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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부부 생활 백서

by 열대나무



부부사이에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부부가 나란히 손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때만 해도 서로 간의 사랑과 믿음을 약속했다지만, 본격적인 '생활'이 시작되면 부부 사이에 사랑과 믿음은 어느새 뒷방 노인 같은 신세가 된다. 결혼생활에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가사 분담과 생활 방식의 협상이 아닐까. 자기 삶의 철학이 뚜렷하고 손해 보기 싫어하는 요즘 남녀에게 그 문제는 종종(사실은 언제나) 부부싸움의 시발점이 된다.


우리 부부는 외벌이다. 출산 전에는 남편은 밖에서 일하고 나는 집에서 일하며 우리는 나름의 동등한 생활을 영위했다.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남편의 아침밥을 준비했고, 저녁밥을 준비하는 것도 고민거리도 안될 만큼 매일 즐겁게 했다. 그때는 집안일이 내 적성에 딱 맞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휴일에는 같이 쉬고, 같이 집안일을 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전담하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자기 몫의 일을 성실히 하고 그 외의 것은 함께 한다는 단순한 정신만 있으면 됐다.


변수는 출산이었다. 육아라는 공동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공평함에 대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내가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만큼 남편이 알아서, 눈치껏 가사와 육아에 제때,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평화가 유지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남편은 눈치는 있지만(이건 본인 피셜), 안타깝게도 자기가 정말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가사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워했다. 피곤에 온몸이 찌들 만큼 종일 움직여도 육아와 가사가 끝나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남편을 향한 짜증과 신경질이 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남편의 숙면은 늘 보장해 줬다. 아이 신생아 시절부터 말이다. 그가 안방에서 혼자 편하게 잘 수 있게 배려해 줬고 지금까지도 남편은 혼자 잔다. 그건 종일 밖에 나가 일하는 사람에 대한 내 나름의 존중이었다. 그러나 나는 존중을 내어주면서 배려를 바라게 됐다. 나도 이만큼 해줬으니 너도 이만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점점 그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가사와 육아에 대해 알아서 좀 참여해 줄 수 없냐고 나는 자주 화를 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정말 자기가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니 제발 말로 요구를 해달라고 했다. 남편 입장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필요한 걸 저절로 알아주길 바라는 내가 이해할 수 없이 답답했던 것이다.


상대에게 요구하고 명령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에 대한 계획은 다 내가 해야 했고,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을 말투를 골라야 했으며 또 그가 알아듣기 쉽게 얘기해야 했다. 그런 일에도 에너지가 쓰였다.


처음에 남편은 설거지를 해도 설거지 통에 담겨 있는 것만 했다. 인덕션 위를 행주로 닦거나 아일랜드 식탁 위에 놓인 컵들을 주워다가 같이 설거지할 생각을 못했다. 눈앞에 있는 것만 명령한 대로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설거지 하기 싫어서 시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설거지를 끝낸 남편에게 고생했다는 말은 못 하고 뾰족한 말투로 잔소리만 더 늘어놓았다. 오해가 집안일만큼 가득 쌓여 갔고, 점점 싸우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는 다른 일에서도 비슷하게 행동했다. 일부러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못 하는 것이었다. 인덕션 위에 묻은 얼룩이, 여기저기 나뒹구는 컵이 정말 그의 눈에는 안 보이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지만, 그는 진심으로 억울해했다. 조금이라도 나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주 서서히 내게도 느껴졌다.


이제야 알게 된 점은 그는 A부터 Z까지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그는 A부터 Z까지를 요구하면 정말 A부터 Z까지 성실히 하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여러 시행착오(잦은 싸움이겠지) 끝에 조금은 서로에게 맞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요구와 명령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고, 남편은 시키는 것만큼은 빈틈없이 해내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은 내가 시키지 않은 것도 스스로 해낼 만큼 업그레이드되었고, 간혹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걸 (지난 몇 년 간의 수많은 데이터 축적 끝에) 먼저 알아주는 능력이 조금 생겨났다. 어쨌든 우리 살림을 우리 스스로 살아내야 하니 불가불 우리는 서로에게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누구나 잘 알다시피 부부 사이의 협상과 맞춤은 쉽게 완결되지 않는다.

