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버닝

분노는 희망도 태운다

by 얼그레이


자연계의 가장 강한 속성 중 하나는 불이 아닐까 싶다. 불은 약한 불이든 강한 불이든 모두를 흡수하여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스스로 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불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고 어딘가로 사라질 수 있다. 영화는 종수, 해미로 대표되는 청년들의 순수함, 희망이 어떻게 버닝 되어지는지를 그리고 있다.


해미와 종수는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여행가와 소설가를 꿈꾸는 청년들이다. 그러나 현실과 꿈이 너무 멀어 하루하루 소진되는 삶을 살아간다. 해미는 콜 하면 반드시 찾아가야 하는 내래이터로 살고 있고 종수는 유통업체 비정규직으로 전전긍긍하며 산다. 열심히 살지만 세상은 점점 더 어렵다.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종수의 아빠는 잘못을 저질러 유죄 판결을 앞두고 있고 해미는 늘어나는 카드빚이 막막하기만 하다.


팬터마임으로 귤을 먹는 해미


해미는 거짓말을 잘한다. 그런데 새 것을 상상하는 거짓보다는 현실을 잊기 위한 거짓에 가깝다. 현실이 힘든 사람은 잊는 것부터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미는 오랜만에 만난 종수와 첫날 술자리를 가진다. 그리고 없던 귤을 먹는 팬터마임을 선보인다. '귤이 있는 걸 믿는 게 아니라 여기 없다는 사실을 먼저 잊어야 한다'면서. 그 뒤로 해미는 여러 거짓말을 하지만, 종수는 해미가 끌려 사귀게 된다. 서로 모르는 것이 많지만 무언가의 종 된 존재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서로의 의미를 탐색하는 사랑은 뭔가 버겁다.


해미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프리카에서, 책으로 접한 그레이트 헝거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를 갈구하는 선구자다. 그리고 돈을 모아 간 그곳에서 벤을 만난다. 벤은 재력, 젊음, 여유 모든 게 갖춰진 상류층, 그에게 해미는 그저 흥미로운 존재다. 근데 해미가 종수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게 그의 베이스를 두드린다.


벤은 영화 내내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절대 권력자로 그려지지만 절대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상대를 무릎 꿇게 하는 힘을 서서히 발휘한다. 벤으로 대표되는 최상위 계층은 사회의 수직구조와 자신의 위치가 견고해지길 원한다. 아랫사람이 아래가 아닌 위만을 바라보며 단계를 밟아 올라오는 풍경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외톨이끼리 서로 위로하고 공감해주는 해미, 종수 관계가 마땅치 않다.


모든 게 재미있는 벤

그는 해미를 상류층 모임에 불러내 그레이트 헝거처럼 춤추게 하고 웃음의 대상으로 만든다. 그리고 재미없다는 표정을 종수에게 보인다. 종수 집에 찾아가서는 대마초를 나눠 피면서 해미가 옷을 벗고 춤추게 만든다. 종수에게는 마치 '어른은 이래야 한다'면서 종수를 아랫사람 대하듯 한다. 그의 기분 나쁜 조소는 가진 자만 할 수 있는 위력이었다. 위를 향해 올라오는 약자들이 무너지는 모습은 그의 베이스를 두드려주는 스펙터클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해미는 비닐하우스처럼 불태워지고 종수는 스스로 화를 돋워 소진되고 만다. 종수의 분노는 도무지 갈 곳이 없다. 벤의 모습이 끝까지 드러나지 않으며 항상 실실 웃는 스티븐 연의 연기로 감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음울함과 무력감이 영화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감정이었다.


세상이 수수께끼 같다.


여기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영화의 마지막 씬들이 아주 오래 기억날 것 같다. 안갯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해가 왠지 힘이 없어 보였다. 무엇이든 태운다는 행위가 꼭 최선일지 생각해보았다.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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