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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긁힘은 나의 힘

야근, 무시, 회식, 괴롭힘, 그 모든 모욕이 나를 만들어냈다

by 유노유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의원회관 2층을 걸어가던 중, 스레드에서 눈에 띄는 문장을 봤다.

"긁힘은 나의 힘"


대표변호사가 된 개업변 와이프와 함께 일하고자,

이제 곧 퇴사를 앞둔 나에게 그 문장만큼 만감이 교차한 문장은 없었다.

그래, 그랬었지...


돌이켜보면 그랬다. 어느덧 내 인생은 벌써 한 4번째 스테이지쯤 되는 곳 언저리 어딘가에 맞닿아 있었다.

그 스테이지의 고비들 마다 켜켜이 쌓여있는 내 마음에 긁혀진 상처들을 돌아봤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다가, 노동운동을 조력하는 활동가이기도 했다가, 공인노무사로서, 여의도 국회 보좌관으로서 살다가, 이제 다시 아내와 함께 진짜 노무사와 변호사로서, "대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시점까지.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전환과 도약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순간에는 "긁힘"이 있었다.


사회초년생이었고, 운동권 나부랭이로 살았지만 정작 세세한 노동법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던,

대형 게임회사 N사의 신입사원일 때, 속절없이 당했던 팀장의 막말과 정서적 괴롭힘,

그리고 결국 받아들인 2015년 10월의 어느 날 권고사직.

사실 생각해보면 그 순간을 잊지 말자는 다짐과 응어리가 바로 내 가슴 속의 SMR이었고 핵융합발전이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찾아가서 그 얼굴이 거무튀튀해질때까지 마셔대던 좋아하는 술이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회음후 한신은 과하지욕(胯下之辱)의 그 순간을 잊지 않아 초왕이 되었고,

고향에 돌아가 가랑이 사이를 기게했던 건달을 기어코 찾아내 죽인 것이 아니라

벼슬을 내렸다고 하지 않은가.


순간 그 까무잡잡했던 피부를 가졌던 팀장 M의 간 건강이 걱정됐다.

어디선가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할 텐데. 반드시 재회하여 안녕하셨냐고. 그동안 잘 지내셨냐고. 덕분에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아주 잘 살고 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해줘야 할 텐데. 하고.


큰 꿈을 안고 서울의 노동관련 민간위탁기관에서 일했을 때,

수동공격의 대가였던 팀장 S도 생각이 났다.

그 시절 무수했던 눈물과 가슴 답답함, 차라리 죽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들을 했다.


바로 그 어두움들이 내게 모이고 모여

내 가슴 속 우라늄이 되고 플루토늄이 되어 내 공부시간을 늘려줬다.

순공시간은 짧았지만, 그 순간의 집중력은 원자로처럼 돌아갔고,

1일 최대 4시간 30분의 순공시간은 폭발적으로 타올랐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공인노무사 시험에 다행히 합격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긁힘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긁힌 자국을 하나씩 만지며 살아왔다. 그것은 흉터가 아니라 나의 출발선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대전 신탄진의 18평 빌라에서 하청업체 반도체 검시원이었던 엄마와

일용직 용접공인 아빠와 함께 살던 가난했던 시절의 20대 대학생이,


긁힘을 통해 공인노무사가 되어 과거의 나였던 이들과 만나고,

여의도 국회로 와 보좌관으로 법을 바꾸고 문제를 개선하려 했던 힘을 얻었던,

30대 후반, 바로 지금의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긁힘은 고통이었고, 연료였으며, 나의 방향이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회사명은 실제와 다르게 각색되었으며, 특정 개인이나 법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에 언급된 특정 상황이나 대화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일부는 작가의 기억과 해석, 창작이 반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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