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메이즈 러너

현대판 파리대왕

by 얼그레이

난데없이 등장하는 괴물, 출구를 찾는 아이들, 서서히 밝혀지는 조직의 정체,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다. 전체 플롯은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과 유사하지만, 아이들이 맞서 싸우는 대상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메이즈이며, 정체불명의 대상에 의해 설계되어 있는 점이 달랐다. 등장인물 간 관계도 단순, 명료하고 흔한 멜로 없이 오직 액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격렬함이 인상 깊었다.


영화화된 '파리대왕', 왼쪽부터 랠프, 피기, 잭


'파리대왕'은 핵전쟁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무인도라는 자연 상태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공격성을 표출하지만 이내 숲으로 대변되는 공포 아래, 집단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후, 아이들끼리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서로 다른 생각들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때 랠프라는 아이가 '발언권'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내며 조직 운영을 위한 규칙, 체계를 만들어 간다. 그는 생존을 위한 자원 배분권, 각자의 역할/책임 등을 규칙으로 세워가며 아이들의 대장이 되어 간다.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늘어난다. 일례로 피기는 똑똑한 머리를 가졌지만 자신의 주장이 없이 연약한 성격을 가졌기에 그저 랠프를 조력하는 인물로서 행동한다.


모험심 가득한 잭이 반발 하기 시작한다. 잭은 내일보다는 오늘, 명분보다는 실리를 좇는 인물이다. 이상적인 체계를 만드는 일보다는 순간순간의 직관에 따라 사냥감을 찾고 행동하는 것이 생존 그 자체라 주장한다. 결국 잭을 따르는 세력들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잭은 랠프 무리들을 하나씩 굴복시켰고 결국 혼자 남은 랠프는 죽임을 당하는 위기까지 빠진다. 잭 무리가 지핀 불에 의해 해군이 출동하고 결국은 랠프를 포함한 모두가 구출되며 소설이 마무리된다.


구성원의 이름이 새겨진 바위, 그를 지켜보는 갤리


파리대왕에서 랠프가 지향하는 가치는 영화에서 '갤리'에게 투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생존을 위해 지켜야 하는 규칙/질서를 강조했다. 글레이드에서 3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은 결국 자신이 철저히 아이들을 관리하고 각자에게 역할/책임을 부여하는 리더로서 행동했기 때문이라 믿고 있다.


갇혀있는 토마스를 돕는 척


한편 척은 피기와 겹친다. 그는 처음부터 메이즈의 비밀을 조금은 알고 있으며 해결책을 가져다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신참 '토마스'에게서 그 가능성을 발견한다. 감정적으로 그에게 의존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에서 갤리와 척 모두 사망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글레이드는 위키드라는 조직에 의해 설계된 실험 공간이다. 기성세대의 룰이 장악한 글레이드에서 갤리라는 인물은 그저 안전이라는 허상을 재생산하는 관리자이며, 의존성 강한 척은 살인 미로 속에서 생존 능력이 없는 자라 볼 수 있다. 파리대왕에서 중요한 가치로 표상되는 최소한의 질서, 체계를 향한 충성심이 미로 사회인 글레이드, 더 나아가서는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갤리, 마지막 울분


파리대왕의 무인도는 자연환경 중 하나였다. 메이즈 러너의 메이즈는 위키드에 의해 만들어진 살인 미로였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계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집단은 하나하나 격파가 되고 있고, 생존 능력을 갖춘 일부가 미로 밖을 나서겠지만 영화에서처럼 모든 시공간이 무한 미로의 반복이라면 '삶이 참으로 고달프겠구나'라는 생각이 마지막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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