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맘다니 2

사이다 중독의 딜레마

by 유노유보

사람들은 맘다니에 대해 “민주 사회주의자”, “극좌”를 이야기하고 진보 아재 분들은 오랜만에 신나서 이런저런 자신의 희망과 지향을 맘다니에 투영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뭐 좋다.


그런데 나는 조란 맘다니의 뉴욕시장 당선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건 그가 내세운 정책과 공약보다 그가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지, 그의 승리과정 자체에 좀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친팔레스타인 입장을 가졌음에도 젊은 유대계, 자유주의 시온주의자들의 지지를 꽤 받은 건 왜 그런 것인지, 흑인 커뮤니티에서 쿠오모가 18% 더 지지받은 건 맞지만, 왜 2030 흑인들은 맘다니를 더 지지한 것인지,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쓰고자 하는 요점이기도 한데, 2024년에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 중 3~5만 명은 왜 “극좌 코뮤니스트” 맘다니에게 투표를 한 것인지에 대해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2021년 뉴욕시장 선거 당시 공화당 후보 curtis sliwa는 27.76%를 득표했지만, 이번에는 7%, 거의 붕괴 수준으로 받았다. 나머지 20퍼센트 중 70퍼센트는 쿠오모에게 갔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그런데 여기서부터 주목할 지점인데, 나머지 30퍼센트는 대부분 맘다니에게 갔다는 사실이다. 극좌인데 왜 그렇게 많이 가져간 것일까? 더구나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 “공산주의자보단 낫다”면서 사실상 쿠오모를 지지한 상황이었고, 공화당 주류는 쿠오모가 아닐라 슬리와에게 사퇴 압박을 넣었다. “보수”였다 “극좌”를 찍은 사람이 30퍼센트에 달했다는 사실에 좀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tottenville이나 bath beach, college point 등 north queens나 south brooklyn지역의 트럼프 지지가 강했던 몇몇 동네에서는 맘다니가 승리하기도 했다. jamaica hills, queens 같은 곳은 2024년 공화당에 25% 이상 이동했던 곳이었지만, 이번에 맘다니는 예비선거에서 84.2%를 득표했다.


왜? 트럼프를 지지했던 이들이 1년만에 대체 왜?


브루킹스 연구소는 그의 승리전략 중 하나로 “경청”을 꼽는다. 그리고 그건 청년 2030에 대한 경청 뿐만 아니라 반대정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맘다니의 초기 인스타그램 영상에서 맘다니는 queens와 bronx의 트럼프 유권자들과 인터뷰한다. 그들과 선의의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말문이 막히는 질문이나 답변에 20초 이상 침묵한다. (그리고 그걸 그의 팀은 편집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 걸 다 솔직하게 드러내고 진심어린 경청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그는 언론인터뷰에서도 말했다.


“우린 더 많이 듣고, 덜 설교해야 합니다.”


트럼프 유권자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것이 바로 “생활비 때문에 트럼프를 찍었다”란 것이었다. 맘다니가 “부담가능한 주택”, “부담가능성”, “경제성”(어포더빌리티)을 그의 슬로건과 기조로 정한 것은, 민주사회주의자들이 호들갑을 떨거나 민주당에서 트럼피즘 다 쓸어버리자라고 해서 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기조는 민주당의 “적극 지지층”이 아니라, 민주당을 찍을 수도 있었던 트럼프 지지자들이 정해준 것이었다.


물론 그의 가장 큰 승리요인은 정치적 무관심층과 무당파들의 압도적인 지지였다. 뉴욕에서 새로 투표한 93만명 중 거의 대부분이 맘다니를 찍었고, 그들 대부분은 젊은 층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반대파를 향한 태도의 진중함이었다.


나는 여기서 의문인데. 소위 말하는 “맘다니 타령”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당의 “적극적 지지층”에 소구하려는 사람들, 또는 소구해왔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수, 자신의 반대편의 말을 경청하고 신뢰하고 존중하고, 그들과 진보의 가치가 함께 공명하는 지점에서 자신의 공약과 정책기조를 정하고...민주당 주류와도 과감하게 논쟁하고 싸우고...그런 "맘다니식" 정치를 해왔냐는 것이다.


우린 반대편 진영을 증오하지 않고 합리의 영역 안에서 토론하려 하면 “수박”이라 말하고, 주류의 의견에 찬동하지 않으면 “내부총질”이라 부르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나.


맘다니는 “정책은 진보, 태도는 온건”을 베이스로 깔고 자신의 의제를 밀고 나간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오랫동안 소위 말하는 “사이다”에 중독되고 절여져 있다.


서울에서 뉴욕처럼 맘다니처럼 변화를 만들고 싶다 어쩌구 하지만, 맘다니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정작 맘다니를 결코 벤치마킹할 수 없다. 그와는 전혀 반대되는 정치문화에 편승하거나 침묵해온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딜레마가 시작된다. 서울의 인구구조와 정치지형으로는 그렇게 해선 이길 수 없으니까.


‘조요토미 희대요시’하면 후원금이 마감되고 그런 정치풍토가 현 상황인데, 무슨 우리 정치가 맘다니를 이야기하나, 싶은 것이다. 나는 지금 주요정당에서 맘다니 이야기하면서 변화 이야기하는 사람치고 태반이 그냥 자기 하고 싶은 거에 그냥 갖다붙이는 거 이상의 고민은 없는 거 같단 생각이다. 그래서 맘다니 맘다니 맘다니다 어쩌구 타령할 시간에 자기고민하는 정치인이 더 비전이 있을 거 같단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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