연재소설처럼 계속...... 계속되는 것이다.


어느 휴일 아침. 매일 6시 정도면 일어나는 아이는 연신 내게 묻는다.


"아빠 언제 깨워요?"


남편은 밤늦도록 컴퓨터 하며 노는 걸 좋아하고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그런 남편을 배려해 나는 되도록이면 남편 아침잠을 방해하지 않으려 한다. 계속되는 아이의 물음에는 "아빠 조금만 더 자게 두자." 하며 같은 답을 한다. 다행히 아이는 내가 그렇게 말하면 굳은 약속처럼 안방 문을 열지 않는다.


9시 정도가 되면 아이도 나도 슬슬 참을성이 바닥난다.


항상 관건은 내 컨디션이다. 컨디션이 좋을 때면 나는 아이를 또 한 차례 달래 남편의 아침잠을 지켜준다. 그러나 내 컨디션, 특히 심적인 컨디션이 안 좋을 때(한 달에 한 번 호르몬의 노예가 되는 때) 면 더 이상의 존중과 배려는 없어진다. 그러면 나는 손가락짓 한 번으로도 남편을 깨울 수 있다. "아빠 언제 깨워요?"하고 묻는 아이에게 손가락짓으로 안방을 가리키면서 고개를 끄덕이면 게임은 끝난다.


반쯤 감긴 눈으로 아이 손에 이끌려 나온 남편은 소파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이미 심사가 뒤틀린 나는 나와서까지 자는 거냐고 그의 감은 눈앞에 핀잔을 잔뜩 늘어놓는다. 남편은 감았던 눈을 느리게 뜨면서 말한다. 절대 자는 게 아니고 그냥 눈을 감고 있는 거라며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결백을 주장한다. 그의 천연덕스러운 태도에 나는 점점 더 약이 오르고, 결국 호르몬의 비정상적 분비로 인해 마음속 용암처럼 끓어오르고 있던 감정을 분출하듯 토해내고 만다.


"너는.. 흑흑.. 내가 요즘 얼마나 내 시간을 못 가졌는지 알기나 해?.. 흑흑... 주말에, 응, 일찍 좀 일어나서 나 카페라도 좀 다녀오게 해주면.. 윽윽.. 얼마나 좋냐.. 흑흑.."


남편은 여전히 무구한 표정으로 눈을 반만 뜬 채 울먹이는 나를 본다. 그러다 그저 자기 얼굴을 두어 번 벅벅 긁어댈 뿐이다. 우리 부부에게 이런 장면은 이미 여러 번 플레이 됐다. 나는 그의 무심한 반응에 금세 우는 데 흥미를 잃고 만다. 눈물을 쏙 집어넣고, 휴지로 코를 한 번 킁 풀고는 작전을 바꿔 세모눈을 하고 남편을 노려본다. 쳇, 지금 막 동면에서 깬 곰도 저 눈빛보다는 또릿또릿 할 거다 아마. 곰보다 못한 인간 같으니라고!


예전에는 아이 기상 시간에 맞춰 남편을 깨웠었다. 그랬더니 그는 아이랑 놀면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그 후로는 그냥 자게 둔다. 밤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도록 습관을 좀 바꾸라고 해도 그렇게 말을 안 듣더니, 최근 건강검진에서 간수치가 나쁘게 나온 후로는 그나마 일주일에 두세 번으로 줄었다. 내가 만족할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그렇지 그도 나름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안다.


가끔은 이 모든 게 진절머리 날 때가 있다.


함께 생활하면서 맞닥뜨리는 별별 사소한 일로 싸우는 내가 못마땅하고, 그가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다 또 어느 날에는 작디작은 일로 함께 웃다 보면 이 모든 게 다 가슴 저릿하게 감사하기도 하다. 남편만큼 내게 착한 사람이 어디 있나 싶고, 육아와 가사를 이만큼이나 해내고 있는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그런 마음들을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갔다. 이제 막 결혼 6년 차에 접어든 우리는 아주 대단스럽지도, 너무 형편없지도 않은 보통의 부부가 되어 있다.


그 어렵다는 지극히 평범한 부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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