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몸짓
발레 도중 등장하는 악령, 그림자가 되어 그녀를 조종한다. 뒤를 볼 수 없는 상황, 어두운 기운을 주입받는 그녀, 이내 꿈에서 깨어나며 날개 죽지에 긁힌 상처를 발견하게 된다. 영화는 완벽에 집착하던 모범생 배우가 광기를 끌어안은 채 혼신의 연기를 완성하는 과정을 다룬다. 날개 죽지에 난 상처는 계속 재생산되며 극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 니나는 피나는 노력 끝에 발레극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 역을 따내게 된다. 평소 열렬히 따르던 엄마에게 기쁨을 전하는 것도 잠시, 스스로 연기해야 하는 '퀸 스완'이 자신을 조여 오는 것을 느낀다. 이번 공연이 과거와 다른 점은 주인공인 그녀가 백조이자 흑조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 순수함과 악랄함을 한 그릇에 녹여내는 과정이 그저 군무를 정확히 하는데 능했던 니나에게 쉽지 않은 과제로 다가온다.
평소 존경하던 수석무용수의 립스틱을 훔쳐 바르고 거울 속 자아에 매진하지만 단장으로부터 '뻔해. 볼 만큼 봤어.'라는 평가를 받을 뿐. 방법을 찾던 그녀는 자신을 한계 상황에 내몬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찾아 닿아 본 적 없는 자극을 느끼며 욕망을 찾는다. 그렇게 발화된 광기가 그녀에게 조금씩 동력을 부여한다. 혼신의 몸짓으로 광기를 소화하며 블랙스완을 완성하게 된다.
그녀의 연기는 스스로의 결핍에서 시작했다. 날개 죽지에는 늘 상처가 나 있었는데, 이는 스스로 불안을 느끼면 몸을 긁어대는 무의식에서 기인한 상처다. 무용의 꿈을 포기한 엄마, 최고의 연기를 푸시하는 단장 사이에서 니나는 항상 욕망의 주체이기보다 욕망의 객체로 있어야 했다. 타인의 만족을 위해 늘 결핍상태인 자신을 담금질하고 학대해야만 했었다. '완벽한 연기'라는 포기할 수 없는 목표는 이 모든 것에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한다. 고통과 학대가 주는 자극이 자발적이고 필요한 것이라 믿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존적이었던 그녀는 극 후반에 이르러 점차 홀로 서게 된다. 엄마와 단장 모두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그 방식이 그녀를 길들이고 통제하는 방향에서 다른 쪽으로 바뀌게 된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무너뜨리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니나는 내면에서 솟아나는 욕망. 그것에 집중한다.
동화 ‘백조의 호수’에서는 백조가 자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지만 이 영화에서는 다르게 변주된다. 동화에서 악령의 꾐으로 백조가 돼버린 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흑조가 왕자를 유혹하는 일로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니나는 스스로가 백조이자 흑조로 서게 된다. 흑조의 검은 매력을 내재화한 그녀는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은 스스로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지만 전반적으로 니나의 과잉된 자의식에 의존해서 진행되는 점이 아쉬웠다. 실제 모든 흐름이 '마지막 연기'로 승화되는 과정이기에 영화 내내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니나의 라이벌로 등장한 릴리가 활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데 상대적으로 니나를 보완한다는 생각을 했다. 릴리의 밝음, 자유로움이 니나의 히스테리를 한층 강화시키는 발판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