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제주 바다에서 오징어잡이 배를 본 적이 있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든 밤바다 위에 동그랗고 노란 불빛들이 줄지어 반짝거렸다. 꼭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바다 위에 수 십 개의 등대가 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대체 무엇이 저리도 가지런한 자세로 내려앉아 강렬한 빛을 내뿜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혹 먼 어둠 속에서 조난당한 누군가가 보내는 간절한 구조신호가 아닐까 상상하게 되는 그런 빛이었다.
요즘 내 머릿속은 그날의 정경 같다. 생활의 편린들이 쉴 새 없이 들고 나는 까만 심연 위로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이 노란 불빛처럼 반짝거린다. 마치 제주 밤바다에서 본 오징어잡이 배처럼 말이다.
어떤 글을 쓸까, 이 심정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하는 단상들이 머릿속에서 수시로 명멸한다. 야채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 때도, 어질러진 거실을 정리하고 빨래통에서 빨랫감들을 주섬주섬 꺼낼 때도, 보채며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온통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스스로도 벅찰 지경이다. 집에서 온종일 세 살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며 하루하루 생활을 이어나가기에도 정신없는 와중에 나는 왜 이렇게나 벅차하며 글을 쓰고 싶어 할까.
12월은 괜스레 그런 물음을 묻게 되는 계절이다.
그저 내 속에서 홀로 걸어 나오는 물음이므로 애써 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글을 쓰고자 하는 이 순백의 의지가 어쩐지 나로서도 신기해서 자꾸만 그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MBTI로 보면 나는 영락없는 F, 감정형의 사람이다. 생각이 끊이지 않고 온갖 감정들이 들끓는 마음을 가졌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마음속에 들어 있는데, 어려서부터 나는 밖으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내 생의 첫 기억에 따르면 나는 갓난아기 때부터 아빠를 무서워했다. 갓난아기인 내가 한밤중에 앙앙 울었더니 옆에서 자던 아빠가 몸을 벌떡 일으켜 내게 화를 냈다. 그 기억 때문인지 나는 평생 아빠를 무서워하며 자랐다. 집안에서조차 스스럼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중고등학생 때는 친척집 몇 군데를 전전하며 자랐다. 부도난 아빠의 사업을 마치 내가 짊어진 것처럼 살았다. 슬프지 않은 척, 그립지 않은 척하는 것에 능숙해져야 했다. 눈치껏 내 할 일을 빠르고 완전하게 해내는 게 항상 삶의 과제였다. 일찍 철들기를 강요당한 소녀의 속마음에 관심 갖는 어른은 없었다. 터놓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 키보다 더 빠르게 쑥쑥 자랐던 감정들을 다시 내 마음속으로 쑥쑥 구겨 넣기에만 급급한 나날이었다.
스무 살이 되어 마침내 공부가 아닌 다른 의지처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책과 글쓰기였다.
그때의 그 감동으로 계속해서 읽고 써왔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나보다 많이 읽고 잘 쓰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면서 내 글이 창피할 때가 많았다. 방황이라는 가방에 그 모든 착잡한 심정들을 주워 담고 이리저리 내빼고 숨었다. 도망칠 때가 가장 숨통이 트였다. 그 가방을 꽤 오랫동안 둘러메고 다니며 남은 이 십 대를 살았다. 그 후로 나는 항상 참되게 행복하지 않으면서 행복한 척 웃으며 헛되게 살았다.
한때 책과 글을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 결국에는 제대로 된 일기장도 하나 갖지 못한 채 긴 시간을 가난한 마음으로 살았다.
이제 나는 육아에 바빠 스스로 거울 볼 틈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육아와 가사는 미련하게 행복한 행위다.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지난한 일상의 행위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그 속에서 알알이 반짝이는 작은 행복들을 한 알 한 알 허리 굽혀가며 줍는다. 진주알 같은 그 행복들이 너무 예뻐서 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 몸 상하는 줄 모르며 계속한다.
그러다 아이를 재우고 돌아눕는 밤이면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다. 모든 집안일을 마치고 책상 앞에 앉을 때면 왠지 모르게 분통 터지듯 화가 치밀어 올랐다. 씻으러 들어간 화장실 거울에서 지친 밤의 얼굴을 한 나를 마주할 때면 괜스레 가슴이 갑갑했다.
가족의 일상은 평온했다. 아이는 큰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이 슬픔과 분노가 사치스럽게 느껴질 만큼 평범한 행복이 도처에 널린 삶이었다.
그 부조화 속에서 나는 깊이 혼란스러웠다.
아내와 엄마의 삶은 대체 무엇일까.
이 답이 없는 물음을 홀로 계속 묻고 삼키기를 반복하며 육아와 가사를 했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났을 무렵 지역에서 우연히 엄마들의 글쓰기 동아리를 만났다. 얼기설기 나마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이 피곤한 와중에도 어떻게든 쓰고 나면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난 며칠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찰나 같던 일상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마침내 간직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아무리 애써도 한 푼의 돈도 안 되고 명예도 없는 일이지만 왠지 마음이 충만했다. 그저 마음을 터놓을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일 밤 여리게 기뻤다.
내게는 이제 하루치의 마음을 깨끗이 빨아서, 볕에 바싹 말리고, 구김 없이 잘 다려 글쓰기라는 나만의 옷장에 잘 걸어두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 나는 남몰래 푸른 꿈을 하나 꾼다.
아이가 좀 더 커서 내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허름한 상가의 청소부가 되고 싶다. 청소부라는 직업은 낯 모르는 사람들의 살가운 척하는 요구에 일일이 응하지 않아도 되고, 혼자 조금은 고독하게 일할 수 있으며 사사건건 평가받는 날카로운 능력을 요구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묵묵하고 고분고분하게 내 일만 끝내면 무사히 퇴근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종일 몸을 쓰고도 적은 돈을 받는 일을 하고 돌아와 가족들이 남겨놓은 집안일을 소리도 없이 능숙하게 해치운 뒤 늦은 저녁 홀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생에 바라는 건 딱 그만큼의 충만하고 고요한 하루다.
힘들다는 투정도 돈이 적다는 불평도 하지 않을 테니 그저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조용한 저녁을 매일 선물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