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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Oct 18. 2023

지르텍 있었다면, 축구는 없다

수요일은 5교시 마친 후 급식소에 간다. 오후 시간 학교 안 누리교실 "동화 읽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동화책 1쪽씩 돌아가며 읽고 인상 깊은 문장 밑줄을 치고 소감 발표를 한다. 완독하면 비경쟁 독서토론도 해볼 참이다. 나름의 강의 중인데 잠이 쏟아졌다.


급식소에 갈 때 약을 한 봉지 들고 갔었다. 4/9라고 표시되어 있었고 점심 약이라고 쓰여 있었다. 분명 주머니에 넣고 갔다. 급식소에서 물을 마시지 않았다. 교실에 올라와서도 약봉지를 뜯은 기억이 없다. 약봉지는 보이지 않았다. 점심 약 건너뛰어야 하나. 아니면 내가 약 먹었다는 사실을 기억 못 하는 건가. 5/9라고 되어 있는 점심 약음 뜯어서 물과 함께 넘겼다. 4/9라고 쓰인 약봉지는 어딘가에 떨어뜨렸다고 믿기로 했다. 잠이 오기 시작했다. 약봉지 졸음 주의, 기계조작 금지라고 적혀 있다.


학생들과의 동화 읽기 시간. 졸음 이겨냈다. 아이들 밑줄 친 문장도 듣고 내가 오늘 찾은 122쪽의 문장을 읽어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 본 사람도 사람으로 만났을 땐 다 착하게 사귈 수 있어. 그러나 너에겐 좀 어려운 말이지만, 신분이나 지위나 이득을 생각해서 만나면 나쁘게 된단다."

몽실언니와 난남이 불쌍하다는 소감을 듣고 좀 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내 상태가 멍해져서 추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어젯밤 11시부터 두피에 손이 갔다. 벅벅 긁었다. 내가 머리를 안 감아서 가려운가 생각했다. 목도 긁게 되고 얼굴도 화끈거렸다. 귀도 긁고, 눈도 따가웠다. 눈물도 흐른다. 허리도, 종아리도, 발가락까지 가려웠다. 찬물로 씻었다. 진정되는가 싶더니 수건이 몸에 데일 때마다 따끔거렸다. 긁은 곳에 상처가 난 모양이다. 몸이 가렵지 않는 게 복이구나 생각했다. 손톱이 짧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상처가 났을 터다. 얼굴도 벌갰다. 미치겠다. 할 일을 해야 하니 서평용, 선물용 신간 도서를 포장했다. 겉면에 네임펜으로 이름 써서 봉투를 구분하게 만들었다. 엑셀 파일에 수신자 주소를 입력하여 남편 카톡으로 보냈다. 택배 예약을 매번 도와준다.


1시가 넘었다. 여전히 손이 온몸을 긁고 있다. 몸은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는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침에 가려워서 알람을 듣기 전에 일어났다. 가급적 오후 시간에 조퇴하여 병원을 가볼 참이었다. 그런데 4년 전 교통지도를 하면서 갑자기 목이 빨개져서 급하게 병원 다녀온 일이 생각났다. 노트북을 열어 원격 보안 접속을 했다. 병 지각 복무를 교감에게 올렸다. 시간표 확인 후 체육 전담 선생님에게 1교시 우리 반을 지켜줄 것을 부탁했다. 2교시는 4교시 체육과 시간표를 바꾼 후 1,2교시 연속으로 아이들을 맡아달라고 카톡으로 부탁했다. 옆 반 선생님에게 아침 시간 안전 지도를 부탁한 후 교무실에 복무 결재를 위해 전화를 걸었다.


아침 8시 40분에 병원을 찾았다. 과자 때문인 것 같다고 했더니 내과에 접수해 주었다. 집에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병원이 있다. 병원, 집, 학교를 각각 이으면 직각 삼각형과 비슷할 거다. 종합병원은 환자가 많을 거라 생각하여 시간 넉넉하게 10시 30분까지 병 지각 신청했다.

"열이 있네요." 나도 모르는 열이 잡히다니. 귓구멍이 가려워서 그런가 생각했다. 의사가 과자 등 먹는 것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주사 주세요." 의사가 두 대 처방 내리겠다고 했다. 수납, 주사, 약 처방까지 끝나니 9시 10분 정도 되었다.


우리 반 1교시는 시작했을 테고, 약국에서 아침 약부터 먹었다. 느린 발걸음으로 학교에 갔다. 9시 20분이다. 체육 선생님이 우리 반 결석생 두 명 명단을 보내주었다. 꼼꼼하게 챙겨주셔서 감사했다. 결보강을 체육 선생님으로 해두었지만 어서 가서 선생님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 수업 없는 1교시를 우리 반을 위해 사용했으니 미안했다. 교무실에 들러 교감선생님을 만났다. "10시 반에 오신다더니. 일찍 오셨네요. 괜찮습니까." 환자가 없어서 일찍 진료받았다고 했고 교실에 갔더니 아이들이 없다. 체육 선생님이 운동장에 데리고 간 모양이었다.


연구실 컴퓨터 보안 점검하는 날이라 소소한 업무 챙기고 쉬는 시간 맞춰서 교실에 앉아 있었더니 물 마시러 온 서너 명 학생들이 나에게 인사한다. 목소리가 고음이다.

"선생님 우리 두 시간이나 체육 해요. 1교시엔 축구했어요."

"혹시 다친 애들은 없니?"  

옆 반 아이들은 우리 반 체육을 두 시간이나 한다고 좋겠다고 말하며 지나갔다.

교실 아이들이 담임이 지각해서 신나하는 모습 보니 안심이다. 선생님 아파서 생각지도 못한 체육시간을 벌었으니.


동화 읽던 누리교실 아이들을 보낸 후 글쓰기 공책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몸을 의자에 기대어 눈부터 감았다. 잠시 잤는지 꽉 지 낀 손자국이 빨갛다. 정신 차려야 한다. 할 일이 많다. 잠이 온다. 잠이. 잠이 온다는 건 가려움증을 참을 정도는 되었다는 뜻인가 보다. 퇴근 시간에 옆 반 선생님이 우리 반에 들렀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약을 두 봉지 먹었나 보네. 상비약을 집에 사두면 좋아요."

"상비야 이름 뭐예요?"

"지르"


아마 우리 집에 지르있었면 우리 반 1교시 축구는 없다.




10월 24일 (화) 오전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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