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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May 14. 2024

부처님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2024년을 시작할 때 대구교대에서 학사달력을 받았습니다. 5월 15일 앗싸 빨간 날이다 생각하며 기분 좋아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 탄신일이 스승의 날이 되었지요. 3월 처음 만나 두 달 조금 넘은 상황입니다. 스승의 날이 평일이었다면 종일 마음이 불편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 해준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꼬물이 같은 녀석들은 스승의 날 축하한다며 손 편지를 써 줄 테니까요. 빨간 날이라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올해는 1학년을 맡았기에 앗싸! 외쳤지요. 편지 쓰기는 아직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을 위한 쓰는 시간을 가지기도 애매했지요. 올해는 스승의 날이 아니라 부처님 오신 날로만 기억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제는 행정실에서 상품권 3만 원을 나누어 주면서 스승의 날 축하한다는 쪽지를 주었습니다. 교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학교 다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급식소에서 조각 케이크를 주더군요. 선생님 감사한다는 문구에 제 마음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분명 스승의 날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오전에 조퇴를 신청해 두었습니다. 1학년을 해서 좋은 점 하나가 조퇴 시간을 당길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조퇴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스승의 날 맞이하여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지요. 놀고 있는 피아노를 쳐 보고자 일찍 집에 왔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글빛백작 정규과정 강의안을 점검하고 싶었는데 학교에서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조퇴해서 집 노트북으로 피피티를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피아노도 쳐 보았습니다. 실력은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혼자 거실을 차지하면서 놀 수 있다는 건 기회였지요. 이사할 때 리폼했던 하얀 피아노 뚜껑을 열어서 악보 보며 코드를 잡아보았습니다. 피아노 주변에 쌓인 먼지가 자꾸 눈에 거슬리긴 합니다만, 평소 저는 방에만 있는 스타일이라 오래간만에 거실을 누벼보았습니다.


그리고 피피티를 열어 오늘 정규과정 강의할 순서를 살펴보고 리허설을 하는데 폰에 모르는 번호가 뜹니다. 전화를 받았더니 2008년 제자였습니다. 퇴근길에 전화한다고 하면서 선생님 어디냐고 묻네요. 조퇴해서 집에 왔다고 했습니다. 스승의 날이라 전화드린다고 합니다. 제자는 초등 교사입니다. 본인 투넘버로 전화를 걸었다고 하네요. 저는 순간 당황했지요. 제 폰에 제자 번호가 지워졌나 하고요. 어쨌든 2008년 스물아홉 살 때 가르친 녀석이 동료 교사가 되어 학교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잘해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이 혼냈던 교사였습니다. 해마다 기억해 준 제자를 보면서 나는 어떤 스승이자 학생이 되어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스승으로서 저는 본보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라이팅 코치입니다. 읽고 쓰는 모습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스승과 코치가 연결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평생 글 친구 아끼는 고마워하면서 쓰는 삶 살아가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초등 1학년 가르치고 있는데요, 세월은 빠르잖아요. 커서 어른 되었을 때 저를 까먹는 것은 상관없지만 나쁜 기억은 없기를 바라면서 아이들 예뻐하며 오늘을 보냈습니다. 배 아프다는 아이 마음도 들어주고, 종이접기 칭찬하고요, 밥 잘 먹었다고 엄지 척도 보여주었습니다. 저에게 안기는 녀석은 손으로 토닥토닥해주고요, 속삭이는 목소리로 '사랑해'라고 말해준 친구에겐 제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표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적어도 안 좋은 선생님, 불친절한 교사는 되지 말자는 게 저의 삶 목표입니다.


학생으로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묵묵히 제가 할 일을 하는 겁니다. 강의하고 글 쓰며 좋은 성과 보이는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행사가 있을 때 함께 하며 선후배 작가님들과 좋은 관계 유지하는 게 선생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선생님이 되어보니까 우리 선생님 마음 알 것 같습니다. 성실하게 행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더라고요.


태권도 학원에 다녀온 희윤이가 색종이 한 장을 줍니다. 엄마 반에 학생이 준거라고 하면서요. 학구에 살고 있으니 학원에서 저희 반 학생과 희윤이는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 두 달 동안 저희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OOO 올림"

학부모께서 알림장 관련 내용을 문의하시면서 카톡에 한 문장 남기셨습니다.

"스승의 은혜 감사드러요.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두 달 되었는데 이렇게 부처님 대신 저를 챙겨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 아이들 더 잘 보듬어 달라는 뜻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부족한 제가 선생님이어서 감사합니다.  제 삶 방향이 바뀌도록 저를 4년째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선생님 앞에서 지질한 모습도 보여드리곤 하는데요. 그럼에도 늘 조언과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앞이라 부끄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글 안 써질 때 못쓰겠다고 한 번 대놓고 말해본 후부터는 오히려 마음 편안합니다. 저보다도 우리 선생님이 스승의 날 기분 좋으셨으면 합니다.


우리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https://blog.naver.com/giantbaekjak/223438319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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