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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Jun 05. 2020

요가원 문 열었다

스페인에서 요가하기 4



이번 주부터 말라가가 이동 제한 완화 조치 2단계(fase2)에 들어가며 요가원들이 문을 다시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나서 예에~를 외치다가 퍼뜩 든 생각, "근데 어디로 가야 하지..? 정말 좋아했던 요가 선생님 마페가 1월에 말라가를 떠난 후 요가원을 몇 군데 떠돌았지만 정착할 곳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격리 기간 동안 집에서 요가를 하긴 했지만 하루 10분 정도의 가벼운 몸풀기 정도라서  어떻게든 다시 요가원에 나가서 빡세게 수련하고 싶었다. 몇 개 선택지를 두고 고민했다. 어제 이번 학기 수업이 끝난 관계로 오전 시간이 비어  이 시간을 활용하고 싶은데 시간이 다 애매하다. 결국 오전 수련이 있는 아쉬탕가 마이솔을 하기로 했다. 


사실 말라가에 와서 제일 처음 요가할 곳을 찾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한 곳이 여기였다. 하지만 학교 수업과 시간이 겹쳤고 마페를 만나서 빈야사 수업을 듣다 보니까 또 선생님의 지시대로 하는 수업에 익숙해져, 마페가 떠난 뒤에도 셀프 수련인 마이솔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마페도 없고, 오전 시간도 비었으니 안 할 이유는 없었다. 결국 돌고 돌아 마이솔로 돌아가다니.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선생님에게 문의를 넣으니 마이솔 수련을 해 본 적 있느냐 묻는다. 한 일 년 반 전에 했다고 하니 알겠다고 하며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 수칙과 관련해 한바닥 도배해 놓은 이메일을 보내줬다. 사진상으로 요가원이 좁아 보여서 걱정이 됐는데 인원은 9명까지만 받고 탈의실은 한 명씩 사용, 샤워실 이용 금지, 개인 매트 필수 지참  등 당국의 예방 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운영되는 듯했다.


한동안 아쉬탕가는 수련하지 않은 터라 순서가 생각이 안 나 급히 찾아봤다. 눈을 감고 순서를 시뮬레이션해 봤는데  아주 그냥 연결이 뚝뚝 끊긴다.


너무 설렌 나머지 요가원에 20분 일찍 도착했다. 내부는 생각만큼 아주 좁지는 않았다. 한 면이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햇빛 잘 드는 정원이 보여 탁 트인 느낌이 났다. 바닥에는 매트를 놓을 수 있는 자리가 다 표시가 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이 정도 밀집도(요가원 인스타에서 가져옴)


최근에는 이런 모습. 내가 갔을 때는 이것보다 더 넓은 간격으로 수련하고 있었다.



첫 번째 시간대였기 때문에 찬팅하고 시작하나 싶어 멀뚱멀뚱 앉아 있으니까 선생님 파트리시아가 다가와 원할 때 바로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그제야 둘러보니 같이 들어온 수련생은 뒤에서 이미 수리야나마스까라를 하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숨소리 하나 안 나는지 너무나 고요해서 전혀 몰랐잖아... 


쭈뼛거리며 마이솔 한 지 오래돼서 순서가 잘 생각이 안 난다고 하니  

"수리야 나마스카라 A, B는 알지? 일단 그거부터 5세트씩 하고 같이 해 보자"

라고 한다.


A 5세트가 끝나니 매트 위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심박수가  빨라지며 호흡도 매우 거칠어졌다. 오기 직전에 피곤해서 커피를 마신 게 화근이었나.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지. 그런데 이 요가원은 뭐가 이렇게 조용해? 보통 마이솔 때 엄청난 데시벨의 우짜이 호흡 소리가 공간을 채웠던 거 같은데, 다들 숨을 쉬기는 하는 건지 내 불안정한 숨소리만  울려서 민망할 정도였다.


웃티타 하스타 파당구쉬타아사나에서 한 다리로 선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내려왔더니 선생님이 다가와 말을 건다.


"다나, 너 1년 반 전에 마이솔 수련했다고?"

"네, 그런데 요가는 계속 하긴 했어요"

"어쩐지, 그래서 몸이 열려 있구나."


이전에 한번 수업을 들었던 요가원에서도 끝나고 선생님이

"너 요가 하지?"

라고 물었다. 아니, 요가를 하니까 요가를 하러 왔지요..?라고 생각하며 그렇다고 했더니

"딱 보니까 알겠더라"

하며 웃었다.


개발새발로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쌓인 시간 덕인지 제법 요가 해 온 테는 나나보다 싶어 뿌듯했다. 


선생님이 오늘은 첫날이니까 선 자세까지만 하라고 해서 짧게 피니싱하고 끝냈다. 결국에는 진도가 앞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원래 있었던 곳보다 더 나아갈 거니까 괜찮다. 땅땅!


요가에 대한 나의 태도는 쉴 때는 쉬고, 그만두게 되어도 반드시 다시 시작하며 평생 하자는 쪽이다. 이건 삶에 대한 나의 태도이기도 하다. 하루키처럼 몇 십 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리는 사람들 대단하고 멋있지만 나는 그렇게 못 하겠다. 비장한 각오로 시도했다가 실패할 경우 오는 자괴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꾸준히 말고 띄엄띄엄 평생 하기로 했다. 느슨하게 오래.


신나게 하다가 지겨워져 돌아서도 언젠가 생각나면  또 하고, 잊을만하면 다시 시작하면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을 그리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테니까. 


아무튼 돌고 돌아 마이솔로 돌아왔다. 요즘 영 기력이 달리는데 새로운 활력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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