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변증법

우리의 시간은 선이었을까, 점이었을까

by 유노유보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를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변증법은 그 자체가 이미 강렬한 시간적 사건이다. 변증법적 운동은 시간 지평들의 복합적 착종, 즉 이미 일어난 것의 아직 일어나지 않음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각각의 현재 속에 함축되어 현존하는 것을 해방시키고, 이로써 현재를 운동 속에 던져 놓는다. 변증법적 추동력은 이미 일어난 것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과거와 미래 사이의 시간적 긴장에서 생겨난다. 변증법적 과정 속에서 현재는 긴장이 넘친다..."

였다. "변증법적 운동은 시간지평들의 복합적 착종, 즉 이미 일어난 것의 아직 일어나지 않음"!!!

참으로 명문 아닌가. 누군가를 만나고 이별하는 것 조차도, 어느 정도는 예정되어 있는 '선'이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변증법이란, 사실은 사랑하는 연인을 갈구하는 20대를 위한 시간 개념이 아닌가. 연애란, 사랑이라는 것은 자고로 우연이라는 소재로 만든 운명이라는 도료로 만들어나가는 법이다. "놀라운 우연!!" "만약 ~~하지 않았다면" 등의 가정을 통해 '우리들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는 것. 이 가정을 통해 우리들의 변증법은 운명에 대한 어떤 확신을 거친다. 사실 이런 것은 자신들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재산이고 언제 꺼내봐도 질리지 않는 그러한 것 아닌가. 물론, 변증법은 그들의 만남을 예정한데 이어 이별 또한 예정하고 있다. 일어나지 않은 것은 곧 이미 일어난 것이다.

물론, 만남도, 이별도 우리는 함부로 예단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다.

이 구절의 바로 전 구절, '시간이 붕괴하여 그저 점점이 분산된 현재의 연쇄로 전락한다면, 시간이 지닌 모든 변증법적 긴장도 소멸할 것이다.' 라는 말처럼, 우리들의 연애가 사실 '선이 아닌 점'이 되어 버릴때, 되기 시작할 때 바로 연애는 붕괴하는 것 아닐까. 만남 이후 '이별을 준비하는 시기'는 사실 계속될 수록 좋다. "어떤 이별"을 할 것인가? 에 대해 준비하고, 좋은 이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사실 그 둘만의 "선"을 종결하려는 힘은 끝간데 없이 이어질 것이다. 선을 끝맺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선을 그어야만 한다. 우리들의 종결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러나 '이별'따위 생각하지 못하는 시기가 온다면. - 우리는 그것을 '권태'라고 표현한다. - 우리들의 선, 우리들만의 시간이 붕괴되어 점점이 분산된 "현재의 연쇄"가 된다면, 그때는 그 관계의 선이 붕괴되는 것 아닐까.

리오타르가 "위대한 시대는 죽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어떤 '선'으로 함께 나아가는 '우리들의 시간'이 붕괴하여 점점이 분산되고 파괴된다면, 결국 그것이 바로 "위대한 시대의 죽음", 포스트모던일 것이다. 어쩌면 연애라는 것은 "너와 나의 변증법"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의 길이로, 어떤 이별이 예정되어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는. 복합적인 착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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