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란현 작가 Sep 09. 2021

기승전 책

기승전 책

“학교 예산으로 학급문고 넣고 싶어요.”

“선생님! 학급문고 채울 만큼은 안 되지만 그림책 1권 보내드릴게요.”


비대면 시대 처음으로 <북수다 비룡소 여름독서자율연수>에 참여했다. 신규 2년 차 학교도서관 업무를 맡으면서 도서관 일을 배우기 위해 그림책 소모임에 들어갔다. 1년 동안 김해외동초 도서관에서 매주 나누었던 그림책 목록 덕분에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구입하는 교사가 되었다. 알게 된 책은 소장하고 싶고, 소장한 책은 교실에 가져가 읽어주고 싶었다. 담임을 할 때에도 교과전담을 할 때에도 그림책은 학급의 아이들과 소통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림책 읽어주는 기법도 몰랐고 독후활동을 어떻게 이끌지도 몰랐다. 그냥 읽어주기만 했다. 아이들의 눈빛과 감탄 같은 분위기에 읽어주는 맛을 느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나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된다. 아이들 덕분에 나도 책을 읽게 된다.


교실을 옮기는 학년 말이 되면 트럭을 불러야 하나 싶을 정도로 책 옮기기 노동을 해야 했다. 원하는 학년이 배정되지 않으면 책 구성이 학년과 맡지 않아서 집으로 갖다 두어야 할 경우도 있었다. 같은 학년을 연속으로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고학년에서 저학년, 저학년에서 고학년. 매마다 연속성 없게 학년을 맡아서 독서교육 계획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그림책은 괜찮았다. 동화책은 집에 갖다두어야했지만 그림책은 늘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교실 네 개의 면에 전부 그림책으로 꽂아두고 싶을 정도다. 아이들이 책을 만져서 찢어지거나 제본 상태가 틀어지기도 한다.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시 구입했다. 책에는 아까워할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을 모으지 못한 이유는 책 때문인 듯하다.


사회 수업을 하다가 부산 중고서점에 다녀온 이야기를 꺼냈더니 김해에도 중고서점이 생겼다고 했다. 이런 반가운 소식이! 김해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긴 후 책값이 줄어둘 줄 줄 알았는데 더 많이 구입하게 된다. 지금은 책값 2만 원만 넘으면 전국 중고서점에서 무료로 배송을 해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수역 중고서점에서 책이 도착했다.


“저에게 그림책이란 어른이 되어 처음 독서의 재미를 알게 한 책입니다.”

북큐레이터협회에서 초등교사 대상 그림책 큐레이터 2급 과정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첫날 수업에서 강사님이 그림책이란 질문을 던지셨다. 독서의 재미를 알게 한 책이다. 그림책 큐레이터를 신청한 이유는 김해독서교육지원단 활동 때문이었다. 김해독서교육지원단을 모집한다는 공문을 보고 김해교육지원청에 신청서를 보냈다. 신청서에 독서교육 7년, 도서관 운영 5년, 독서교육부장 1년을 기록했다. 독서교육지원단으로 무슨 활동을 하게 될지는 자세히 몰랐다. 15년 이상 교실에서 독서교육을 중심으로 학급 운영을 해온 것에 대한 공식적인 이력을 갖고 싶었을 뿐이다. 지원단 첫 회의에서 신규 2년 차 때 김해 그림책 소모임에서 함께 공부한 선배 선생님을 만났다. 각자 근무하는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해온 것을 알고 있다.

“작년에 학급 독서동아리 지원에 백쌤 있더라. 작년 예산 줄 때 평소에 독서교육 쪽으로 열심히 하고 있는 선생님들한테 예산 줬었어.”

“아 그래요? 선생님 심사하셨군요. 작년에 애들 책 한 권씩 교육지원청 돈으로 사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이렇게 인연이 되어 함께 독서교육지원단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독서교육지원단원이 컨설팅 장학 명단으로 들어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배움 중심 수업 지원단 명단에 김해에서 수업으로 유명한 선생님 이름이 있었다.

‘이 분은 좋겠다. 매번 수업 연구하시고 강사로도 인기 많던데.’

맨 마지막 페이지에 독서교육지원단 백란현 이름도 있지 않은가? 큰 일 났다. 독서교육지원단 타이틀 가지고자 신청한 활동인데 다른 학교에서 컨설팅해달라고 연락 오면 밑천 다 드러나겠다 싶었다.

공문이 김해 전 학교로 뿌려진지 며칠 뒤, 작년에 근무한 학교에서 전화 왔다. 3, 4학년 대상 줌으로 독서교육 강의를 해달라고 했다. 2시간. 줌으로 교사 대상 강의를 해본 적도 없었지만 3, 4학년 교사 대상이라 난감했다. 거절할 수는 없었다. 정해진 스케줄이 없었기 때문이다. 3주간 준비했다. PPT를 만들고 그림책과 동화책을 강의용으로 캡처했다. 줌에 혼자 들어가 강의 연습도 했다. 강의를 할 때 바로 써먹을 수 있게 해 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록도서와 원작 비교를 하려니 소장도서가 없었다. 중고서점을 찾아 주문하고 중고서점에 책이 없을 경우 새 책을 샀다. 3주간 준비한 후 강의 결과 좋게 봐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 선생님들께 첫 강의에 대한 기념으로 내가 좋아하는 전대진 작가 책을 선물했다. 강사료와 원고비도 조금 받았다. 책에 투자한 값에 비해선 적었지만 강사로 처음 받은 돈이었다. 강의 후 뿌듯함은 강의해본 사람만 안다. 기승전 책의 삶을 살고 있는 내가 김해 독서교육을 넘어 경남독서교육을 위한, 평생 독자를 위한 책 전도사가 되고 싶다. 나에게는 16년간 독서 육아한 경험, 17년간 책 읽어주는 교사 경험이 유일한 강사 자격증이다. 지금부터 강사의 길 시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학이 끝나기 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