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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Aug 18. 2020

스페인 거주자의
스페인어 단기 연수



원래라면 8월 한 달간 한국에 갈 계획이었지만 코로나로 무산, 이왕 이렇게 된 거 스페인어나 빡세게 공부하기로 했다. 어학원 4주 수업에 등록해 지난주부터 하루 네 시간씩 스페인어 수업을 듣고 있다. 


오전 여덟 시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이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가야 해서 챙겨갈 게 한 짐이다. 수업 교재, 필기도구, 요가 타월, 세면도구, 수건, 갈아입을 옷, 속옷에다 물병에 아침식사까지. 그나마 매트를 요가원에 두고 다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한 짐으로는 안 끝났을 거다.  



아홉 시 십오분쯤 수련이 끝나면 요가원에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바로 학원으로 향한다. 다행히 학원 수업이 열 시에 시작하고 요가원 1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서두르지 않아도 제일 일찍 수업에 도착한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무려 유리병에 담아온 오버나이트 오트밀을 먹고 나면 학생들이 한두 명씩 들어온다. 


수업은 두 시간은 문법 수업 두 시간은 회화 수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법은 한 선생님이 맡고 회화는 매일 선생님이 바뀐다. 우리 반 문법 선생님인 토니는 대략  50대로 추정되는데 어깨까지 오는 회색 곱슬머리를 질끈 묶고  무릎까지 오는 청 반바지에  용이나 히어로가 그려진 형형색색의 티셔츠를 자주 입는다. 손가락마다 굵은 반지를 끼고 해골이 그려진 팔찌를 하고 있어 선생님보다는 헤비메탈 밴드에서 기타를 칠 것 같은 인상이다. 


토니의 교수법은 놀랄 만큼 기교가 없는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수업에 들어오면 어떤 도입도 없이 바로 수업으로 직진이다. 복습도 스몰토크도 없다. 칠판에 한바탕 문법을 쓰고 설명한 후, 질문을 받고, 책의 연습 문제를 푼다. 읽기나 듣기도 전 활동, 후 활동 일절 없다. 듣고, 정답 확인, 질문, 읽고, 모르는 단어 질문, 문제 풀이가 끝이다. 그런데 스페인어에 대한 지식은 해박해 어떤 질문에도 척척 대답한다. 학생들의 어떤 반응에도 휘둘리지 않으며, 인내심도 많고 모든 학생들을 공평히 대하고 적절히 유머 감각도 있다. 즉 매우 연륜 있는 옛날 선생님 ㅋㅋ 후자의 장점이 없었다면 최악의 수업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선생님의 연륜이 모든 걸 상쇄한다.



현재 우리 반 학생은 독일인 둘, 중국인 둘, 영국인 하나, 한국인 나 하나 이렇게 여섯 명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독일인 셋, 중국인 둘, 영국인 하나, 노르웨이인 하나, 헝가리인 하나, 러시아인 하나 이렇게 열 명이었다. 대개 유럽에서 짧으면 일주 길면 사 주 정도 단기 연수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일주일 지날 때마다 구성원이 휙휙 바뀐다. 월요일마다 열리는 웰컴 파티에 가보면 독일인이 제일 많은데 자기들끼리도 어딜 가든 독일인 천지라며 징글징글해 하는 듯. 


지난주에 같은 수업을 들었던 독일인 파비안은 말라가에서 한 달 수업 후 갈리시아로 가서 한 달 수업을 들을 예정인데, 거기서는 독일인들이 없는 곳에 가려고 엄청난 서치 끝에 어느 작은 마을의 어학원에 등록했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도 전체 60명 학생 중 독일인이 20명이라며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독일인이 없는 곳에 가려면 중남미로 가야 한다며. 그러는 파비안에게 일러주었지.



"내가 슬픈 얘기 하나 해줄까? 나 코스타리카에서 수업 들을 때도 우리 반에서 독일인이 제일 많았단다...."

"Oh, no.............."  




하나 놀란 건 십 대 학생들이 많다는 점인데 우리 반에도 영국에서 온 열일곱 살 학생이 있고, 다른 반에도 열일곱, 열여섯 학생을 두 명 더 봤다. 이렇게 방학 때마다 와서 몇 주씩 공부하고 가는 거 너무 좋아 보이고 부러웠다. 대부분은 한 주는 공부 한 주는 휴가로 흥청망청 놀다 가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애니웨이, 오랜만에 하는 전업 학생 생활은 꽤나 즐겁다. 



*표지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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