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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Apr 24. 2022

새벽 집 앞 편의점에서 제자를 만났다.


"혹시 선생님이세요?"

동네 편의점 직원한테 들은 말이다.

한 권씩 넣은 책 포장봉투 82개를 챙겼다. 크고 작은 박스에 담았다. 인터넷으로 택배 접수한 번호와 주소록을 챙겨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안에 다섯 개의 박스를 들고 들어가기엔 무리다. 입구에 줄을 세워 내려놓았다. 편의점 안에 들어가 무인택배 단말기 화면에서 예약번호를 넣었다. 송장을 출력했다. 남편은 정신 차리고 정확하게 입력했다지만 주소와 이름 송장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붙였다. 예약한 순서대로 챙겨두었기에 송장 붙이는 일은 속도가 붙었지만 한 시간이 걸렸다.


편의점 입구에서 허리를 굽혀서 일하다 보니 허리가 펴지지 않는다. 편의점 밖에 냉장고가 있다. 편의점 직원은 내 뒤를 왔다 갔다 하며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가지고 들어간다. 야간에도 일하고 있는 직원 덕분에 아이들 잠든 시간에 일사천리로 택배를 접수할 수 있다.

다 붙였다. 하늘 보여 허리 좀 폈다. 한 시간 동안 편의점 입구에 있었다. 새벽 3시 30분에 와서 4시 30분이 지나간다. 일요일 새벽 손님들 오가는 소리를 들으니 마치 낮인 것 같았다. 책 택배를 편의점 안으로 들고 들어갔다. 카운터와 편의점 입구를 내 물건으로 막을 정도였다. 밀대로 바닥을 청소하던 직원은 하던 일을 멈추고 카운터에 섰다.

"물건이 많죠? 하루 편의점에서 얘들이 잠 자야 할 텐데 공간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고객용 송장을 직원에게 건넸다. 직원은 바코드를 하나씩 찍기 시작했다.

"혹시 선생님이세요?"

"아 네. ㅇㅊㅇ?"

직원의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2013년 우리 반 이름이다.

"아, ㅊㅇ이. 낮에는 편의점에서 본 적 없었는데. 밤에 일하나?"

"네 밤에만 일합니다."

"이제 대학생이지? 혁이 작년에 입학한다고 연락 왔으니 2학년이네? 잘 지냈나?"

"예 선생님은 어디 계세요?"

제자였던 직원이 82번 바코드를 찍는 동안 나는 블로그를 열었다. 2013년 ㅊo이 모습을 찾아서 보여주고 싶었다. 편의점 안에서 내 폰 블로그 페이지가 바로 열리지 않는다.

"사진 보여주려고 했는데. 잘 안 열린다. 선생님 번호 알제? 택배에 쌤 번호 다 적혀있다. 연락해라. 5학년 때 사진 보내줄게."

책을 좋아하던 녀석이다. 제자인 것을 알고 얼굴을 보니 마스크 쓴 모습에도 5학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저 많이 변했죠?"

"그대로다 그대로. 키만 더 컸다."

아침 6시 퇴근이라고 했다. 1시간 반이면 퇴근해서 쉬어야겠지.

잠을 못 잤다. 택배를 편의점에 갖다주고 나서 바로 누우려고 미리 씻고 편의점에 갔었다. 눈썹이 없는 선생님을 9년 만에 본 우리 제자. 제자를 본 순간 내가 화장 안 했다는 사실도 잊고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잠이 오지 않는다. 편의점을 나와 집에 오니 블로그가 바로 열린다. 몇 장을 폰에 다운로드하다가 잠이 들었다.

3시간 더 잤나 보다. 8시 30분에 일어났다. 카톡이 와 있다. 5시 넘어서 제작 보내둔 메시지였다.

"선생님 이 번호 맞으신가요?"

"청년이 되어 못 알아볼 뻔했다. 만나서 억수로 반가웠다. 선생님 번호 000다. 한 번씩 연락하자."

사진 18장과 전화번호를 보냈다.

"와 진짜 저 어렸네요. 선생님 덕분에 잘 살고 책의 즐거움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오며 가며 연락하고 인사드릴 시간도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책 내신 거 축하드리고 저도 한 권 사서 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봬요."

"건강 잘 챙기고 또 연락하자. 고마워. 파이팅"


제자와의 만남과 카톡 대화를 통해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새벽에 편의점에 택배를 보낼 수 있어서 감사했다. 한두 권이라면 남편한테 부탁했을 테고 낮에 방문했을 것이다. 낮엔 택배 보낼 상황이 안될 듯하여 잠을 자지 않고 새벽에 택배를 보냈다. 야간에 일하는 제자를 보니 반갑고 다음에 서로 안부를 추가로 물어도 좋겠다 싶었다.


어디에서 누가 나의 제자이고 학부모일지 모른다. 내가 공인이란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만약 편의점 직원에게 불만을 말할 내용이 생기더라도 교양 있게 말해야겠구나 싶었다. 나는 뼛속까지 공인이다.


현재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교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인간관계 부분에서 교사와 학생의 친밀감 항상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금방 흐르고 지금 내 아이들도 10년 후 나와 마주칠 때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


2013년 제자를 만났다. 한참 초등 고전 읽기에 폭 빠진 시간이었다. 학부모들과 독서모임도 2년째 진행했던 그 시절, 우리 반 아이들은 한 권씩 책을 구입해와서 함께 읽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 제도가 없었을 그 시절에.

그러나 개인적으로 삶에 지쳐 있었던 시기였다. 내 아이 서른넷. 둘째가 네 살이었고 두 아이 육아와 출근 등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다. 그 당시 내 마음을 책 구입으로 달래지 않았을까. 나의 과한 책 소비가 우리 반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아이 육아 힘들었다고 여긴 그 순간이 참 멋쩍다. 나는 지금 육아의 긴 터널을 벗어나는 세 아이 엄마니까.

그 당시 책쓰기 수업을 만났다면? 아! 맞다. 그땐 개강 안 했겠구나^^

편의점 다녀온 오늘 하루 몸은 피곤해서 낮잠을 자야 했고 가족은 코로나에 병원을 오가곤 했지만 나는 옛 제자를 만난 덕분에 절로 웃음이 난다. 그래 하루를 이렇게 사는 거지. 좋게 해석하고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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