 바로 앞에 바다가 있으니 해수욕을 하자고 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다들 옷 안에 수영복을 입고 있었고 에바는 비치타월까지 가지고 있었다. 따로 말도 없었는데 나만 수영복을 안 챙겨 온 게 당황스러워하고 있으니 에바 왈, 


"말라가 여름에는 언제든지 바다로 뛰어들 수 있게 수영복은 항상 입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해변 앞의 카페테리아에 앉아 맥주를 한 잔씩 시켰다. 그때부터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그들이 인사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고 쉴 새 없는 자기소개에 공연 시작도 전부터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미니 공연장에는 말라가 출신의 인디 밴드가 올랐다. 자기들 곡도 있고 여름밤에 어울리는 유명한 보사노바 곡도 연주해 어두워질수록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관객들이 모두 마스크를 끼고 한 줄씩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야 했던 것만 제외하면. 몇몇은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어나서 막 춤을 추기도 했고 제발 나의 일행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지만 양옆에서는 앉아만 있다 뿐이지 몸은 일어선 사람들과 같은 흥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 앞에 우리 일행들과 카페테리아에 앉아 있을 때 인사했던 일행의 지인들과, 또 그 지인의 지인들이 모여 거의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항상 스페인 사람들과 만나면 생각한 수의 두 배 정도가 모이고 끝날 때쯤에는 서너 배 정도로 불어난다. 


어디 2차 장소로 이동하지도 벤치에 앉지도 않고 길 한복판에 선 채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적도 프랑스, 브라질, 영국까지 다양했고 외국인들 중에서 내가 스페인어를 제일 못했다. 이들은 텐션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높아지더니 급기야 몇몇은 길에서 노래를 부르고 곧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침 어딘가에서 플라멩코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다들 어쩜 플라멩코도 수준급으로 추는지. 누가 안달루시아인들 아니랄까 봐. 


이 텐션 이 에너지 어쩔 거야.... 이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급격히 피곤해졌다. 놀라운 건 이 중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어렸다는 사실이다..... 





에바를 요가 리트릿에서 만났을 때는 차분해 보여서 잘 맞을 줄 알았는데 그때는 낯가렸던 거야?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인 줄 몰랐다.  에바의 흥이 고조될수록 나의 에너지는 점점 더 고갈되었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 침대 위로 몸을 던지고 싶었지만 시간은 늦었고 대중교통은 애매해서 그저 차주인이 자리를 뜨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열두 시 반이 넘어서야 이 이상한 모임은 파했다. 일행을 실은 차는 말라가 시내로 돌아왔고 나는 집으로, 에바는 오늘 아이를 맡기고 왔기 때문에 이 소중한 금요일을 즐겨야 한다며 2차를 하러 갔다. 그리고 다음날, 체력이 바닥을 쳐서 공진단을 먹어야 했다.


스페인 사람들이랑 어울릴 때마다 엄청난 텐션이 요구되어. 매번 이런 식이라면 어쩌나 심히 걱정이 된다. 흥의 민족 한국인들 중에서도 음주가무의 '무'를 못 즐기는 나같은 사람이 있듯, 스페인 어딘가에도 나같은 에스빠뇰들도 있기를 바랄 뿐. 



*표지 이미지: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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