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 버저비터, 저는 축하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부동산 대책, 걷어차인 사다리 앞에 선 안온함과 죄책감 그 어딘가에서

by 유노유보

나는 올해 2월에 "수억 빚내 집을 샀다."

천운이었다.

우리 아들이 올해 4월에 만 2세 생일을 지났다.

무주택자 2030 신혼부부라면 모두가 이 문장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 뜻은 올해 4월이면 최대 한도 5억의 신생아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올해 4월에 끝난단 뜻이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구축 아파트를 구매했다. 생애최초 주택구입이었기에 ltv80까지 인정받았다. 4억 7천만원의 정책대출은 대전 신탄진에 구축 18평 아파트(2007년에 7500만원에 매입했는데 지금도 실거래가 1억이다. 이게 지방 아파트 시장의 현실이다.)에 살았던 내가 드디어 서울 양천구에 전용 84제곱미터의 땅에 등기를 칠 수 있게 해주었다.


소득은 먹고살만했지만 나나 와이프나 각자 마이너스 통장 한도 8천만원씩 있는 게 재산 자랑의 전부였다.

내 아내는 가양동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살다가 등촌동의 임대주공아파트에 오랫동안 살았다.

그녀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어렸을 때 가끔 혼자 자야할 때는 1층이라서 누가 들어올까봐 목검 휘두르면서 검도 연습하고 잤어."


그녀는 처제 둘과 함께 세자매와 아버님, 어머님과 함께 5식구가 같이 살았다. 그 동네는 (전용이 아니라 공급면적이다) 아이들끼리 서로 우리 집은 17평이다, 니네 집은 11평이다 하며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휴거", "엘사"등 멸칭은 발생하지 않은 동네였다고 한다.


몇 년전, 전용 44제곱미터 행복주택을 다녀온 당시 대통령이 "아이 둘도 가능하죠"라고 말했을 때,

내 뇌리를 강타한 그녀의 말이 있었다.


"그게 그 정도 평수에서 사는 게 가능은 하지. 근데 그게 살아지는 거지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살아진다고 해서 그렇게 살고 싶은 건 아니잖아."


나의 아내는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 다행히 변호사가 되었고,

나도 지방에서 살지 않고 서울에서 계속 살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대기업에 취직했고,

공인노무사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의 직장생활과 라이선스를 통해 나름의 "신용"을 얻어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1억이 조금 넘는 전세보증금을 모을 수 있었다. 이것도 그나마 바로 모은 것이 아니었다. 전세대출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에 우리 돈으로 이만큼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강서구의 폭증하는 전세사기는 우리 둘의 마음을 늘 불안하게 했다.

70대 할머니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법을 이야기하면 그런 무서운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나이 많은 집주인들은 늘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이 있었고, 그때마다 우린 피곤해야 했다.

우리 집이 빠지거나 다른 집 전세보증금이 들어오면 그때 줄테니 얼마간이라도 더 머무르면 안되냐는 둥, 2년마다 반복되는 그런 일들.


막상 임대차 3법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겠다고 하자 집주인 아들이 6개월 뒤에 우리집에 와서 살아야 한다는 말도 들어봤다. 이사하고 나서 6개월 뒤 네이버 부동산 앱을 틀고 혹시나해서 봤더니 1억 6천이었던 전세집을 3억에 내놨다. 그 노부부는 욕심이 많아서 몇달동안 거기 계약을 못해서 고소하다 정도의 감상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10년 넘게 그런 일이 반복되면, 어떻게든 집을 사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더구나 아이까지 있으니 좀 오래오래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사면 좋겠다.

그게 우리가 "수억 빚내서 집 산" 이유의 전부였다.


올해 2월에 공동명의로 집을 사고 3월에 인테리어 마치고 들어와서 잠든 집에서,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걱정없는 안온함을 느꼈다.

