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시

시 한 편 쓰기가

by 얼그레이

전반적으로 여백이 많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과정이 띄엄띄엄 진행되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시 한 편으로 응축되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시란 무엇이고, 시란 어때야 하는지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토리는 마음씨 고운 할머니가 시 강연 수업에서 시 한 편을 완성해가는 내용이다. 진흙 속에서 핀 꽃이 아름다워 보이듯, 그녀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열악하고 험난하여 그녀가 온몸으로 쓴 시가 돋보이게 되는 감동이 느껴졌다.


가끔 자기 생각, 감정이 굉장히 소중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기적인 건 아닌데, 그 세계를 아름답고 순수하게만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주인공 양미자 할머니가 그렇다. 그녀는 주변을 항상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신을 꾸미길 좋아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녀는 상처 받기 쉽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는 순간이 좋고, 그 통로로서 시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시상을 떠올리는 미자


시란 어떻게 쓰여지는가. 영화의 주된 메시지이기도 하는데, 결국 시를 대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양미자 할머니는 겉도는 인물이다. 여기저기 관심이 많아 시 강연, 시 낭송 모임, 학부모 모임 등 자주 찾지만 잘 섞이지 못한다. 그래도 그녀는 세상 사물, 사건에 쉽게 동화되고 관여하는 모습을 보인다. 뛰어난 감수성과 새로운 접근으로 대상을 쉬이 이해하지만, 결국 제 3자적 관점에서 바라본 세계는 한계가 있었다. 꽃을 좋아해 열심히 감상했던 동백꽃이 결국 조화였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 찾아간 피해자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떨어져 있는 살구에 대한 예찬뿐이었다.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낀 그녀는 다시금 시란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의 삶을 직접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장례식장에 들러 사진을 가져오고, 성폭행 장소와 자살 장소에 들러 상념에 잠긴다. 정처 없이 걷고 울어도 보고 화도 내보면서 희진이라는 아이를 생각해보고 경험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돈을 구하기 위해 목욕 일을 해주던 할아버지의 요구에 응하기도 한다.


희진의 장례식장에서


아름답게만 보던 세상이 결코 아름답지 않으며 모든게 쉽지 않아 부딪치기 전엔 아무 변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결국 시 한편을 써낼 수 있게 된다. 희진의 삶을 그대로 마주하고 통과해본 데 따른 결과다.


시는 무엇을 다뤄야는가? 영화에서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라 했는데, 그 아름다움이란 바깥에서 찾은 아름다움이 아닌 내 안에서 만들어진 아름다움을 이야기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제목으로 수강생들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씬이 있다. 이제 누군가의 엄마 아빠가 돼버린 그들은 각자 ‘할머니 앞에서 춤을 춘 기억, 반 지하에서 임대 아파트로 옮긴 기억, 금지되었지만 가슴 떨렸던 사랑 이야기..’ 등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할머니는 정작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첫 기억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7살 많은 언니가 '미자야 이리 와'라는 말 한마디. 이것이 그녀의 마음 상태의 많은 것을 표현해준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어디든 좋지만, 주체적이지 못했던 그녀. 나이 70 가까워 알츠하이머에 걸린 그녀가 자신 안에서 솟아나는 것들을 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눈물로써 표현되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고백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니 그곳에 희진이 있었고 그녀는 희진과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시를 쓰기로 결심을 한다. 결국 500만원을 학부모 모임에 내고 사건이 모두 해결되었지만 그녀는 손자를 경찰에 신고한다.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신념을 지키기 위함이다. 선택의 결과는 그녀에게 어떻게 작용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 선택이야 말로 그녀가 자신을 구해낸 유일한 순간이라 생각한다.


시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지켜낼 수 있었다. 영화에서 시 선생님으로 분한 김용택 시인의 대사가 떠오른다. '시를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시를 쓰려는 마음을 먹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시가 죽어가는 세계에서 자신과 세상을 위한 시 짓기를 마음 먹고 미자는 이를 실천했다. 이 점이 그녀가 다른 인물들과 다른 부분이었다.



10/10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화 리뷰 : 머니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