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로스트 Sep 07. 2018

감정이 사라지다. 감정표현 불능증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고 두렵기까지 하다면 [심리상담 메신저 트로스트]

어린 시절 학교에서 심하게 혼나고 집으로 오던 날이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무엇 때문에 내가 그렇게 혼났을까 생각조차 나지 않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은 어린 나에게는 너무 험난한 길이였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서러운 마음에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눈물을 참고 집으로 곧장 걸어갔습니다. 집에 가면 엄마에게 다 말하리라,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엄마를 보면 눈 녹듯 사라질 거야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엄마의 반응을 기대했습니다. 


엄마는 우두커니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들어오지 않고 뭐 하고 있어?라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분명 내 눈에 흐르던 건 눈물이었는데, 엄마는 나의 눈물을 보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걸까요?


그 사건 이후로 누군가 앞에서 감정을 표현하고 스스로 나의 기분을 알아차려 주는 것에 대해서 큰 거부감이 생겼습니다. 내가 느낀 감정을 의심하고 검열하기도 하고 누군가 나에게 지금 기분을 묻는다면 해줄 말이 없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단어로 지금 이 기분을 표현해야 하는지 막막함이 앞섰던 적이 한두 번이 아녔으니까요. 속 안에서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슬며시 올라올 때마다 혼자 식혀 감정을 삼켰습니다. 


표현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하기도 하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시원하게 울고 싶을 때 화가 날 때 잘 표현해보고 싶은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감정의 이름을 찾아서 이름표를 붙일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런 경우처럼 주변을 살펴보면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감정이 있기나 할까?라는 생각이 들죠. 아마 돌이켜보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알아차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요? 대체 나는 왜 감정에 무딘 사람이 되었을까요?


언제부터지..?


일반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거나 분노를 느끼면 심장이 빠르게 뛰거나 손과 발이 차가워집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체 감각으로 감정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어려워하는 감정 표현 불능증은 같은 증상을 느끼고 부정맥인가? 지금 머리가 아픈 것 보니 감기가 오려나 보다 라고 생각합니다.


감정표현 불능증(Alexithymia)은 주관적인 감정을 판단하고 구별하기 힘들고 감정과 감정에 따른 신체 감각 분별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감정 불능증이 생기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신경적 요인도 있지만 정서적으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했거나 스트레스적 상황에 놓여있을 때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해서 의식적으로 정서적 반응을 억제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누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울하거나 기뻐도 표현하지 못하거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감정에 대해 질문하면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정표현 불능증

감정표현 불능증(Alexithymia)의 단어를 풀이하자면 ‘영혼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음’입니다. 이 말은 곧 언어로 감정을 ‘번역’하는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단지 표현하고 번역하는 능력이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지 감정에 따른 신체적 반응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감정표현 불능증이 지속되어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정신의학에서는 신체화 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감정표현 불능증의 증상

정서적 각성으로 인한 신체 감각(두근거림, 두통, 홍조, 근육통과 손떨림)과 감정을 연결하고 구분하는데 어려워합니다.

스스로도 감정에 대한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자신의 감정에 둔한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예측하고 공감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본인의 감정에 대해 둔감하기 때문에 자발적, 주체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기보다 외부 자극이 있을 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감정표현 불능증의 이유

감정을 다 표현하면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여겨지거나, 어린 시절 트라우마, 감정을 표출했다가 거절당한 경험, 아이의 감정을 돌봐줄 여력이 없었던 집안 풍경 등 성장과정에서 감정을 제대로 인식할만한 경험이 없는 경우, 어릴 적 부모님이 나의 내적 심리상태를 알아차려주고 그 감정을 다음 동일한 상황에 적절한 감정의 이름표를 붙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부모의 부재나 주변 사람들과 충분한 교류가 없는 경우를 뜻합니다. 반대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과 시간을 겪었던 사람의 경우에 감정표현 불능증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우울한 시간 속에서 감정을 숨기는데 익숙했던 경험이 있어도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감정표현 불능증의 해결 방안

시간에 의해 딱딱하게 굳어버린 거대한 감정을 순식간에 알아차리고 말랑말랑하게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감정을 쪼개서 작은 감정부터 하나씩 알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느끼는 감정을 조금씩 알아가고 표현하는 방법을 알아간다면 분명히 감정을 느끼는데 어려움이 없고 점점 익숙해지겠죠. 자신의 증상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그 당시 내가 왜 그 감정을 느꼈고 어떠한 신체의 증상이 있었는지, 나는 어떤 행동을 했는지 떠올리는 과정을 통해 감정에 이름표를 하나씩 붙여줄 수 있습니다.



이건 슬픔이라는 감정이에요!



수많은 감정의 이름들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그리고 지금 알맞게 사용하고 있나요? 단어의 이름표를 확실히 붙일 줄 아는 사람은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감정은 자라나는 새싹 같아서 계속해서 가꾸고 키워야 합니다. 감정의 이름표를 내가 느끼는 감정에 잘 붙일 수 있고, 그것을 상황에 따라 알맞게 느끼며,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려면 말이죠.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닌, 다양하게 감정을 인식할 줄 알고 상황에 맞는 적합한 대처방식을 찾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천천히 걸어가야 합니다.


혼자 걸어가기 버겁다면 전문 심리상담가와 함께 걸어가도 좋습니다. 신체화장애가 지속된다면 정신의학과의 도움을 함께 받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심리상담 같은 경우는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문제를 풀어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나의 입장에서 입체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에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 괴물 같은 상황이 아닙니다. 단지 감정에 이름표를 찾지 못해 알맞은 이름을 달아주지 못한 것뿐입니다. 이제 마음을 숨기지 마세요. 감정은 제일 솔직하니까요.








작가의 다음 추천 글


https://brunch.co.kr/@trost/75

https://brunch.co.kr/@trost/5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