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다른 '검정'의 의미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빛을 느낄 수 없는 시각장애인의 삶을 다루고 있다. 감동적인 부분은 장애인과 그를 가르치는 선생의 위치가 뒤바뀌어 간다는 데 있다. 사하이는 십수 년간 미쉘의 곁을 지키며 도움을 주지만 어느새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다. 그리고 미쉘을 떠나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난다. 하지만 사하이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내 기억을 되찾아 주기 위한 미쉘의 도움이 시작한다. 영화는 이처럼 서로 다른 세계에 놓여 있는 이들이 서로를 탐색하고 도움을 펼쳐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 초반, 미쉘은 늑대소녀로 나온다. 배경을 잠깐 살펴보면 아빠는 편집증적으로 미술에만 빠져 사는 사람이다. 미쉘이 사고를 치자 방울을 매달아 통제하고 자신은 미술로 도피한다. 엄마는 미쉘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방종하는 한계를 보인다. 음식 조절에 실패한 미쉘이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만든다. 미쉘은 그렇게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사하이는 한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강단 있는 모습으로 부모와 맞부딪친다. 과거 지체 증세가 있던 동생을 요양원에 맡겨야 했던 무력감이 미쉘에 대한 책임감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리고 교육이 시작된다. 미셀이라는 어둠을 자신과 대비시키려 노력한다. 기본적인 예절부터 가르치며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고자 한다.
영화에서 물과 눈이 자주 등장한다. 어둠과 빛을 매개하는 역할이다. 대저택에서 안주하던 미쉘은 처음으로 분수대에 빠져 water라는 단어를 알게 된다. 이후 겪게 되는 수많은 실패가 그들에게 고난을 주지만 그때마다 미쉘, 사하이는 눈, 비를 맞으며 순간을 온 몸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미쉘에게 검정은 어떤 의미일까?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밝을 때도 어두울 때도 있기에 어둠의 시기는 세상 모든 자극으로부터 벗어나는 충전의 시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미쉘에게 어둠은 그저 반복된 좌절일 뿐, 잠시라도 멈춰버리면 자신을 삼켜버릴 것 같은 압도의 대상이다. 사하이는 그런 미쉘의 곁에서 결국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며 '졸업'이라는 목표를 부여해준다. 수많은 실패의 결과 미쉘은 '개미가 산을 넘고 거북이가 사막을 건너는 가능성'을 경험한다. 나와 그들은 다르며 자신이 느끼는 검정은 성취의 색이고 모든 감정이 응축되어 있는 침묵의 색임을 깨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새로이 시작되는 졸업식 날, 검은 가운을 입고 강단에 올라 대표 연설을 한다.
깨달음은 한순간에 온다. 초에 불이 붙듯, 불이 붙으면 온 집안이 환해진다. 스스로를 삼켜오던 어둠도 불빛 하나가 형성되면 아득하게 사라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불이 서로에게 나눔을 지향하는 불이 되어 세상을 다시 밝힌다. 영화 마지막에는 각자 불 하나씩을 들고 어딘가로 나아가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하이를 찾아가는 미쉘의 눈빛에도 결연함이 가득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