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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민 노무사 Dec 27. 2020

정의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2017년 3월 26일 글


내가 정의당을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때는 2016년 7월 ~ 9월의 기간을 거치던 때였다. 내 주변의 거의 누구나 이제는 다 알고 있듯이, 그때는 2016년 7월 20일 올라간 정의당 문예위의 논평, <정치적 의견이 직업활동을 가로막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가 25일에 철회되고 그후 9월달까지 벌어진 일들 때문이었다.


누구나 생각하듯이 "페미니즘"이나 "메갈리아"에 대한 부분은 아니다. 사실 난 지금도 페미니즘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며, 메갈리아니 워마드니 하는 것에 지금까지도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내 주변 사람들에겐 지난 1년간 늘 부연해왔지만)


지난 7월, 엄청난 비난을 들을 때의 촛점은 "그래서 넌 친메갈이냐 반메갈이냐"였고, 심지어 당 상무위에서마저 논평을 철회하며,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친메갈이냐 반메갈이냐의 논란만 양산"했다고 이야기가 나왔지만, 당시 우리의 관심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문화예술노동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근로계약" 이외에 "고용계약", "도급계약" 등을 맺는다. 게임 내 캐릭터의 목소리와 관련한 도급계약에 대해서 우린 어떤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그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 여부가 아니라 그 실질에 있어 임금(근로 제공 자체에 대한 대상적 성격으로서의 보수)이 타인의 지휘와 명령을 받은 사용종속관계에 따른 대가로서의 노동인지 여부에 대해 생각해봤고, 당연히 이에 대해 우린 이 사람은 문화예술계의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큰 고민도 없었다. 당연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나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정수기 관리인, 기타 도급 수급인 등 "특수고용"의 굴레 안에서 근로자성 그 자체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정당의 부문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봤을 때, 그러한 목소리 노동자의 생산물, 목소리의 "삭제"와 계약해지 (그리고 그 이후 다른 게임에서 추가적인 목소리 삭제) 는 이와 같은 해지를 촉발한 사유 (자신의 트위터에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 인증샷 업로드) 는 그 해당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권리침해 (사생활 및 정치적 의견 자유의 침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정당의 부문위로서  문화예술 "노동"의 측면에 대해 논평을 낼만 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한홍구 씨의 승리로 막을 내린 평화박물관 사태에 대한 논평을 올린 이후 (5월) 중앙당에서는 우리의 논평에 대해 "검사" 하고 문제가 없으면 올리고, 문제가 있으면 수정의견을 줘서 이를 반영하여 논평이 나갔다. 그래서 중앙당의 의견을 청취하고, 협업하던 중앙당 당직자를 통해 몇 차례의 문구 수정 논의를 거쳐 논평이 나갔다.


그런데 논평이 철회될 때, 모두가 알다시피, 철회의 이유는 해당 성우가 "원만한 합의해지를 했기 때문에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고,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논란만 불러 일으켜" 철회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난 당시 저 철회의 성명이 해당 성우의 노동자성에 대해 "부정"하는 취지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음은 확실히 알고 있다. 사실 근로자성을 인정한다면 그때부터 논평의 철회는 아예 어그러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리고 논평 철회 3일 뒤 '임의의 직책을 가진 권한없는 사람들'로 선언되었다. 당이 임명하지 않고 직책과 권한을 참칭한 사람들에게 왜 명함을 200장씩 파줬는진 잘 모르겠지만.)


"노동"을 이야기하면서, 근로자성과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고루했다. 2016년 9월, 한국야쿠르트에서 12년간 일한 위탁"계약"을 맺었던 '야쿠르트 아줌마'의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았을 때, 정의당이란 곳에서는 (내가 기억하기로) 논평을 내지 않았다. "특수고용"의 노동자, 이 시대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노동의 모습에 대해서 '진보적'으로 해석을 하거나 주장하는 모습이 없었다.


심지어,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 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는 말은 나나 다른 진보적 학자나 정치인의 주장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법질서 안에서 이야기 된 말로 알고 있다. "계약의 원만한 해지" 여부가 아니라.


나는 그래서 그때 이후로 정의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얼마 전, 심상정 대표는 "기본소득제 대압착 플랜"을 이야기한 바 있다. 기본소득을 진보정당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만복의 오건호 대표도 "어차피 한국의 기본소득은 사회수당 쪽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그 정치적-철학적 성격이 전혀 다른 기본소득도 사회수당과 화해하고 있는 것 같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놀랐던 것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라는 그의 언급이었다.


