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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Jul 31. 2020

한 시간 만에 완전히 바뀐
빌바오의 첫인상

그여름 스페인



락다운 후 처음 가보는 말라가 Costa del Sol 공항은 한산했다. 면세점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식당과 가게는 닫혀 있었다. 사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유럽의 극극성수기인 7월의 여행 분위기를 떠올려 보면 확실히 썰렁한 풍경이다. 




마스크를 쓴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비행기는 한 시간 이십 분만에 빌바오 공항에 도착했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러 공항 밖으로 나오니 여름의 말라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서늘한 바람이 스쳤다. 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운통 푸르다. 해변 도시에 살다가 내륙으로 들어온 기분이 생소했다. 버스는 Gran Via라고 하는 거리에 섰다. 숙소로 가는 길, 남쪽에서는 볼 수 없는 잎이 크고 둥근 활엽수마저 신기했다.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말라가의 구시가지와 달리 모든 길은 직선으로 길게 뻗어있었다, 오래된 건물에서 나는 짙은 회색의 건물에선 어쩐지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광장에서 위풍당당 날리는 바스크 깃발을 보고 아, 여기가 바스크 지방이구나 했다.     






숙소까지 걸어오는 넓고 깨끗한 길에 있는 부띠끄 숍을 보면서, 캬 이게 도시지 싶었다. 길게 뻗은 길 중앙의 둥근 광장에 낮은 꽃이 심겨 있는 풍경도 안달루시아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라 꼭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에어비앤비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미리 찾아놓은 비건 핀초스가 있다는 식당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길의 느낌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쓰레기는 점점 많아지고 여자들은 안 보였다. 그리 질이 좋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벽에 등을 붙인 채로 지나가는 사람들 위아래로 훑어보는 보습에서 불안하더니 결국 니하오에 합장에 캣콜링까지 당했다.


최대한 건조하고 심드렁한 눈빛을 한 채 사방을 살피지도 사진 같을 걸 찍지도 않으며 여기 사는 사람인 척하며 걸었다. 핀초스 바가 몰려있다는 구시가지의 거리 사정은 더 심했다. 오는 길에 봤던 커다랗고 깨끗한 길과 완전히 방만되는 좁고 지저분한 길, 그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드러 앉아 술 마시고 마리화나 피우는 젊은이들들... 어두운 냄새들. 1분도 더 있고 싶지 않아 얼른 그 골목에서 빠져나와 근처의 다른 핀초스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귀에 손가락만한 뿔 피어싱을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옷을 입고, 새까만 장신구에 새까만 타투를 한 사람 혼자 일하고 있었다. 어쩐지 바스크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에는 여러 종류의 핀초스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중 비건은 퀴노아로 만든 미니버거, 두부 아보카도 샌드위치, 버섯 크로켓 이렇게 세 종류가 있었다. 우선 퀴노아 미니버거부터 시켜보았다. 최근 일주일간 위장병을 앓아서 술을 못 하는 상황이었지만 혹시나 하고 맥주도 시켜보았다.     


별 기대 않았던 버거는 의외로 맛있었다. 지금까지 스페인에 와서 먹어본 비건 버거 중에서 제일 패티가 단단하고 고소했다. 원래는 비건 옵션이 있는 바 호핑을 해 볼 생각이었지만 찜해둔 몇 곳은 월요일이라 다 문을 닫아 그냥 여기에서 하나를 더 시켜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두부 샌드위치. 이것도 크게 기대 안 했는데 맛있다. 통밀빵은 씹을수록 고소했고 구운 두부와 아보카도의 조화도 좋았다. 무엇보다 두 핀초스 모두 재료의 맛을 돋워주는 소스가 훌륭했다. 오호, 이것이 바로 미식의 도시 바스크의 수준인가!

     


맥주는 까냐를 달라고 했는데 커다란 잔에 나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맥주가 받지 않아 반도 채 못 마셨다. 바에서 나와 호스트 아주머니께서 추천해주신  전망대에 가 보려고 했지만 그러기엔 춥고 피곤하다. 7월이 춥다니. 무엇보다 걸어오는 길에 느꼈던 치안에 대한 불신 때문에 의지가 한풀 꺾였다. 공항버스에서 내려 숙소까지 갈 때 얻은 도시의 긍정적인 점수는 구시가지까지 걸어가는 길 다 깎여버렸다. 


정처 없이 plaza de nuevo 등등 시내를 이리저리 걸어보고 옷가게에 들어가서 옷도 입어보며 최대한 왔던 길과 멀어져 돌아오려 했지만 결국 또 그 길을 거쳐야 했기에 최대한 빨리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거실에 웬 중년의 남성이 앉아 노트북을 하고 있길래 다른 손님인가 했더니 호스트 아주머니의 남편이었다. 아저씨는 예전에 사업 때문에 말라가에 한 달에 한 번씩 갔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자기 딸이 K-pop팬이라며 서울에서 왔냐며 알은체를 했다. 아저씨도 그렇고 낮에 이야기한 호스트 아주머니도 그렇고 발음이 너무 깨끗하고 억양이 없어서 이야기하다 보니 귀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안달루시아 사투리가 강한 말라가 밖에만 나오면 늘 그렇다.


호스트 아주머니는 민소매에 짧은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셨지만, 남쪽에서 온 나는 너무 추워 혹시 몰라 챙긴 긴 팔옷을 입고도 추웠다. 결국 이불 하나를 더 받아 두 개를 덮고 누워 북쪽에 왔구나 했다. 



그 이상한 골목만 나오면 근사한 빌바오의 구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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