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빅쇼트

믿음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by 얼그레이

많은 사람들은 대상물의 가격에는 대상의 가치가 온전히 반영되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 가격을 변화시키는 상당량의 힘은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인 경우가 많다. 서울 집 값을 예로 들어도, 서울이 살기 좋은 측면도 있지만 서울이 부여하는 '상징'이 집 값 상승을 지지하는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금융과 관련된 어려운 용어와 각종 진입장벽은 금융에 대한 믿음을 높여준다. 애널리스트, 트레이더 등 금융기관 종사자들이 정보를 찾고 이익을 실현해주는 각종 행위가 효율적이란 믿음이 형성되는 순간, 합리적 게으름이 시작된다. 금융기관이 제안하는 인사이트가 스스로의 확신을 결정짓는 사고의 틀로 작용하고 투자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과 거울 속의 하늘


실제 미 금융위기를 불러온 배경의 한 축에는 이 같은 '시스템에 대한 맹신'이 자리 잡고 있다. '곤경은 무지가 아닌 확신에서 시작한다.'는 말처럼, 견고한 믿음으로 쌓아 올려진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확고했던 믿음이 깨어지는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미 주택시장은 전대미문의 활황기에 접어들었다. 당시 앨런 그린스펀, 미 연준 의장이 '경제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호황을 이끈 시기였다. 은행들은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늘려갔고,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주택 담보 기반의 각종 금융 상품(MBS, CDO)을 만들어 판매했다. 신용평가기관들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받고 MBS, CDO에 높은 등급(AAA)을 매겨주고 금융기관들은 보험사를 상대로 MBS, CDO 등이 부실화될 경우에 대비한 금융상품(CDS)까지 새로 만들어 팔 정도였다.


계약 위의 계약, 계약에 부하는 계약이 체인 형태로 묶여 확장될수록 한 곳의 위험이 전체로 확산되는 시스템이 형성되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4명의 펀드매니저/트레이더들은 일찍이 위기를 읽어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위 전문가들의 전망에 의존하며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나 2008년, 체인의 기초 자산 역할을 하는 주택시장이 흔들이면서 위기가 시작된다.


위기를 직감한 마이클 버리(펀드매니저)


위기의 신호를 처음 발견해낸 사람은 마이클 버리. 그는 유년시절, 질병으로 의안을 착용하게 된 괴짜 의학박사이자 아웃사이더 펀드매니저로 나온다. 철저히 금융계의 외부자로 맴돌면서도 그가 속한 회사에서 성과가 나지 않으면 잘리게 되는, 내부의 룰에 메어있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사람이 편하지 않아 수와 통계에 관심이 많았고 남들이 관심 가지지 않는 흐름을 읽는 데 통달하며 위기를 예측해낸다.


흥미로운 점은 적절한 거리를 둔 외부자야 말로 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버리가 금융기관 상대로 13억 달러의 CDS 상품을 제안하며 딜을 하는 점은 그의 확신을 드러내는 대목이면서도 금융 시스템의 우둔함이 표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머지 세명, 마크는 금융을 맹신하다 자살한 형을 둔 행동주의자, 베넷은 시스템에서 어떻게든 이익을 취하는 기회주의자, 벤은 무심한 듯 가르침을 주는 방관주의자로 표현되지만, 그들은 우연히 얻게 된 정보를 업계에 전파하는 쪽이었다. 여전히 주택시장이 견고하다고 믿는 편과는 다른 쪽에 있었지만, 결국 그들도 자신의 편을 키워 차익을 얻어야만 하는 투자자들이었다.


펀드매니저를 설득하는 베넷(트레이더)


주택시장 부실에 대한 증거가 도처에 제시되고 있음에도 비대해진 금융 시스템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무리하게 집을 사고 있었고 금융기관들은 MBS, CDO, CDS 등을 없어서 못 팔았으며 신용평가기관은 높은 등급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미국 증권 포럼, 투자은행 설명회 등 대중과 소통하는 자리는 금융기관의 강건함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자리였다. 이후, 미국 경제는 망한다. 망하지 않는다. 이분법의 줄다리기는 지루하게 진행되었지만 메릴린치, 베어스턴스 등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하나 둘, 무너지면서 순간적으로 희비가 교차했다. 4명을 포함한 소수는 수십, 수백억 달러의 이익을 얻었지만 미국 전체적으로 총 50조 달러가 증발했고, 800만명이 일자리를, 600만명이 집을 잃었다.


이번에는 다를까?

위기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금융 시스템은 강건하다. 금융 시스템 스스로 규제, 건전성 조치를 받으며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금융은 모두에게 기회의 창을 제공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금융기관의 분석, 판매의 툴이 발달한다는 점이다.


언제나 경제는 호황/불황의 한 국면에 서 있으며 사람들은 '이번엔 다를 것'이라며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부여한다. 더 나은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은 좀 체 무너지기 힘들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되고 또 다시 새로운 믿음이 만들어지는 이유이다.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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