요스타 에스핑 안데르센의 "복지자본주의의 세가지 세계"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우리는 '복지국가'의 그 체계와 유형이 권력체계, 정당 시스템에 따라 각 문화권별로 다르게 형성되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복지국가는 계층화를 조장하기도, 최소화하기도 하며, 각 복지국가의 평등에 대한 정의와 입장도 달라진다. 자유주의적 복지국가, 조합주의(보수주의)적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자본주의 국가가 다른 점은, 바로 노동과 복지에 대한 관점이다.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자본주의 국가에서 "고용", "일자리 제공"은 국가 시스템 상의 "의무"에 가까우며, 그것은 "포스트 산업화"(복지자본주의의 세가지 세계, 1990의 표현)의 시기에도 예외가 아니다. 심상정 대표의 언급이 과연 기본소득과 4차산업혁명, 그리고 "저출산"에 대한 심도깊은 고민이 있었는지와 별개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의 생산성 증대와 별도로, '저출산'의 시기에 고용, 복지, 노동 체계는 어떻게 바라봐야 진보적인 것인지에 대한 고민) 심상정 대표의 주장이 정말 기본소득인지, "사실상의 사회수당"인지와는 별개로, 엘론 머스크같은 IT 사업주가 주장하는 대로, "앞으로 노동이 점점 필요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필요" 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내게 놀라운 일이었다. "일자리"와 "조세" 시스템의 연계를 통한 광범위한 계급적 연대가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의 모습일텐데, 심상정에게서는 "일자리"의 '제공'에 대한 진보적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 헌법에 있는 "근로의 권리"란 '근로의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에는 국가에 대하여 근로의 기회를 제공하여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고 우리가 요새 좀 좋아하는 헌법재판소의 2007년 판례가 말한 바 있다. 완전고용에의 헌신, 모두가 함께 하는 "조세" 시스템 속에서 이뤄지는 높은 수준의 복지가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를 이루는 좌파-노동자 정당의 일반적인 태도요, 관점이다.


그리하여, 나는 정의당이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 복지국가를 구상하는 관점, 노동과 복지의 두 측면 모두에서 정의당은 진보정당이라고 볼 수 없다. (심지어 전국적 노동조합의 배타적 지지 내지는 연대도 없다. 그리고 이 글에서 굳이 많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여성주의와 정의당을 이야기하면, 이 얘기는 거의 화룡점정으로 치닫는다.) 나는 정의당을 그저 한때 진보정당을 했던 사람들이 하는 정당, 자신을 진보정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정당, 혹은 자신을 진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의 정당이라고 본다.


(내 인생의 마지막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이다. 그때가 좋았다~ 식의 추억팔이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 무상의료-무상교육-부유세 등을 매개로 한 고용-노동-복지에 대해 통합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의 상을 그 정당이 갖췄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의당의 일부 (주로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에서 자신들이 "진보정당의 정체성",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며 이야기하는 그 특유의 정서 속에서 나오는 일부 어떤 사람들에 대한 비아냥에 사실 정말 동의하기가 힘들다.


박용진 의원에 대한 비아냥과 멸시, 민주당에 간 옛 민주노동당 출신들에 대한 "결국 떠났구나~ 초심은 잃지 않았으면~" 등의 이야기, 국민의당에 간 옛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출신들에 대한 그런 "변절"에 대한 이야기. 사실 정의당의 "노동"과 "복지"에 대한 정책적 관점은 사회민주주의나 좌파적이라기보단 그저 "자유주의"에 좀 더 가깝다. 실질과 무관하게 그들 스스로의 인식과 상상 속에서 "진보"를 이야기하면서 타인과 다른 세력의 "진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웃기는 일이다.


자신의 진보성은 타인이 진보정치를 하지 않음을 주장하면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진보성에 대한 정치적 평가로 상당부분 구성되기 때문이다.


가령 '진보정당이 아닌' 민주당의 박용진 의원과 같이 말이다. 박용진 의원이 '진보정당의 길'을 가고 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진보정치'를 하고 있음은 아마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어차피 한국에 "제도권 진보정당"은 존재하지 않으니, 그 진보정당에 대한 상이 뚜렷해지기 이전까지 우린 "진보정치"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그를 중심으로 정치를 사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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