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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Apr 16. 2022

기복 없이 꾸준히 가꿔온 삶의 태도 덕분에

체온계를 찾는다. 희진이가 스스로 열을 잰다.

"엄마 나 38.5야."

책쓰기 수업이 끝난 직후였다. 일어나서 해열제 12.5cc를 먹였다. 그리고 진단키트를 꺼내 남편에게 검사해 보라고 했다. 막내 희윤이 밥을 챙긴 후 운전학원에 갈 준비를 한다.

미세한 두 줄이 나왔다.

"당신이 희진이 데리고 집 앞 가정의학과 다녀오세요. 나는 지금 셔틀 놓쳐서 택시 타고 운전학원 다녀올게. 희수야 희윤이 옆에 좀 있어. 아빠 오실 때까지"

큰딸 희수가 집에 있어서 희윤이를 부탁했다. 운전학원 도로주행을 갑자기 펑크 낼 수 없다. 내 일정을 그대로 진행한다.

도로주행 시작하기 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양성"이란다. 학원 연습용 차에 오르기 전에 94마스크를 단단히 올려 코를 가린다. 전화기와 윗옷을 뒷좌석에 던져놓고 강사의 말에 집중한다. 3회째 주행연습이다. 4월 한 달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도로주행 10시간을 완료하려고 한다. 토요일 오전 수업은 2월부터 일정을 잡아두었다. 3월 초부터 연습하려 했으나 토요일은 대기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주행연습을 마친 후 셔틀 차를 타고 동네까지 왔다. 희진이가 좋아하는 두꺼운 와플을 3개 포장했다. 포장 대기 시간이 길었다. 인근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네 가지 맛을 포장했다. 혹시 목이 아프면 아이스크림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던 게 생각났다.

들어오는 길에 벼루고 별렀던 신발가게가서 내 운동화도 하나 샀다. 지나가는 동선인데 잘 들려지지 않았다. 애가 아픈데 내 운동화 살 정신도 있네 하는 마음도 들었다.


집에 와보니 희진이는 열이 여전히 있고 방에 마스크를 쓰고 있다. 친구와 통화하느라 바쁜 눈치다. 희진이 양성 확인서를 읽어보았다. 담임선생님께 지금 연락해야 할지 월요일 아침에 연락해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되었다. 카톡을 보냈다.

"선생님 희진이 양성입니다."

"헐... 어제까진 괜찮았는데. 어울리는 친구들도 지금은 건강한데."

"어쨌든 희진이가 있어야 재미가 있는데 일주일 어찌 기다리나..."

선배님이자 담임선생님의 카톡에 웃음이 나왔다. 어제 발표 자료 PPT를 USB에 복사해간다던 녀석이 '바로 가기'를 복사해가버려서 발표를 못했다는 말을 희진이에게 들었기에. 나도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마음을 간직만 하지 말고 학부모에게 표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도로주행 마친 후에는 토요일 그림책 모임을 할 계획이었다. 희윤이 또래 3명이 무인카페에 모여 서로 그림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취소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희진이 코로나 확진 얘기를 전하면서 보호자 지정 부분에 대해 물었다. 함께 그림책 모임 하는 희윤이 친구도 얼마 전 확진이었기에 정보가 밝다.

"만약 하라고 하면 형부가 해야지?"

우리 남편은 공부방을 하기에 보호자 지정하면 일주일 치 시험 대비 회원을 봐주지 못한다. 내가 보호자 지정되어도 문제다. 출근을 못한다.


잠시 후 보건소에서 문자가 왔고 시청에서 전화 왔다. 격리 장소 확인, 건강 상태 확인 전화였다. 질문이 있냐고 해서 질문했다.

"보호자 지정해야 하나요?"

만 11세는 보호자가 원하면 지정해도 되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우리는 하지 않았다. 동거인 검사는 권고라는 말도 했다.

"여보 나 미용실 어떡하지? 벼루고 벼뤄서 예약한 건데."

"검사한 후에 음성이면 다녀오면 되지."

2시에 가정의학과에 가족 넷 접수했다. 전문가용 신속 항원 검사를 하기 위해서다. 나는 처음 코로나 검사를 해보았다. 생각보다 깊숙이 면봉을 넣어서 눈물이 찔끔했다. 집에서 가정 키트는 그만큼 깊게 해보진 않았다. 목 안에도 면봉으로 긁어댔다.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넷은 음성이다. 학교에 가야 하는 희수, 나, 희윤이는 음성확인서를 발급받았다. 미용실에서 3시간 앉아 있다가 왔고 저녁에는 그림책 수업도 줌으로 들었다.

내일 예배 가서 입어야 할 흰 블라우스 단추도 점검했다.


친구가 연락 왔다.

"애는 어때? 링거 안 맞아도 돼? 해열제 남은 거 있는데 갖다 줄게."

나는 친구에게 줄 책을 챙겨 나갔고 친구는 해열제를 나에게 건넸다.

"낮에 링거 맞게 하지."

"해열제 교차 먹였고 잘 견디고 있어. 나는 음성이라 미용실도 갔고 내일 부활절 성가 땜에 교회도 가야 해. 다른 가족은 집에 있기로 했고."

"애가 아픈데 무슨 교회를 가?"

"성가 부르는 인원이 적어서 빠지기 애매해. 애 셋 아파도 늘 그렇게 살아왔어. 음성확인서는 내일까지 유효해."

편의점 커피를 사서 손에 잡은 채 둘이 학교 운동장 여러 바퀴 돌았다. 2주 만에 해열제 덕분에 함께 걷는다.

(희진 링거까지 생각하면 난 교회를 못간다. 남편은 희진이, 나는 막내 희윤이를 봐야하기에. 두 가지 변수를 다 생각 중)

친구에게 해열제 받고 나는 새벽을 선물했다.

지금까지 가급적 변수가 없게 일정대로 살았다. 아이가 아파도 연가 한번 내지 않고 오전에는 근무하고 오후에는 조퇴하는 식이었다. 내 일에 펑크 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모성애가 없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어쩌면 기복 없이 꾸준히 가꿔온 삶의 태도 덕분에 현재 나와 가족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위로를 나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애가 아픈데 무슨" 이란 친구의 말에 나를 돌아본다. 다행히 친구의 말로 인해 내가 마음 아프지 않으니 지금까지 애 셋  키우면서도 결근 없이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희진이가 평소 잘 먹는 비타민과 유산균 가득 방에 갖다주었다. 희진이 체온도 내가 마스크 쓰고 잰다. 일정은 소화하되 희진이를 향한 엄마의 마음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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