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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Jun 23. 2024

첫 강의 덕분에

2024년 6월 18일 현재 근무하는 학교 교사 대상으로 글쓰기, 책 쓰기 특강을 했다. 1시간 주어졌고 58분 분량으로 강의를 마쳤다.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인생 돌아보는 강의였다고 소식 들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교장실 자주 들르는 선생님들이 전달해 준 모양이었다.

다른 강의도 정성을 다해야겠지만 직장 동료가 할애한 1시간을 알차게 채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했고 강의했다. 코로나 이후 동료들끼리 회식을 하거나 사담을 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개인 집안 이야기 잘 하지 않게 되었다. 강의 중에도 내 생활을 어느 정도까지 말해줘야 하나 궁리했다. 나의 직장이지만 막내가 다니는 학교였고 확실치 않지만 교직원 중에는 나의 남편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쉽지 않은 무대?에서 나의 일상을 꺼내야 했다. 

저자 특강 자리도 아니다. 글과 책을 쓰자고 독려할 수 있을 만큼만 나의 글쓰기 전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셋째 아기 때 나의 표정, 4년간 세 자매 엄마로 살다가 줌 활용 책쓰기 강의 듣기 시작한 과정을 소개했다. 바로 책 쓰자로 하는 것보다는 내가 책을 쓰니 좋더라고 내 이야기 꺼내길 잘한 것 같았다. 

우리 학교 동료 대상 강의가 나의 첫 강의라면 하겠다고 나섰을까? 다른 사람이 시킨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 중에는 글쓰기, 책쓰기에 관해서, 처음이자 마지막 들을 기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리허설할 때마다 피피티 순서와 예문을 바꾸었다. 동기부여, 전달력, 마지막엔 나도 써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주고 싶었다. 

"2019년에 부장님이 저한테 교사도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나요."

"1시간 금방 흘렀어요."

2013년 학교에서 독서교육 업무를 맡고 있었다. 학부모 연수 담당 선생님이 학부모 대상 강의할 강사가 필요한데 섭외를 못했다는 얘길 하였다. 

"제가 해볼까요? 북 아트 연수."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선생님은 오전에 가능하겠냐고, 교과 전담으로 시간표 바꾼 후 해주라고 했다. 재료야 학교에 있으니 준비하면 된다. 제한된 80분 시간 동안 북 아트에 대해 실기형으로 강의하려면 사전에 종이를 잘라두고 1인분씩 비닐 작업을 해두는 게 낫다. 강의하는 시간보다 재료 준비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것 같았다. 학생 대상 북 아트 강의를 여름방학 때 해본 적 있어서인지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학부모 앞에서 해보는 건 처음이라 콩닥거렸다. 말로만 할 수도 없고, 시범을 보인다고 해도 뒤에 앉는 학부모는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피피티가 필요했다. 순서 사진은 일일이 찍어서 넣었다. 

세 가지를 준비했었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매직북과 옛 책 만들기는 들어간 것 같다. 나에겐 익숙한 만들기였는데 부모님은 처음 해보니 생각보다 한 가지 알려줄 때 시간이 길어졌다. 

가정에서도 아이들과 한 번 더 해보시라고 권했다. 엄마들이 입장할 때보다는 표정이 밝아졌다. 이 중에는 듣고 싶지 않았지만 학부모 임원이나 사서 도우미라서 온 경우도 있었을 터다. 이들에게 들을 만한 강의를 했구나 싶어서 마음이 놓였다. 본교 교사가 얼굴을 처음 보는 학부모에게 강의한다는 사실은 용기가 필요했다. 무사히 마쳤다. 이후 내 귀엔 직접 들리지 않았지만 도서관 갈 때마다, 독서교육 행사 추진할 때마다 사서 도우미 엄마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협조를 잘해주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처음 학부모 연수를 해본 터라 준비과정과 강의 진행에 쏟은 에너지가 컸다. 2016년 김해 모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 나에게 학부모 대상 연수를 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강의 제목은 '학부모와 소통하는 학급 운영'이었는데 강의 주제보다는 준비 과정과 출강 모든 절차가 번거롭게 느껴졌었다. 임신 중, 원거리라는 이유로 거절하기엔 합당해 보였다.

내 이야기를 들은 후배 교사는, 그때 강의 나갔으면 나의 강사 생활이 더 빨리 당겨지지 않았을까 예상하는 말도 해주었다.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거절의 아쉬움이 다음 강의를 기획하거나 수락할 때 도움 된 것 같다. 무조건 강의한다고 한 후 책임지는 배수진을 배웠다.

현재 나는 교사이자 라이팅 코치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평생회원 작가님 사는 곳에 대면 강의를 기획했다. 서울, 대전, 대구, 광주, 창원 다섯 곳이다. 장소도 섭외했고 블로그에 공지했다. 평생회원과 밥 먹고 차 마시는 것도 당연히 해야겠지만 김해에서 멀리 갔는데 서로에게 유익하면 좋겠다 싶었다. 책쓰기 무료 특강인데 대면이다. 나에겐 또 다른 도전이다. 강의 안도 신경 써야겠지만 이동이 긴 만큼 건강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이어지는 강의는 과거에 나의 첫 강의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어설픈 모습도 있고, 강의를 거절한 일도 있으며, 괜찮다며 전달력 좋다고 칭찬들은 날도 있다.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좋은 면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껏 강의를 이어오고 있다.

내가 강의하기 전에는 강사를 평가했다. 경험도 없을 때였는데 교사로 교단에 아이들 매일 보는 경험만으로 강사들이 이 부분이 부족하다 저 부분은 연습이 되지 않았다며 마음속으로 지적한 적 많았다. 이제는 지적하지 않는다. 강의마다 장점이 있고 강사마다 매력이 있다. 틀린 강의는 없는 거다. 나와 강의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인정한다. 첫 강의보다 지금이 더 나으면 된다. 지금 보다 내일 강의가 더 전달력이 좋으면 된다. 라이팅 코치로서의 전달력 덕분에 이들이 한 줄이라도 더 쓰면 강사로서 보람이다.

나에게 강의란, 변화다. 의무로 들어야 하는 강의에서 강사 백란현을 만나 글쓰기 시작점을 찍도록 만드는 것. 내가 추구하는 목표다. 강의 영역은 정해졌으니 앞으로 직진하는 일만 남았다. 

글쓰기, 책 쓰기도 마찬가지다. 첫 책을 기획하고 한 줄 시작하면 된다. 한 줄이 두 줄되고 두 줄이 한 꼭지가 된다. 한 권의 초고를 채운 후 처음부터 읽어보면 발견하는 점이 하나 있다. 1장과 2장은 고칠 게 많지만 뒤로 갈수록 문장이 그나마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점이다. 초고를 채우는 과정에서 작가의 문장도, 하고 싶은 말도 정리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수강생들에게 자주 말한다. 자신의 원고에 대해 절망하지 말라고. 그리고 시작하라고. 30점짜리 공저 책을 내고, 40점짜리 전자책도 쓰고, 50점짜리 개인 저서를 내자고. 

다른 사람 글처럼 수준 있게 쓰는 걸 바라지 말고 첫 책 보다 나은 글을 쓰자는 말. 나와 수강생에게 필요한 조언이다. 

완벽하게 시작하려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 나는 한 마디의 강의도 하지 못할 거다.  출간도 생각 못 했겠지. 첫 강의 덕분에 지금도 강의한다. 처음은 서툴다. 시작이 우선이다. 

https://blog.naver.com/giantbaekjak/223478284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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