살아지는 집이 아니라 살고싶은 집에서의 첫날 밤이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소득이라도 적당히 벌 수 있게 됐어도 자산은 없는 사람들,

즉 우리 나이 또래 2030 젊은 사람들에게,

"대출"이란 것은 어쨌든 주거 사다리의 역할, 주거복지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왔다.


6월 27일을 기점으로 나에게 이런 소리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들내미가 복덩이네~"

"너무 잘 됐다, 너무 부럽다."

"진짜 앞으로 집 못 살뻔 했네!"


신생아 대출의 한도는 4억이 되었다.

DTI 60에 LTV 80까지 가능했던 것들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 내 주변 친구들이 내가 뭐하고 살았는지 알고 있음에도 내게 민주당과 정부에 대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야 이거 완전 부동산 계엄령 아니냐? 이게 계엄이지 무슨 자고 일어났더니 집도 못 사게 해놨네?"

"거주이전의 자유가 사라졌어. 이거 완전 북한 아니냐?"

"야 그래도 넌 좋겠다. 축하해. 부럽다. 인서울 아파트 진짜 버저비터였네."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느꼈으니까.

나는 "인서울 버저비터", "사다리 걷어차이기전에 진짜 집 잘 샀네."란 소릴 들을 때마다

너무 괴롭고 부끄러웠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

제2항은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라고 규정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5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한다.

제3항은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라고 적시되어있다.


우리는 국가가 2030 신혼부부에게 그들이 살만한 집, 살고 싶은 집을 제때 공급해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 측면에서 나는 정책대출은 국가가 국민의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노력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쾌적한 집을 공급해줄 수 없다면 우리가 그런 집에 살기라도 할 수 있게 최소한 기회라도 줘야할 것 아닌가. 그게 대출이었다. 무주택자들에게 대출은 그런 것이다.


수도권사는 2030 신혼부부에게 다 한번씩 물어나 봤으면 좋겠다.

LTV 40으로 살 수 있는 집은 "살고 싶은 집"이냐고.


투기하려고 한 것도, 투자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집을 산 것은 그저 집주인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그만 열받고 그만 화내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내 아내와 아들과 안온하게 살고 싶었던 그저 그 이유 뿐이었다.

그걸 위해 수억 빚내 집 산 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제는 드디어 6.27대책에도 끄덕없던(?) 우리 아파트 가격도 매물 시세가 오르기 시작하더라.

여기서 오래오래 살거고 어차피 재산세만 오를텐데 이걸 좋아해야 되는 건지...

이번 대책을 보면서, 정부의 시장개입 방식에 대해 아무래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슨무슨 시장을 만들겠다는 다짐.

그런 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불가능하다.


국가정책이 시장실패를 "관리"할 순 있다. 그런데 어디까지를 시장실패로 볼 것인가? 그리고, 국가의 시장실패 관리는 전지전능하고 절대적일 것인가, 아니면 가계/기업/정부라는 3주체 중의 하나, 그저 하나의 주체로서 참여하는 "시장 참여자"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관리하는 것인가? 난 후자의 자세를 갖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다시 실패할 수 있다고 본다.


갭투자하고 대출받아 부동산 투기하는 2030세대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생태계에서 모기가 피빠는 게 싫다고 DDT를 뿌리진 않는다. 때려잡는다고 때려잡아지면 그게 자본주의 시장이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건 생태계에서 모기를 없앨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특정 정치인, 정치세력에 대한 이야길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사람들 곁에 많이 있는 어떤 세대들의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빚내서 집 사는 게 투기인가.

대다수의 2030 우리세대는 '살아지는' 삶에서 벗어나 '살고싶은' 삶을 꾸리기 위해 절박하게 몸부림쳤을 뿐이다. 이 당연한 바람이 왜 누군가에게는 버저비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의 꿈이 되어야 하는가.


빚에는 죄가 없다. 빚은 그저 현상에 대한 부산물일 뿐이다.

모르겠다.

내가 지금 바랄 수 있는 건

지금의 내가 내 주변에 부끄럽지 않은 부동산 공급대책이 좀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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