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대초록 May 31. 2021

마음이 자꾸 가라앉는 날에는

우울한 날의 달리기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 있다.


수업은 깔끔하게 잘 끝냈고 날씨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는데. 그런 날은 별 이유가 없어도 그냥 찾아온다.

그럴 때면 알아서 나를 돌봐 줘야 한다. 어디 열은 없는지, 마음 상한 데는 없는지 확인해 본다. 상태가 안 좋으면 링거를 맞히거나, 심하면 산소 호흡기도 꽂아 줘야 한다. 이 나라에서 나한테는 나밖에 없으니까. 


최근 집에서 충전될 만한 장소를 하나 발견했다. 양문형 창문을 활짝 열고 그 바로 아래 소파로 쓰는 매트리스에 누우면, 파란 하늘이 비스듬히 직통으로 보인다. 사바아사나 자세로 누워서 흐르는 구름을 쳐다본다. 그렇게 몇 분만 있어도 어느 정도 급속 충전이 된다.


그렇게 해도 안 되는 날에는 밖으로 나간다.  마음이 가라앉아버리기 전에 얼른 뛰어서 털어버리면 나아질까.


저녁 8시 30분. 해안 산책로에 러너들이 제일 많은 시간이다. 양쪽에서 앞질러가는 러너들 사이에서 슬슬 달려본다. 달리다가 왜 이렇게 배가 당기나 했더니 무려 6분 페이스로 뛰고 있었다.(내 평균 페이스는 6분 30초다) 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배당김도 힘들다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자동적으로 뛰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내게는 2km가 지나가는 시점부터인 듯하다.



3분에서 5분 뛰기로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너무 길다며 겁냈던 내가, 30분을 쉬지 않고 뛰고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믿기지 않는 순간은 또 있다. 요즘은 요가에서 차투랑가 단다아사나가 매우 가뿐하다.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를 할 때 매번 머리를 한번 박고 일어섰는데 어느 날부터 누운 채로 바로 허리가 쑥 둘렸다. 2년 전에 차투랑가 감 잡았다고 한 내가 가소로워서 귀여울 정도다.


달리기를 하니까 요가도 좋아졌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까지 요가를 한 게 달리기에도 도움이 됐을 거다. 호흡이라든가 자세라든가.달리기를 시작하고서는 요가할 때 늘 몸이 풀려 있다. 매트를 지탱하는 다리와 코어도 더욱 단단해졌다.


해 지는 하늘 색이 예뻤던 날



달리기 시작한 지 이제 3개월밖에 안 됐는데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모든 변화는 초반에 더 잘 드러나는 법 아닌가. 시간이 지나 아예 몸에 익어버리면 그게 기본값이 되어버리니까. 변화의 기쁨을 떠올려보려 해도 잘 생각이 안 나는 날이 있으니  초반에 실컷 호들갑 떨어 놓는 것도 괜찮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달리다 보니까 런데이 앱에서 1분 남았다고 알려준다.


30초를 앞두고서 전력 질주를 했다. 보폭을 넓히고서 휙휙 뛰니 29분 30초간은 느끼지 못한 극강의 쾌감이 느껴진다.


"목표 시간에 도달했습니다."


몸은 무거운데 마음은 뛰기 전보다 가볍다. 묻어 있던 무거운 것들이 어느 정도는 털려 나갔나 보다.


데려 나가 운동도 시키고, 몸에 좋은 것도 먹이고, 매일 나를 돌보며 산다. 


쉬지 않고 뛴 첫 5km


매거진의 이전글 왜 스타벅스도 남의 도시 게 더 좋아 보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