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라이프 오브 파이

이야기가 가진 힘

by 얼그레이

좋은 이야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헤밍웨이의 사례를 들자면, 그는 산티아고 해변에서 만나게 된 노 어부로부터 인생의 걸작 '노인과 바다'의 영감을 얻는다. 발음도 불분명하고 한 톤 다운된 어조로 전달된 '청새치 이야기'는 당시 창작의 한계에 놓여 있던 헤밍웨이에게 한줄기 빛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단숨에 완성된 '노인과 바다', 그는 노 어부를 찾아가 큰 사례를 하지만 그때 까지만 해도 자신이 써 내려간 소설이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을 몰랐을 것이다.


영화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결말을 제안하는 데 whatever! yoo choose! 이런 느낌보다 두 결말 모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느낌이었다. 파이가 삶에서 경험한 모든 사건들이 연결을 시도하며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없는 바다 위에는 파이, 벵갈 호랑이가, 흰 수염 고래, 식인섬이, 이 모든 것을 끌어안는 광활한 자연이 있었고, 파이의 삶에는 동물원, 수영장, 사랑, 고난, 극복, 자기 수련의 단면들이 담겨 있었다. 이제 40살을 넘겨 보이는 그는 모든 것을 사심 없이 연결 지어 보며 하얀 바탕과도 같은 소설가의 상상 속에 그의 이야기를 천천히 완성해가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설명하는 파이

파이라는 숫자가 참 흥미롭다. 3.141592... 끝을 향해 나아가는데 절대 끝이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영화에서도 파이가 가지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었다. 주인공의 이름은 원래 피싱이다. 발음 상 '오줌싸개'라는 별명이 자연스럽게 붙여지는 'pissing'이라는 이름은 그에게 파이(pi)로서 살아보겠다는 주체적 의지를 심어준다. 그가 피싱으로서의 삶을 고수했다면? 아마 파이의 어느 의미 없는 소수점에 머문 삶에 그쳤을 것이다. 그는 끝까지 자신을 탐구하고 해답을 갈구하면서 결국 파이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바다 위에서 펼쳐진 230일간의 사투는 파이에게 찾아온 차원이 다른 고난이었다. 인간 본성과 이성과의 다툼, 혹은 호랑이와 인간의 다툼으로 표현되는 사투는 그에게 종교에 대한 의심을 도전적으로 던지게 해 준다. 스스로 3개의 종교를 믿을 정도로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자신을 마주하면서 다음의 질문을 되뇌어 본다. 신은 존재하는가? 나는 왜 고난을 받는가? 호랑이로 상징되는 본능을 다스리고 육식을 끝까지 피하고자 하지만 폭풍우를 경험하면서 그는 지금까지 스스로 지키고자 했던 사고의 틀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일찍이 아버지는 그에게 맹신을 피하라 했다. 차라리 이성적인 사람이 돼라고 했다. 그가 호랑이의 눈에서 발견한 것은 스스로가 느끼고 싶은 감정 그 자체라고 했다. 그런 그는 어떤 힘을 발휘해 끝내 생존할 수 있었을까? 그 힘이 종교에서 기인하는지, 이성에서 기인하는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열린 결말이었다. 영화를 호랑이와 함께한 생존기로 기억할지 인고의 과정 끝에 쟁취해낸 잔혹기로 기억할지 선택은 우리의 몫이었다.


흰 수염 고래를 마주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깨달음의 결정적 계기가 광활한 자연이었다는 점이다. 좁디좁은 배에서 싸우던 그들은 서로가 폭풍우, 바다로 대변되는 광활한 자연 앞에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파이는 형광 수면을 뚫고 솟아오르는 거대한 흰 수염 고래를 만나고 리처드 파커는 굶주림에 겨워 본성을 잃어가는 자신을 바다 표면으로 바라다. 영 말미에는 결국 배의 절반을 감싸고 있던 덮개가 뜯겨져 파이와 리처드가 합일되는 과정이 드러난다.


영화의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는 건 아름다운 영상미였다. 호랑이는 지나치게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도 바다는 조금 CG 느낌을 주어 신비롭게 표현한 것은 또 다른 미묘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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