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했던 건 그저 사람 구실이었다.
2013년, 내게 간절한 것은 사람 구실이었다.
사람 구실만 할 수 있다면, "자본의 개"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남들 대외활동하고 토익점수 올리고 토익스피킹, 오픽점수 올리는 동안
90년대 이후 쭉 희귀종이었다는 대학 운동권 하고 진보정당인지 뭔지 하는 사람들 따라다니고 같이 놀다가 농활이나 수해복구활동이나 좀 해봤지 과외말고 변변한 대외활동도 제대로 못해봤다.
취업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전엔 몰랐다. 이게 왜 스터디까지 해야 할 정도로 힘든 것이었는지. 그 "대외활동"이란 것조차 "합격"과 "불합격"이 있다는 사실조차 그땐 몰랐었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점차 급해졌다.
그래도 처음엔
취업박람회와 학교에서 열리는 채용설명회를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뭔가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호기롭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서류를 보냈다.
광복절 대신 "광탈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2013년의 어느 날들이었다.
"가난은 어떻게 당신의 두뇌 작용을 저해시키나" 따위의 글을 보며 때론 자학하며, 때론 빨리 취직을 해야 하는데 하는 초조함을 느끼며 자취방과 학교 중도, 취업스터디를 오갔다.
2013년 11월, 20대의 수능이라 불리던 S사의 싸트를 통과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12월 초에는 K사 최종면접에서 또다시 미끄러졌다.
150개가 넘는 기업에 원서를 썼고, 고작 4번의 최종면접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모두 떨어졌다.
그 즈음 나는 속으로 되뇌였다.
"노예가 되어도 좋아. 자본의 개가 되어주겠어! 제발..제발..사람 구실만 할 수 있게..."
하루는 엄마가 서울의 자취방에 다녀갔다.
분명히 어제 방을 치웠음에도 "넌 어쩜 이렇게 더럽게 사냐" 란 말과 함께 내 방과 화장실까지 싹 청소했다. 심지어 난 원래 한 이틀 묵혀놓는 설거지마저 다 해놓고...
그리고 대전에서 재워둔 갈비와 새 김치를 놓고 가셨다.
그 시절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더 이상 나의 취업을 닦달하지 않았다.
엄마는 몇 년간 다녔던 하청업체의 반도체 검시원 자리를 눈이 계속 나빠져서 그만둔 뒤(주야 2교대로 계속 현미경으로 반도체를 검사하던 일이었다) 실업급여를 타면서 구직활동을 했다.
면접까지 간 엄마에게 사장은 늘 엄마의 나이를 물었다.
만 53세의 아줌마를 쓰고 싶은 회사는 찾기 어려웠으니까.
엄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 시절의 엄마는 나를 잘 이해해주었다.
그 시절의 엄마와 나의 공통점은 바로 실존에 대한 고민이었다.
모자가 함께 취직 걱정을 하며 서로를 위로해주었다. 취업하란 닦달을 듣지 않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 지.
당시 아흔의 외할머니는 그 해에만 3번째 입원을 했다.
"그래도 올해는 넘기고, 나 취업되는 건 보시고 내년에 돌아가시면 어떨까?"
하고 말을 꺼내니 엄마는
"너 장가라도 가냐?"라고 말했다.
여자도 없는데 무슨.
"나 내년에 취직하면 조의금 더 많이 들어올 꺼 아니에요."
엄마는 말 없이 웃기만 했다.
엄마는 내 자취방의 남은 반찬통을 죄다 수거해갔다. 외할머니한테 싸줄 반찬통이 모자랐다며.
엄마가 수거해간 반찬통 자리에, 빈자리만 남았다. 나는 그 빈자리에 내 이름이 적힌 사원증이 걸리길 바랐다.
그날 밤 늦게 자취방 근처의 정릉천을 걷고 또 걸었다.
하염없이 걸으며, 마음 속에서 수도 없이 외쳤다.
"노예가 되어도 좋다! 제발, 제발 사람 구실만 할 수 있게만...! 나를 노예로 뽑아줘..."
내게 강 같은 평화가 아니라, 강 같은 여유가 찾아오길, 강물같은 돈을 얻어 엄마 아빠를 부양하고 여자친구도 생겨 연애도 할 수 있길...
그래서였을까.
2014년 2월, 게임회사 N사의 인턴 합격 소식은 내게 달콤하고 짜릿한 버저비터였다.
그래, 노예가 되겠습니다. 서울 서남부의 등대지기라도 되겠습니다!
바다 하나 없는 내륙이어도 등대 하나 있어야지!!
그렇게나 그곳의 정규직 등대지기가 되고 싶었다.
절박하게 노예가 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곧, 그 소원이 얼마나 달콤하고도 위험한지,
그 대가가 얼마나 오래 따라붙는지 알게 됐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회사명은 실제와 다르게 각색되었으며, 특정 개인이나 법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나 법인, 사건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언급된 특정 상황이나 대화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일부는 작가의 기억과 해석, 창작이 반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